d+2
시차적응이 아직 안되서인지, 알람 없이도 눈이 번쩍 뜨였다.
알람이 울린 건 그러고 나서 조금 지난 여덟 시 즈음이었다. 어제는 계획이 없었다만 이튿날인 오늘은 나름 전날 계획을 세워 나가기로 한 시간을 열 시 반으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S의 방에선 아직 인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와있었는데, 그때부터 몸살 기운이 있었다. 감기약을 먹고 누웠던 게 걱정돼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라디에이터의 공기로 데워진 방에서 그녀는 조용히 자고 있었다.
하늘을 봤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다시 보니 구름 틈새로 파란 하늘이 열리는 게 보였다. 말 그대로 '열리고' 있었다. 날씨가 좋으려나? 응!! 어제의 비가 오다 말다 추적추적한 날씨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비가 내려 공기 중에 깨끗하고 차가운 냄새가 가득했다.
d+1의 글을 쓰기도 하고, 로트렉에 대해서도 더 찾아보기도 하면서 한 시간 정도를 보낸 것 같다.
집에서 나온 건 열두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구름의 색은 회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어 있어 훨씬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파란 하늘 !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이런 맑은 날을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날씨에 불호인 경우는 글쎄,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
느지막이 나왔지만 점심을 먹기엔 알맞은 시간이었다. 역에 있는 햄버거집에서 든든히 먹고 움직였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은 musée Picasso paris.
피카소를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재재작년에 왔을 적엔 개관을 안 했었나 공사 중이었나, 무튼 방문 순위에서 제외된 이유가 뭔가 있었다. 이번엔 마땅히 안 갈 이유가 없어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그러니까 피카소의 작품을 '제대로' 본 건 리옹의 musée des beaux-arts 에서 였다.
다른 작품과 다르게 너무 한 벽을 크게 차지하고 있길래, 뭐지? 해서 봤더니 적혀있던 pablo picasso.
그 뒤로 유럽의 기타 전시장에서 연관이 있다 싶으면 꼭 그의 작품이 있었다.
화풍도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그렇게 익숙하게 노출이 되는데도 딱히 좋아해 지진 않더라.
수많은, 다양한 작품들이 있는 덕에 그의 작품들 중 '호'인 작품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술관은 밝고, 빛이 잘 들어왔다. 물론 작품 보호를 위해 블라인드가 길게 내려와 있긴 했다만.
작품을 보며 움직이는데 미술관이 꽤 컸다.
작품도 작품인데, 건물 곳곳의 요소가 독특한 게 보였다.
그게 돋보였던 건 저 창이 있던 공간이었는데, 누군가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건물 자체가 Roland Simounet, 그의 작품인 거다 !
그리고 이 의자. 자세히 들여다보니 디테일들이 상당했다. 내겐 정겨운 나무인 오크도 예쁘고..
나란히 두더라도 양끝을 동일하게 안 두고 약간 다르게 이으니, 혼자 온 사람도, 둘이 온 사람도 나란히 앉은 듯 나란히 앉은 게 아닌 게 되어 부담이 없어 보였다. 이건 누구의 작품인 거죠...?
건물의 제작자 이름이 붙어있듯이, 이 의자의 제작자에 대한 설명도 붙어있으면 정말 박수치고 나왔을 것 같은데..
아, 그렇다고 피카소 작품들을 안 본 건 아니다. (다른 것에 집중하느라 덜 집중했을 뿐..)
액자가 좀 특이하다? 무슨 문짝인가? 했는데 정말 벽장에 그린 거였던 거랑, 크로키 같이 거칠고 즉흥적인 느낌의 연필 선. 음.. 피카소의 건 이거 두 개가 새롭게 좋았다.
+ 반가운 Henri Rousseau까지도.
여기서도 그의 이름 앞에 le douanier를 붙여 설명하고 있었다.
피카소를 보러 갔지만, 정작 눈과 마음에 담아온 건 그의 작품만은 아녔다.
이렇게 가끔 전시를 갔는데 공간 자체에 매료될 때가 있다. 이 마저도 또 다른 작품으로 보이는 걸 어째.
오늘 알게 된 새로운 이름에 대해 찾아보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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