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집처럼

d+7

by regine

첫 번째 집에 짐을 푼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리옹에 살 때도 파리에 오면 일주일씩 머무르곤 했었다만, 한인민박에 머물렀었기 때문에 눈을 뜨면 식탁에서 차려진 밥을 먹은 뒤 나가야 했다. 잠깐 동안 여러 명과 방을 같이 쓰거나, 숙식만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용 절감 +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기에 그걸 감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녔다. 덕분에 그렇게 두 번씩이나 할 수 있었겠다.

리옹에서 1인실로 구성된 기숙사에 살았었기도 하고 말이지. 기숙사라길래 2인 1실 일 줄 알았는데, 샤워실과 화장실, 그리고 주방을 공유하는 조건으로 1인실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10개월이나 머물렀는데 (지금 보니 10개월'이나’다.) 떠나갈 곳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가족사진과 친구들 사진을 집에 붙여놓아도 영 정이 가지 않았다. 실제 서울 집 내 방엔 그런 사진들을 붙여두지 않아서 그런가 ㅋㅋㅋㅋㅋ

무튼 10개월을 살면서도, 또 잠깐씩 어딘가를 여행 갈 때마다 일주일씩 묵곤 했지만 그 어디도 내가 집처럼 편하게 쓸 곳은 없었다. 그런 상황이 나를 더 이방인으로 만들었던 것 같고, 그게 스스로에게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출국 일자를 일주일이라도 앞당기려 했었으니까.


그랬던 적 있었냐는 듯이, 지금의 나는 5일을 주면 3박 5일로 유럽 일정을 소화한다. (ㅎㅎㅎ)


5일째 되던 날 S는 출국을 했다. 배웅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문득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다 열고 가구를 정리한 뒤 바닥을 쓸었다.


청소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내려와 창가를 보게 둔 의자에 앉았다.

같은 장소에서 건물과 하늘을 찍는다. 이건 저번에 베를린에 머물던 집에서부터 해봤는데,

매일의 작은 변화를 모아 보기에 좋은 방법인 거 같아 쭉 해보고 있다. (필름 사진 절반이 머무는 집 사진인 이유가 이거다.)

하늘을 보며 사진도 찍고 멍을 때리다 거실 테이블로 옮겨와 컴퓨터를 열고 구글 지도를 켠 뒤 오늘 가볼 곳의 동선을 파악한다. (사실, 가볼 곳도 이때 정해진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정리한 뒤에 커피를 마저 다 마시고 요거트를 먹는다.

컵과 다 먹은 요거트 통에 묻은 남은 흔적을 물로 씻고서 분리수거 통에 넣는다.

그리곤 나갈 때 분리수거랑 기타 간단한 쓰레기들을 모아 뒤뜰에 마련된 쓰레기통에 분류하여 넣는다.



위에 나열한 건 이곳에 머물며 정말 루틴처럼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글을 쓰기 위해 행동을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보니 오늘은 저렇게 일주일째였다.


에어비엔비를 이용하며 바닥을 쓸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말이었다. 매일 간단히 했던 쓰레기 정리나, 나갈 때 가구 배치를 다시 배열하고 침구를 정리하는 일은 '청소' 보단 '정리'였다.


여행을 와서 한인 민박 대신 에어비엔비를 숙소로 선택한 게 언제부터였더라,

아마 휴가를 받아 3박 5일을 여행하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막 에어비엔비라는 개념이 활성되고 있던 그즈음일 거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쓰는 회사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실제로 살아보는 느낌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바닥을 쓰는 일에서 온 것이었다.


+ 오늘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가득했다. 늦장을 부려볼 겸 컴퓨터 앞에서 멍 때리고 있자니 햇빛이 '너 안 나오고 뭐하냐’ 하더라. 그래서 예상보다 서둘러 나갔더랬다.

+ 나는 스스로를 ‘날씨 요정’이라 부르는데, 그렇게 말하고 다니다 보니 정말로 날씨가 내 기분에 맞춰준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정말로 !)

근데 다음 주 파리의 날씨는 비비비 비비. H가 나와 같이 파리에 머물게 될 기간이기도 하다. 그녀는 내게 날씨들을 보내며 날씨 요정아 어떻게 좀 해보라고... 그치만 어쩌겠나, 비를 몰고 오는 그녀의 힘이 더 큰 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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