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야의 첫걸음에서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은 도서관 속 어린이 작업실 '모야 MOYA'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어떤 팀들이 모여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도와 시도를 담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어린이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궁금하신 분, 다양한 형태의 도서관의 변화를 상상하는 분들께 구체적인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릴리쿰 상호입니다.
이번 챕터는 어린이 작업실 모야를 오픈하면서 진행했던 '베타 오픈 데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타 오픈 데이를 준비한 목적과 당시 열었던 워크숍 ‘물건 최후의 날’에 대해 설명하고,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는 모야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현장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베타 오픈 데이에서는 여러 놀이 작가들이 릴리쿰과 함께 협업하고 있습니다. 워크숍 진행뿐만 아니라 도서관의 오른손분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며 듣고 느낀 점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위해 후반부에는 놀이 작가 중 한 분인 오미선 작가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Chapter 1. 모야가 시작된 모양부터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모야의 모양이 점점 잡혀가면서, 열심히 준비한 모야가 작은 도서관에서 첫발을 잘 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손이 모야라는 낯선 공간을 적극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오른손이 모야의 분위기를 감 잡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야 작업장의 재료와 도구를 자연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린이가 혼자 스스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 '모야'이지만, 기존에 접하기 힘들었던 공간 운영 방침을 아이들이 몸으로 이해하고 친해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체험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또한 모야의 철학과 운영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오른손이지만, 실제 운영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오른손이 모야의 분위기를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낯선 모야와 친해질 수 있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베타 오픈데이를 기획했습니다.
연령에 크게 상관없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모야에 구비된 도구와 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하게끔 만들어 모야라는 공간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워크숍.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물건 최후의 날'이 모야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워크숍이라 판단했습니다.
'물건 최후의 날'은 집에서 사용하다 고장 난 전자제품이나 장난감 등을 직접 작은 손이 드라이브 같은 도구로 해체해보고 해체를 통해 얻은 부품과 준비된 재료로 만들기를 하는 워크숍입니다.
평소에는 금기시되었던 물건을 뜯고 해체하는 경험을 마음껏 해보면서 행위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던 물건의 속 안을 살펴보며 그 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워크숍입니다.
분해를 통해 물건 안에 숨겨져 있던 전자 부품들을 마치 게임 속 아이템을 찾은 것처럼 캐내어서 아이들 각자가 부여한 가치나 아이디어를 살려보는 만들기를 통해 새로운 물건(작품)을 재생산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뜯고 해체하고 다시 그걸 가지고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야에 있는 새로운 도구와 재료를 자연스럽게 관찰하고 사용해볼 수 있는 점에서 베타 워크숍으로 가장 적합하다 판단했습니다.
워크숍의 진행 방식은 아래의 단계로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1. 분해 준비 하기
:분해를 위해 필요한 도구 (드라이버 등)가 무엇인지 모야에서 어디에 준비되어있는지 묻고, 직접 가져와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관찰합니다
2. 나사 찾기
: 분해하려는 가전제품의 외관을 꼼꼼히 살펴봅니다. 라벨 아래에 나사못, 탭, 커넥터가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돌려야 나사가 열리고 닫히는지 직접 돌려봅니다.
3. 분해하기
: 나사를 풀고, 쉽게 뗄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분해합니다. 만약 중간에 막혔다면, 진행을 막고 있는 부품이 어떤 식으로 조립되어 있는지 살펴봅니다. 나중에 조립할 계획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부시는 것도 허락합니다.
4. 만들기
: 분해한 부품들을 가지고 뭔가 아이디어 떠오르면 바로 만들기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계속 분해하길 원하면 분해할 부품이 없어질 때까지 분해하도록 놓아둡니다.
물건 분해 워크숍을 하고 나면 자잘한 부품들이 쌓이게 됩니다. 이것들은 또 나중에 좋은 재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뚜껑이 달린 병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작은 나사못, 기어, 스프링을 보관하여 나중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물건 분해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위험이 될만한 요소가 있는 제품은 미리 파악하고 주의를 주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유리같이 깨지면서 파편이 튈만한 것들이나 잉크나 기름, 먼지가 대량으로 나올만한 것들은 장갑을 이용하면 안전합니다.
말씀드렸듯이 베타 오픈데이는 작은 손을 위한 워크숍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실전에서 모야를 이끌어갈 오른손을 위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베타 오픈데이를 통해 작은 손과 오른손을 만나보니 작은 손보다도 오른손분들과의 대화에서 더 다양하고 실질적인 피드백을 얻으며 현장의 분위기를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린이 작업실 모야가 더 많은 도서관에 만들어질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는 만큼 현재 모야를 운영하고 계시거나 운영하실 다른 오른손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베타 오픈데이에서 만나 본 오른손분들과 현장 이야기를 이 글에서 공유하려 합니다.
워크숍 진행뿐만 아니라 워크숍 전후로 오른손분들과 모야에 대한 기대와 고민, 소감 등을 다양하게 나누었던 작가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존 만들기 수업과는 조금 다른 모야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면 좋을지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상호)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미선) 안녕하세요.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는 일러스트레이터 오미선입니다.
그동안 종종 릴리쿰이 주체하는 행사나 워크숍에 참여해왔고 이번 모야 분해 워크숍을 일부 진행하고 있습니다.
상호) 베타 워크숍을 참여하게 된 배경이 어떻게 되나요?
미선) 개인 작업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과천 과학관과 국립 어린이 과학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들기 수업을 기획 및 진행을 했었습니다. 고양 어린이 박물관에서 진행된 분해 워크숍을 릴리 쿰과 참여한 경험도 있고요.
상호) 모야 기획자도, 모야를 실제로 운영하는 오른손도 아니지만 (워크숍을 통해) 모야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고 직접 경험해보신 제3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모야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모야 작업장의 첫 느낌은 어땠나요?
미선) 일단 너무 부러웠어요 ㅎㅎㅎ. 다양한 재료와 접하기 어려운 도구들이 멋있게 자리 잡혀있는 장소가 있다니!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이 곳을 무료로 맘껏 이용할 아이들이 많이 부럽더군요 ㅎㅎㅎ
상호) 모야에 관해 알게 됐을 때 느낌이나 모야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네요.
미선) 분해 워크숍은 전에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진행에는 부담이 없었어요. 하지만 모야 작업장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야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도 좀 됐어요. 그래서 워크숍을 하기 전에 모야 자료를 읽어보기도 하고 관계자분과 미팅도 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모야 작업장을 방문하고 오른손분들을 위한 물고기의 모야 오리엔테이션을 같이 들었을 때 확실히 감이 오더군요.
상호) 어떤…?
미선) 음...‘드디어 이런 게 생기는구나’?
상호) 드디어…?
미선)네,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저울에 균형을 맞추어 줄 ‘다른’ 방식이요.
굳이 분야를 따진다면 모야는 어린이 (만들기) 교육 분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어린이 (만들기) 교육 분야에서의 지금까지 방식은 60분 내 의 시간 동안 준비된 재료로 선생님의 지도 아래 만들기를 따라 하는 방식뿐이었잖아요. 그렇게 한 가지 방식밖에 주어져 있지 않은 교육분야에 균형을 맞춰 줄 다른 옵션이 생겼다고 봤어요.
생각나는 비슷한 예로,
과거에 한동안 영어 공부는 무조건 영문법부터 시작했었잖아요. 단어 많이 외우는 게 최고고. 그런데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문법식 학습방법에 반기를 들고 회화 위주의 학습방법이 굉장히 크게 유행한 적이 있어요. 영어 학습이 영문법 위주의 방식이 아니라 회화 위주(혹은 선행되는) 방식도 존재하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이 모야도 어린이 만들기 분야에서 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런데 동시에 우려되고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모야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실 오른손분들은 어떤 시각으로 모야를 보고 계실지 궁금하더라고요. 문법 위주 영어 학습 방식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회화 위주의 방식이 새롭게 주목받던 시기에 회화식 공부가 굉장히 열풍을 일으켰잖아요. 진정한 영어 공부는 회화식이며 영문법은 필요 없다 까지로 인식될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언어 학습 방식에서는 ‘이것이 정답이고 저것은 잘못된 방식, 혹은 낡은 방식이다’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회화식으로 언어를 익히고 배우다가도 문법을 배우지 않고 새로운 어휘를 공부하지 않으면 문법 위주 방식처럼 어느 순간이 되면 성장하지 못하고 막힐 때가 있어요. 같은 질문, 같은 대답만 반복하고 그래서 재미없어지고 ㅎㅎㅎ 그래서 실제로 2000년에 회화 위주 방식이 크게 유행을 하다가 2000년대 중반쯤 가면 회화식도 중요하지만 영문법도 필요하다면서 기본 영문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책이 많이 나왔고요.
아무래도 기존의 관습에 저항하는 새로운 방식이 나오면 사람들이 막연히 정답인양 받아들이고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방식의 다양성에서 다른 방식을 새롭게 제안하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다른 방식을 새롭게 주목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둘 다 기존의 방식을 부정하기보다는 나란히 같이 위치하고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오른손분들은 모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실까 궁금했어요.
모야가 기존의 낡은 틀을 뛰어넘은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방식 혹은 소위 선진형(?)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지, 혹은 반대로, 좋은 뜻인 건 알겠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몽상이라 보고 회의적인 시선을 주는 분은 없을지 궁금했어요.
베타 워크숍을 통해 오른손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점이 모야에 대한 열의셨어요. 모야에 대한 맹목적인 긍정에서 나오는 열의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열의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모야 운영에 대한 걱정과 부담이 많으시더라고요.
상호) 그러고 보니 워크숍 전후로 오른손분들과 많은 대화를 주고받은 게 기억이 나는데, 주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궁금합니다.
미선)네 맞아요. 모야의 방식이 기존의 방식과 다른 점이 많고 시작단계이다 보니 모야에 대한 열의가 큰 만큼 부담감도 크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모야의 운영 철학과 방식이 ‘드디어’라고 할 만큼 기쁘고 또 잘 운영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제 막 시작하는 모야에서 오른손분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바가 맞는지, 도움이 될 수 있는지는 불확실했지만 제삼자로서 다른 시선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모야를 정답이라고 생각하시는 오른손분은 안 계신 것 같아요. 하지만 만들기 교육에서 모야의 위치와 모양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아직 명확히 인식하지 못 한 점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 점에서 만들기 수업 진행 경험과 릴리쿰을 통해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모야의 위치를 잡는데 보템을 드리려 했죠.
오른손분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먼저 얘기하는 건 기존의 만들기 수업 방식이 잘못되거나 안 좋은 게 아니라 한 가지 방식만 제공하는 환경이 좋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모야가 다른 방식보다 더 낫거나, 먼저 거나,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한 가지 방식만 제공되었던 만들기 교육 환경에 다른 방식 하나가 새롭게 제공되면서 기울어진 방식의 균형을 맞추고 더 건강한 만들기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죠. 너무 좋잖아요!
기존 방식의 수업에서 아이들이 같은 집, 자동차도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근본적으로 본인이 만들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재료의 물성과 만들기 방식을 선생님의 지도 아래 배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선생님의 지시 없이 본인이 알고 있었던 것 혹은 만들고 싶었던 것을 선생님의 속도가 아닌 아이들 본인의 속도에 맞춰서 실험해보고 만들어 보는 공간도 필요한 거죠. 그동안은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리듬에 맞춰서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본인 집 말고는) 없었는데 모야가 생긴 거예요.
무엇보다 동네 곳곳이 위치하고 있는 작은 도서관 안에 모야를 만든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너무 찰떡궁합이다 라고 생각됐어요. 모야는 기존 방식과 상대적으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들기를 할 수 있어 강제성 없이 자율성이 강하지만 초반에 모야라는 공간을 알고 또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데 동네 단골 이용자가 두터운 작은 도서관에 모야가 생기면 모야의 취약점을 보완하면서 활성화시킬 수 있어 보였어요. 개인적으로 모야의 방식이 몽상이 아닌 현실 가능성을 느낀 점이 작은 도서관에 만들어졌다는 부분이었어요.
암튼 그저 또 다른 방식 중에 하나로서 기존 방식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모야는 굉장히 특이할 것도 완전히 다를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운영에 너무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모야에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본인의 말과 행동이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며 매우 난감해하시는 모습들을 자주 보이셨거든요.
동시에 오른손분들의 입장이 너무도 잘 이해가 돼요.
그래서 모야에서의 오른손 역할이 익숙지 않고 헷갈려서 답답함과 고민이 많으신 건 자연스러운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작은 손이 모야에 왔을 때 지시나 가르침 없이 안전을 느끼며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라걸 인지하고, 또 친숙해지는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은 쉽지도 않고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니라는 점. 게다가 모야의 특성상 작은 손의 반응이나 피드백 등이 바로바로, 분명한 형태로 나타나기 힘들다는 점 때문에 헷갈리고 고민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같아요. 그런 점에서 오른손분들의 고민에 공감이 많이 되고 응원해 드리고 싶어서 좀 더 호흡을 길게 갖기를 권유드렸어요.
방문자수, 방문 빈도, 작은 손의 결과물 수 등의 수치만으로 모야 운영을 평가할 수 없다는 걸 오른손분들도 잘 알고 계시지만 막상 모야를 운영하다 보면 작은 손의 순간의 반응이나 수치적인 결과에 많이 좌지우지될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작은 도서관 속 모야의 존재 자체가 너무 반갑거든요. 한 가지 방식만 존재해서 불균형했던 어린이 만들기 환경에 작은 도서관 속 모야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좀 더 건강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걸 오른손분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기운을 받으셨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려우시더라도 장기적인 시선을 가지고 계속 고민하는 모야가 되었으면 해요.
상호)그럼 이번 베타 워크숍 이야기를 해볼까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나요?
미선) 분해를 끝내고 작은 손이 만들기를 들어갈 때 저도 같이 열심히 만들어요. 말씀드렸다시피 분해 워크숍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콘텐츠 면에서는 고민이 없었어요. 대신 ‘모야’의 특성을 살려서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을 때 작은 손 옆에서 제 것 열심히 만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더라고요.
이유를 간단히 나열하자면
-작은 손과 자연스러운 거리두기를 할 수 있고
-만들기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고
-제가 사용하는 재료나 방법이 작은 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있고
-만든걸 모야에 다양한 모형 중에 하나로 두고 올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만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ㅎㅎ)
개인적으로 나이나 권위에 상관없이 상대방이 우위에 있는 것도, 아래에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되는 걸 지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려는 거죠. 그런 면에서 아이들과 만들기 수업을 할 때 성인이기 때문에 저의 의지와 무관하게 갖게 되는 권위가 불편하고 동시에 무조건 저를 낮춰서 아이들을 우위에 두려고 하는 것은 더 불편해요ㅎㅎㅎㅎ
상대방(아이)의 리듬을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의 리듬을 버리고 상대방(아이)의 리듬에 끌려다니지도 않는, 상대방(아이)의 리듬을 파악해서 제 리듬을 먼저 그들에게 맞추고 천천히 저의 리듬을 제안하는…? ㅎㅎㅎ말장난 같은 얘기로 들릴 수 있는데, 일시적이더라도 아이가 저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래서 가능한 한 그러려고 노력해보는 거죠.
그런 점에서 모야 워크숍에서 제가 만들기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 만들기 분위기도 조성되면서 자연스러운 거리두기가 가능해요. 작은 손들이 만들기를 하고 있을 때 쳐다보고 있으면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무슨 테스트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런 걸 불편해하고 부자연스러워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도 그럴 것 같은 거죠. 대신 제 거를 만들고 있으면서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수시로 관찰해요. 무심한 듯이 요즘에 관심 있는 게 뭔지 물어보면서 아이디어를 던지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서 막혔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작은 손으로 하기엔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는 작업을 도와주기도 하고요.
그림은 실제 있었던 일을 똑같이 재현했다기보다는 만들기 중 어떻게 작은 손들에게 넛지 Nudge*하려 했는지 간단히 그려본 거예요. 작은 손들이 막혀하는 부분에 도움이 될 방법을 옆에서 제가 직접 만들고 있다고 해도 그걸 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할 거예요. 재료를 다양하게 써 볼 수 있도록 기존의 용도와 다르게 접목해보는 시도를 해보지만 작은 손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알 수도 없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아요. 단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인 거죠.
*넛지 Nudge: '(특히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의 영단어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음
그래서 오른손분들에게 옆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만들기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라는 말씀도 드리는데 만들기에 흥미가 없는 분도 계시기 때문에 오른손 각자의 특징이나 개성을 살려 작은 손에게 넛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워크숍에 갈 때마다 오른손분들에게 '(모야의 오른손으로서)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오른손분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ㅠㅠ) 매번 난감했어요. 해드리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해드릴 말이 없기도 했거든요. 전반적으로 ‘오른손의 모험’에서 제시하는 내용 안에서 크게 다를 것 없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의 성향에 맞춰서 사용했던 방법들이 다른 오른손분들에게 맞을지 안 맞을지는 모르는 일이잖아요. 일회성으로 한번 만들고 끝나는 기존 방식의 수업과 달리 꾸준히 방문하면서 만들기를 이어갈 수 있는 모야에서 작은 손마다 각자 다른 맥락이 있었을 텐데 그날 그 상황만 가지고 판단하기도 힘들고요.
결국에는 모야의 '철학과 원칙'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살피고 되새기면서 자신만의 오른손을 만들 거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물론, 오른손 각자의 특징과 개성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과 상황을 알아 두고 자신에게 맞는 걸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의 경험과 생각을 최대한 도움될 수 있는 방향으로 말씀드리긴 했어요. 비단 한 사람의 의견뿐만 아니라 모야를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마다 서로 간의 정보 공유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도 적극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워크숍을 통해 만나 본 오른손분들 대부분이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으시고 그만큼 아이들을 도와주시려는 마음도 더 적극적이고 친절하는다는 게 금방 느껴져요. 그런데 모야에서는 오른손으로서 해줘야 할 것보다 뒷짐 지고 지켜봐야 할 일이 더 많잖아요. 많은 오른손분들이 자녀가 있으셔서 더 잘 아시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직접 도와주지 않고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게 얼마나 어렵나요. 아이들 본인이 어지럽힌 건 본인이 청소하는 습관이나 책임감을 기를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아이들이 청소할 때까지 기다려 주거나 차분이 말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특히나 바빠 죽겠는데 그러면 울화통이... 이런 말 써도 되나?). 그냥 내가 후딱 치워주는 게 차라리 낫지ㅎㅎㅎ.
아이가 모야에 적응하는 걸 도와주고 싶은 마음, 모야의 숨은 재미를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 등은 저도 같은 마음이라서 뭔가 해주게 되고 도와주게 되는 건 정말 이해가 돼요.
무엇보다 도와주는 방법으로 '답으로 가는 가장 먼 길을 제시하자'는데 어디까지가 먼길이고 가까운 길인지 알쏭달쏭하잖아요. 이게 불필요한 간섭인 건지 아니면 내 도움이 넛지가 될 상황인 건지 저도 항상 아리까리하거든요. 특히나 모야 워크숍을 할 때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기분이에요.
상호)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요?
미선)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어떻게 만들어요.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니고 뜨거우면서도 차가워야 하나? 뭔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은데 오른손이 되어서 분해 워크숍을 진행하지만 또 일일 수업 격인 워크숍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아이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 이끌어 줘야 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ㅎ. 암튼 미묘하고 아리까리한 그 적당한 선을 맞춰보려고 매번 긴장하면서 워크숍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모야를 길게 이끌어갈 오른손이 매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기는 너무 피곤한 일일 거예요 (가끔씩 오른손분들과의 대화에서 안전에 문제가 되는 아이들의 행동 외에는 그냥 관찰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적도 있어요ㅎㅎ).
릴리쿰에서 '오른손의 모험’이라는 제목처럼 모야가 오른손 각자의 모험을 시작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건 이런 점들 때문일 거예요. 모험은 하루 만에 일어났다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잖아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서 항상 긴장하면서 모험을 진행할 수도 그냥 멈춰 있을 수도 없을 거고요. 앞에서 언급한 많은 어려움과 답답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과 실패가 난무한 '어린이 작업실' 로서 운영되기 위한 오른손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는 게 오른손의 주 업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고민과 연구의 과정이 오른손의 모험이고 모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다 보면 오른손만의 특징과 개성을 살린 'THE 오른손'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글 _ 상호 (이상호), 오미선
그림_ 오미선
사진_ 릴리쿰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은 릴리쿰, 씨프로그램, 도서문화재단 씨앗, (사)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에 있습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는 릴리쿰, 씨앗재단, 씨프로그램이 함께 만든 도서관 속 어린이작업실로 집이나 일상에서 떠오르는 영감과 호기심을 손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을 위한 공간입니다. 어린이작업실 모야가 도서관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일상에서 창작하는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제3의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모야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린이작업실 모야의 비밀]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