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

예의를 갖추고 대해야 한다.

by 일개의 인간

아픔은 또 다른 아픔을 주고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주게 된다.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이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쉬운 것처럼 상처 또한 받아본 사람이 더 큰 상처를 주게 된다. 선과 악만 순환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 아픔도 전의가 되고 순환이 된다.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다. 상처를 준 사람을 탓하기엔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처를 준다. 하지만 저 반대쪽에는 자신이 겪어온 길을 등지고 다른 길을 가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알코올 중독인 아빠에게 폭력을 당하고 그런 아빠를 감싸는 엄마 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악을 쓰며 버텼는데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스스로 백기를 들고 일주일 간 집을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주위에 보이는 대게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친구들을 보면 약에 중독되거나 혹은 잘못된 관계에 빠지거나 그들의 인생이 다른 쪽으로 망가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곳도 내게 안전 한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더 나은 곳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이었다. 그 이후 나는 가출 시도를 하지 않았다. 집을 나간다 해도 나가서 현실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술을 마시는 아빠를 피해 나와 숨 쉴 곳이 필요했다. 학교를 마치면 바로 도서관이나 근처 음반가게를 전전하다 영화관으로 향했다. 학교생활도 좋지 않았다. 얼굴에 회색 빛을 띄우고 그늘이 져있는 아이들 곁엔 어른도 아이도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당시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활달한 성격을 가지거나 밟은 아이들의 모습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가 보는 나는 성격이 좋아서 나쁜 일은 빨리 잊고 회복도 빨라서 금세 웃고 잘지 낸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잊지 않으면 그 상황에 묶여 있을 것 같았고, 웃지 않으면 내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만 남겨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씩씩하고 밝고 성격 좋은 아이로 남는 걸 택했다.


이렇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자라서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아빠는 여전히 술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된 사람들 대부분은 속을 알 수가 없었지만, 술자리를 가질 때만큼은 그들의 방식대로 감정을 서슴없이 표현했다. 일이 힘들다고 말하면 ‘일은 다 하는 건데 왜 너만 힘드냐’라는 말이 돌아왔고 일이 끝나면 모두 너도 나도 술집으로 달려가 앵무새가 되어 힘들다 힘들다 소리를 내고 서로에게 흥미를 끌고 관심을 주었다. 아마 에이미 와인 하우스가 한국에 있었다면 적어도 그녀는 알코올 중독 진단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제정신이 아닌 날들로 살아가는 일상이 쌓이고 쌓여서 이젠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아빠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한 사람들 틈에서 나의 고유한 영역인 감정을 타인의 의해 억압되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단체생활에 홍일점이 되지 못했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전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속되는 무료함을 멀리하기 위해 틈틈이 사람들도 만나고 일도 연애도 잘하는 듯 보였지만, 우울과 무기력은 나의 가장 가까운 적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고, 어린 시절 겪었던 아빠와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전반적인 나의 관계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는 부모와 다르다. 그렇지만 ‘영향’이라는 건 내 선택 영역과는 별개로 외부에서 전달되는 힘이 조금 더 큰 것 같다. 나는 나의 부모와 다르지만 보고 자란 영향으로 나 자신에게 원치 않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도 자각해야 했다. 나는 나 자신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원하지 않는 외부의 압력으로 상처 입고 아파서 지쳐 있는 상태라면 잘 보살펴 줘야 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적어도 내게 예의를 갖추고 살아야 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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