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기언 Sep 24. 2022

젊은 남자 손님

마흔셋, 책방 알바생입니다만

오늘 저녁에 잠깐 나와 줄 수 있을까?


사장님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저녁 영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은 개성 강한 독립 책방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기도 하고 대형 서점에 맞서 각자만의 특징을 살려 홍보도 잘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알음알음 잘 찾아서 원하는 분위기 따라가는 편이다.

책방들을 지원하는 여러 프로젝트성 이벤트도 많아서 잘 이용하면 동네책방을 책모임을 주도하는 아지트이자 공유공간으로 이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우리 책방도 이번 주부터 청년들이 읽으면 좋을 법한 책들을 세 권 정도 정하고 매주 화요일 저녁에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나온 작가에 대한 물음이라든지 책 내용에서 이해 못 한 내용은 정리해서 직접 작가에게 묻고 답변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주부터 인스타에 홍보를 했는데 한 명 지원했어. 근데 남자분이시네. 목소리가 젊은 친구인 것 같아”


“책이 좀 내용이 무겁나? 그래도 젊은 친구가 지원하는 것 보니까 책 좀 읽는 친군가 봐”


“응 그러게… 근데 단 둘이 하긴 좀 그 친구도 당황스러울 것 같애. 혹시 저녁에 잠깐 시간 되면 앉아 있다 갈래?”


“알았어. 애 아빠 안 늦으면 저녁 차려주고 잠깐 올게.”


“고마워… 근데 너무 무리하진 말구”


운영시간 외 예약 손님이 생기거나 저녁시간에 책방을 열어두는 것에 있어서 본인이 직접 챙기고 운영하는 사장님이 내게 잠깐 나와줄 수 있냐는 요청을 했다는 것은 내게 그만큼 의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이 생기는 순간이다.

별일 없는 평일 저녁은 아이와 남편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다가 고양이가 앞에서 얼쩡거리면 심심한가 보다 하고 낚시놀이를 해준다.

아이는 숙제를 한다고 식탁과 제 방 책상을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고 남편은 서재방에 틀어박힌다.

나는 밀대에 젖은 티슈를 끼고 거실부터 밀기 시작한다.

무릎을 꿇고 구석구석 방바닥을 닦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청소가 끝나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은 날에는 머리를 드라이어로 대충 말린 후 다시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수없이 채널을 돌린다.

맘 놓고 볼만한 프로그램을 찾으면 스르르 옆으로 누워 쿠션에 머리를 얹고 보다 졸다하다가 생각나면 스마트폰을 보다 졸다 한다.

그런 ‘별 볼 일 없이 비생산적인’ 내 저녁시간이 한심하다고 느껴진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일단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있는데 대부분 고양이와 놀고 있거나 티브이를 보고 있다.

동네에 이젠 놀 친구들이 없기도 한 탓이다.

고학년이 되면서는 낯선 친구들과 말 섞기도 창피해하고 땀 흘리며 운동장에서 노는 것도 귀찮아한다.

결정적으로 모두가 학원을 가고 본인도 학원에 가야 하니 아예 친구들과 놀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엄마! 구름이가 나 물었어”


보나 마나 아이가 먼저 고양이를 괴롭혔을 것이다.

외동아이는 외로움을 달래줄 작고 소중한 존재가 자신을 좋아해 주고 따라다녀주고 스킨십을 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고양이란 녀석이 너무나 도도하고 독립적이며 아이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아이는 막무가내로 고양이를 만지려고 하고 고양이는 그런 아이를 피하다 뒤돌아 콱 물어버리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이다.


“네가 먼저 건들었겠지… 어디 물렸어?”


아이는 발꿈치 쪽이 살짝 긁혀 피가 날동말동 하는 상처를 보이며 고양이를 향해 가르랑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캣타워에 앉아 정성껏 제 몸 핥기에 열중이다.


“약 바르고 밴드 붙여. 학원 갈 준비는 했니?”


처음 고양이에게 물렸거나 할큄을 당했을 땐 내가 더 놀라서 고양이를 나무랐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내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도망만 다니기 시작했다.

말귀도 못 알아듣는 짐승한테 혼내봤자 고양이 맘만 삐뚤어질 뿐이다.

그저 담담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넘기는 게 만사 편하다.


잠시 소파에 누웠다.

가을이 되어선지 아침저녁의 쌀쌀한 바람에 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가 않다.

속이 메슥거리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뱃속이 부글거린다.

이른 아침에 즉흥적으로 팝콘을 레인지에 돌려 한 봉지를 뚝딱 먹고 나갔는데 그게 화근이었을까?

자꾸만 방귀가 나오고 배가 아파 화장실을 두 번 다녀왔다.

그런데도 속에 불편하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열었지만 눈앞이 흐려지며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다.

까무룩 정신을 잃듯 잠에 든 것 같다.

그 사이 아이는 혼자서 영어 숙제를 하다가 내 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한 것 같은데 그리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다.

열어놓은 큰 창에서 제법 찬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이케아에 갔다가 편직물로 된 비둘기색 간이 담요를 득템 했는데 간절기 때 소파에서 맨살을 덮는데 아주 요긴하다. 몸의 굴곡이 드러나게 덮이는 보드라운 헝겊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아... 밥도 하기 싫고, 나가기도 싫고, 눈을 뜨기도 싫다.'


그러나 내 생각이 들켜버린 걸까?

제 방에서 숙제를 하다 말고 자체 휴식시간을 선언하며 나온 아들이 배고프다며 아우성이다.


"엄마! 아빠 언제 와? 나 배고파요~"


고양이는 시간 되면 자동으로 급식되는 통에 가서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 새끼인 내 아들은 내가 일일이 챙겨줘야 맘이 놓인다.

혼자서 계란후라이 정도는 해 먹을 수 있게끔 훈련을 시켜놓았지만 계란을 싱크대에 탁탁 두드려 깨는 모습부터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여기저기 튀는 기름과 후라이팬 주변이 난장판이 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는 것 자체가 나에겐 곤욕이기 때문이다.

바위와 바위틈 사이에 끼어버린 듯한 몸뚱아리를 간신히 일으켰더니 살짝 현기증이 난다.

그때 남편의 차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인터폰으로 울린다.


- xxx나 1234 정기 차량이 입차 하였습니다.


얼른 엉덩이를 소파에서 떼어 주방으로 갔으나 딱히 내놓을 반찬거리들이 없다.

이틀 전에 끓여 둔 김치찌개가 아직도 반이나 남아있고, 냉장고에는 다 쉬어빠진 배추김치와 계란장의 계란은 다 빼먹고 남은 간장, 그리고 어제 해둔 콩나물 무침이 전부다.

이럴 땐 계란말이 하나만 하면 된다.

딱히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 남편이라 김치찌개 안의 돼지고기와 계란말이 그리고 조미김정도만 있으면 우리 집 남자들은 한 그릇 뚝딱하는 편이다.

다만, 세 식구 앉은 넓디넓은 식탁 위에 올려진 상차림새에 내가 민망할 뿐이다.


서둘러 계란 4개를 깨뜨리고 우유와 소금, 그리고 후추 썰어놓은 파를 넣어 휘휘 젓는다.

계란말이쯤이야 남편이 들어와 손발 씻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깐 앉아 있으면 다 되는 세상 간편한 반찬이기에 그다지 마음 졸여지지도 않는다.

달궈진 후라이팬에 계란물을 한꺼번에 확 부어서 오른쪽 끝부터 조금씩 말다 보면 어느새 도톰하고 노릇노릇한 계란말이가 되어 있다.

한 김 식히고 나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긴 접시에 담아낸다.


음식을 한 김에 나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기로 했다.

몸을 움직이다 보니 컨디션이 회복된 것도 같아 빨리 먹고 책방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굉장히 관대한 편이므로 저녁시간에 책방에 나가서 독서모임을 한다던가 글쓰기 모임을 한다고 채비를 하면 오히려 반기며 어서 다녀오라고 하는 편이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도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해 준 사람이 바로 남편이기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마누라가 뭔가 좀 쓰면 누가 책이라도 바로 내주는 걸로 착각하는 걸까.

아직 저녁을 먹고 있는 우리 집 남자 둘을 뒤로하고 서둘러 겉옷을 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습기 하나 없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저녁 공기는 그 자체만으로 낭만적 기운을 실어 나른다.

문득 이 계절에 만난 옛 남자와 거닐었던 청계천 돌다리가 생각나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 것만 같다.

가족이 있는 공간을 빠져나온 여자의 영혼은 거리를 가로지르는 가을 공기에 오염되어 로맨스를 회상하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고개를 휘저으며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책방이 있는 상가 2층에 다른 상점들은 이미 불이 다 꺼진 후라 유난히 책방 간판이 환하게 빛나는 것 같다.

사장님이 스피커를 출입문 쪽으로 옮기신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문을 열어둔 채로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흐르는 책방의 조명 또한 적당히 밝으면서도 트렌디한 조도를 갖추고 있다.

과연 사장님과 어색하게 단둘이 있을 그 어린 청년은 정말 와 있을까? 하는 기대 반 설레임반이 섞인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보이는 광경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네이버로 예약한 그로 추정되는 젊은 남자가 한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사장님은 큰 창가 앞에 새로 놓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목요일마다 함께 글을 쓰러 오시는 화가 선생님이 아이와 함께 큰 창가 앞 다른 테이블에서 나란히 앉아 있었고 나이 지긋한 여자 손님이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독서 중인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복작복작한 광경에 내가 앉을만한 곳을 눈으로 쓰윽 둘러보는데 인기척을 느낀 사장님이 뒤돌아서 나와 눈이 마주치며 '왔어? 어서 와 앉아'하는 반가운 손짓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찾아 앉겠다는 신호를 한 뒤 가방을 카운터 쪽에 두고 편히 짱박힐만한 데를 찾았다.


저녁밥을 먹은 후여서인지 꼬륵꼬륵 뱃속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방귀가 나올 것만 같아서 전화가 온 것처럼 폰을 쥐고 급히 열린 출입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아무도 없는 뻥 뚫린 공간에서 있는 힘껏 뱃속의 모든 가스를 내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항문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약간 안심한 마음을 안고 다시 책방으로 들어가는데 한가운데 연한 블루빛 셔츠에 단정한 차림의 안경 쓴 젊은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나보다 열 살 넘게 젊어 보이는 풋풋함에 더한 단정한 차림에 눈이 고와진다.

책을 보는 자세마저 안정감 있어 보이는 게 책을 좋아하고 탐독할 줄 아는 청년이라고까지 속단하게 되었다.

투명한 안경테를 쓴 사람은 아이 학원에 라이딩해주고 커피숍에 앉아 있을 때 떼로 몰려온 젊은 청년들 이후로 두 번째인데 그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센스까지 장착한 '젊은 책 읽는 남자'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주 들락날락해야 할 것만 같은 뱃속의 상태를 감지하고는 남자의 등 뒤에 3단 높은 책장 옆 이케아 유아의자에 엉덩이를 놓았다.

눈앞이 또다시 흐려지고 책을 잡은 손이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모두가 숨죽여 독서를 하고 있는 이 조용한 공간에서 나만 멍 때리고 있기에는 너무 튄다.

오늘따라 사장님이 틀어놓은 음악이 너무나 클래시컬한 느낌이 든다.

내 뱃속 요동을 함께 짊어지고 갈만한 음악이 아닌 것이다.

책장에 몸을 살짝 기대고 흐트러질 것 같은 정신을 부여잡고는 책이 아닌 눈앞에 놓인 광경을 넋 놓고 보기 시작했다.


그가 뭔가를 적으며 책을 읽고 있다.

오른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가 왼쪽 다리로 옮긴다.

그 순간에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탐독의 순간을 나는 멀찍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 아들도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책을 따라다니고 책을 소중히 여기는 남자로 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신생아였을 때는 가수 이승기가 국민 남동생이었다.

그때는 돈도 잘 벌고 착하고 선한 효자 이미지의 이승기만한 롤모델이 없었기에 우리 아들도 크면 '이승기처럼'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아이가 6살 정도 되었을 때 이승기는 군대에 갔다 와서 조금 대중적으로 잊히고 송중기가 빵 뜨고 말았다.

공부도 잘하고 역시 돈도 잘 벌고 효자일 것만 같은 '송중기처럼' 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송중기가 이혼을 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생각이 옅어지고 누구처럼이 아니라 그냥 내 아들로 번듯하게 잘 크면 좋겠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책방에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남자의 듬직한 책 읽는 뒷모습을 보며 우리 아들도 책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발품 팔아 찾아가는 의지력 있는 사람으로 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사장님께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남자가 앉아 있는 중간 긴 테이블로 모이게 했다.

모두 같은 책을 구입해 읽고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에 나만 저만치서 괜히 손에 잡힌 순례 주택을 한 두장 깨작거리다 남자의 등만 바라보다 끌려 나온 처지라 테이블에 합석을 해도 되나 하는 어물쩡거림을 사장님은 어찌 그리 빨리도 알아채셨는지 내 자리도 지정해 주셨다.

바로 그 남자 옆자리.


안타깝도다.

옆모습만 살짝살짝 보다가 뒤에서 뒷모습만 보았는데 정면이나 사선 정면에 앉았으면 얼굴이라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데 하필 옆자리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날의 책은 “배달의 민족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이었는데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거니와 일등으로 지목돼 말을 하기 시작하는 옆자리 남자의 말이 무슨 소리인지도 잘 몰랐다.

아니, 사실은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된 뱃속의 전쟁 발발로 인해 영혼이 탈수기에 넣어진 채로 탈탈 털려 짜내어진 땀이 등으로 쭉 내려오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밖에서 다 짜내어 배출한 줄만 알았던 방귀가 소용돌이를 치며 또다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아우성중이었다.

이번 건은 좀 남달랐다.

마흔 세해를 살면서 아기 방귀와 어른 방귀 그리고 설사의 전초전쯤은 감으로 온몸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건은 감히 예견컨데 그냥 뒀다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척 일어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벤트에는 사진이 필요하다고 사장님이 얼핏 말씀하신 게 생각나 몇 장 찍고는 얼른 전화가 온 척(아무도 나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진 않다) 또다시 밖으로 나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사를 치르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봤다.

‘하아….’

나도 모르는 한 숨.

속을 비워낸 후의 다행스럼일까 아니면 나이 먹고 주책맞게 남들 독서하고 토론하는데 혼자 번잡스럽게 행동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시원한 바람결을 따라 풀벌레 소리가 귀까지 따라붙어 정신을 더 몽롱하게 한다.

테라스의 난간을 붙잡고 난감함을 느낀다.

들어가? 말아?

그냥 이 자리에서 한 없이 있다가 들어가도 상관없을 일이었다.

어차피 나는 머릿수 채우러 온 거니까 갑자리 있다가 없어져도 되는 거다.

그렇게 합리화시키며 서서히 무거운 발걸음 한걸음마다 집으로 가야겠다는 의지를 공고히 다졌다.


책방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는 사장님의 주도하에 활발한 의견이 오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소파에 편하게 앉아 책을 읽고 계셨던 중년 여성분은 마치 본인이 사회자라도 된 것 마냥 혼자 얘기를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살짝 사장님 표정을 보아하니 약간 난처해하는 듯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 끼었네’


의자에 앉기는 부담스러웠고 난처한 사장님을 혼자 두고 가기도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독서모임에 준비 없이 나타난 사람은 불청객이기에 그냥 가기로 했다.


- 언니, 나 배가 부글거려서 정신이 혼미하네. 이러다 바지에 똥테러할까비 오늘은 그냥 갈게. 미안해 ㅠ


메시지를 남기고 사장님과 작별의 눈인사를 마주친 후 서둘러 출입문 밖으로 나왔다.

나오기 직전에 다시 한번 젊은 남자 손님을 힐끔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뭔가를 영수증 뒤에 열심히 적어가며 토론에 열중하는 모습이 살아있는 젊은 피를 새삼 느끼게 하였다.

밖으로 나와 곧장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새어 나오려는 방귀를 애써 참으며 한쪽으로는 나이 먹은 여자의 시선을 젊은 친구가 혹시라도 알아챘으면 기분 나빴으려나 하는 기우마저 들었다.


내게는 누가 봐도 사람 좋아 보이는 말끔한 남편이 있고 잘생긴 아들이 있는데도 가끔은 바깥공기의 이국적 감성을 느껴보듯 다른 남자를 힐끔거리는 것을 나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이… 아직은 팔딱팔딱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치부해버리고 싶네.



2022.9.22 엄기.언








이전 05화 엄마에게 허락된 십 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