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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니 Dec 10. 2020

무감각한 로맨티시스트


"저 제발 무통주사 좀 놔주세요."


진통의 주기는 점점 짧아졌고 내 온몸은 꽈배기처럼 뒤틀리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풍선처럼 부푼 배는 돌처럼 딱딱해지고, 그 돌은 내 온몸을 짓눌렀다. 허리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모습이 꼭 도마 위의 생선 같다고 생각했다. 곧 칼로 내쳐질 일밖에 남지 않은, 불안하고 처절한 존재. 딱딱하고 얇은 매트리스는 허리로 쏠리는 통증을 가중시키는 것만 같았다. 몸을 옆으로 돌리면 침대 손잡이가 손에 닿았다. 나는 그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온 몸으로 매달렸다. 이따금 남편의 걱정 어린 손길이 느껴졌지만 내가 잡을 수 있던 건 그 손잡이뿐이었다.


"아, 제발 좀......"


얼마나 지났을까, 마취과 선생님이 등장했고 연거푸 두대의 무통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 나자 병실 안의 공기가 한순간 달라졌다. 도마 위의 생선 같던 나는 수족관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방금 전까지 고통 속에서 파닥거리던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간호사 선생님들과 농담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서 와. 이런 고통은 처음이지?

 그러게, 생명이 쉽게 탄생되는 줄 알았니?' 하며 나를 옥죄어 오던 놈은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출산 임박의 사인이 곧 찾아옴과 동시에 그 평화는 끝났지만, 그때의 그 느낌을 선명히 기억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면 어떨까. 면역체계에 금이 가면 영양제와 비타민에 손이 가고, 감기에 걸리면 주사를 맞듯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 아픔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 주사를 맞을 수 있다면 말이다. 


아쉽게도 그런 주사는 없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개발된다고 해도 부작용의 시험대에 끊임없이 올라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마음의 심란을 물리적인 주사로 깨끗이 없앨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사실 우리는 각자의 무통주사를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 주사는 부정적인 감정의 소굴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마다의 노력이고,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혼자만의 방에서 혼자 우는 시간이, 곁에 있는 사람의 품에 가만히 기대는 것이, 글 안에서 발견하는 치유의 말들이, 아침의 커피가, 애쓴 나를 위해 대접하는 소박하지만 근사한 한 끼가, 사랑스러운 아이의 미소가, 멍하니 가만히 있는 시간이, 목적지 없는 드라이브가,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것들은 고통으로부터 완벽한 무감각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유로워졌다고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의식적으로 무감각의 힘을 빌리고 싶을 때도 있다. 수없이 많은 훈계와 참견, 조언을 가장한 충고가 범람하는 삶 속에서, 그것들에 철저히 무감각해지고 내면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어떤 것에 마음을 여는 것만이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닫을 용기가 필요하다. 오롯이 내 마음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그것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삶을 재단하고 가치를 매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의 소리들로 차고 넘치는 세상 속에서 내 목리는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잘 들어보아야 한다. 세상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 아니, 휘둘릴 수 있을지언정 휘둘려 선택하지 않는 모습이 필요하다. 세상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 용기 그 자체가 때로는 누군가의 무통주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통이나 아픔으로부터 무감각해지려 찾는 저마다의 무통주사도, 주변의 소음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 택한 선택적 무감각도, 결국은 모두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 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일 것이다. 즉 나의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각자의 고요하고 외로운 투쟁이다. 아픔이나 시련을 방관하지 않고 어떻게든 위기를 바꾸어 보려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진정한 로맨티시스트가 아닐까.





삶을 사랑하는 것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소중히 쥐고 있던 모든 것이

불탄 종이처럼 손에서 바스러지고

그 타고 남은 재로 목이 멜지라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당신과 함께 앉아서

그 열대의 더위로 숨 막히게 하고

공기를 물처럼 무겁게 해

폐보다는 아가미로 숨 쉬는 것이

더 나을 때에도


삶을 사랑하는 것

슬픔이 마치 당신 몸의 일부인 양

당신을 무겁게 할 때에도,

아니, 그 이상으로 슬픔의 비대한 몸집이

당신을 내리누를 때

내 한 몸으로 이것을 어떻게 견뎌 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당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듯

삶을 부여잡고

매력적인 미소도, 매혹적인 눈빛도 없는

그저 평범한 그 얼굴에게 말한다.

그래, 너를 받아들일 거야.

너를 다시 사랑할 거야.


-엘렌 바스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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