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밑줄 긋는 마음으로
오전 10시 50분 기준 영상 1도. 최고 온도 3도, 최저 온도 영하 2도. 게다가 오늘은 눈 예보가 있다. 누가 보아도 겨울이 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오늘의 날씨. 불과 이틀 전과 비교해서 20도 차이가 나는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던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곳. 또는 지금까지 누리던 것들이 불가해지는 곳. 하기야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을 살고 있으니까. 내가 운전을 한다는 것 (이 지역 도로주행시험을 4번 만에 붙었다), 핸드폰 속 사진으로만 수없이 들춰 보던 이 집에 내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것 등등. 꼭 처음부터 이렇게 살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원래는 인터넷으로 장보는 것이 습관이었다. 식재료가 떨어지면 손가락 터치 몇 번만으로 그다음 날 새벽, 그러니까 몇 시간 후에 구매한 것들을 받아볼 수 있었다. 마트에 직접 갈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정이 다르다.
나는 어느새 소고기와 삼겹살은 costco, 양파와 대파 그리고 몇 가지 과일은 aldi, 한국 식재료는 green onion, 아이가 먹는 몇 안 되는 간식들은 harvest라는 마트를 주로 찾는다. 떠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물품별로 따로따로 구매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에 사버리면 되지, 뭘 그렇게 수고스럽게? 심지어 이 지역은 각 장소가 뚝뚝 떨어져 있어서 차로 15-20분 이동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이곳에 온 지 불과 3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처음부터 쿠팡이나 마켓컬리를 몰랐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곳 생활에 녹아들어 가고 있다.
큰 불편함 없이 적응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어느샌가 너무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기도 했다. 다시는 없을 오늘 그리고 이곳에서의 생활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해야 한다는 불안감. 예전의 나였다면 ‘추억들은 내 마음속에 간직하면 된다’는 일념으로 매일을 살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몇 년의 육아 경험으로 이미 내 기억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알고 있어서다.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어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너무 소중해서 찍어댔는데 지나고 보니 바닥에 흩뿌려진 낙엽들과 다름없었다. 하나하나가 다 특별했는데 그 특별한 것 위에 특별한 것이 쌓이고 그게 반복되니 어지러워졌다.
보기에는 예쁜데 누군가는 치워야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낙엽은 점점 ‘이걸 다 언제 치우나’하는 생각으로 연결되듯이 내 사진과 동영상들도 마찬가지였다. 거리의 낙엽은 감사하게도 나보다 더 부지런한 분들의 수고로 제 자리를 찾지만, 내 낙엽은 내 몫이다. 그러니까 다른 기록의 방식이 필요했다. 결국은 또 돌고 돌아 ‘쓰는’ 기록의 방식이 제일 의미 있게 느껴졌고 이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온통 다른 언어로 둘러 쌓인 이곳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그 속에서 나는 외톨이 같고 우울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홀로 있을 수 있음에 살며시 웃게 될 때가 있다. 거울을 보려면 거울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야 하듯이 나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 살짝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임에 틀림없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내 불안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떤 때에 행복감을 느끼는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해보는 등 여러 상황에서의 나를 관찰하고 있다. 주체로서의 나와 객체로서의 나를 오가면서 나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아이의 계속되는 기침으로 사흘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고 좀처럼 펴지지 않는 어깨와 허리 그리고 왼쪽 눈의 다래끼를 얻었지만, 전과는 다른 내가 보인다. 모든 것들을 잠시 뒤로 하고 카페로, 도서관으로 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내가 있다. 그렇게 비축한 정신적 에너지를 가득 안고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을 수 있음을 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나를 등 떠밀어주는 남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