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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을 다시 배우는 섬

낯선 섬에서 가장 먼저 적응한 건 코코였다

by Remi

제주로 이주하던 날, 공항의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바람 한 줄기가 스쳤다. 소금기 어린

바람이었고 낯선 섬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아이들도

짐도 아니었다.
단단히 안겨 있던 코코였다.
작은 심장이 내 팔 안에서 두두둑 하고 뛰고 있었다.

아들은 코코의 캐리어를 꼭 쥐고 있었고
딸은 캐리어 구멍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코코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었다.
둘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손끝에는 ‘우리가 지켜줄게'라는 묵묵한 약속이 있었다.

사실, 그 약속이 시작된 건 제주로 이사 오기 훨씬 전이었다.




2년 전 어느 날, 육지에서 아이들과 시내로 가는 날, 반짝이는 유리문 너머에서 눈송이처럼 작은 말티즈

한 마리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짖지도 않고 그저 눈만 맞추는 아이였다.

아들은 그 자리에서 숨을 멈추듯 조용해졌고
딸은 “엄마, 저 강아지 너무 예뻐”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 셋의 마음이 동시에 흔들린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아들과 딸이 나에게 각서를 갖다 내밀었다.
‘우리가 매일 산책시키기’,

'목욕시키고 말리기',
‘밥 챙기기’,
‘아플 때 책임지기’.
어린 글씨지만 진심만은 선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마리의 생명은 충동으로 데려오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3 때 키웠던 아이가 15년을 살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 나는 다시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이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준비가 끝났을 때 오지 않고
준비가 안 되었을 때 문 앞에 서는 것.

그 작은 말티즈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우리는 결국 서로를 택했고 그날 코코는 가족이 되었다.








제주로 이사한 첫날, 집 안은 엉망이었다.
박스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인터넷도 안 되고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투덜대고
나는 이미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가장 침착한 건
아이들도, 나도 아닌 코코였다.

코코는 조용히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새로운 냄새를 맡고 낯선 벽과 바닥을 확인하고
그러고는 딸아이 무릎 위에 툭 올라가 앉았다.
마치 “괜찮아. 나 여기 있을게.”라고 말하듯이.

그 순간, 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설렘과 피곤과 불안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아들은 괜히 기침을 하며 딸의 머리를 툭 치고 말했다.
“야, 코코가 너보다 씩씩해. 울지 마.”
그러고는 얼굴을 돌렸지만,
코 끝이 빨개진 건 숨길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제주 이주를 결심했던 진짜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삶이 너무 빠르고 관계가 너무 복잡해서
내 마음 어딘가가 자꾸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학업, 속도, 경쟁.
작은 어깨에 올리지 않아도 됐던 것들이
하루하루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이 섬에서라면
아이들이 좀 더 천천히 자라지 않을까.
나도 조금 더 숨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코코와 함께라면…
우리가 다시 가족의 중심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이사 후 일주일이 지나던 어느 날,
우리는 제주에서 첫 산책을 나섰다.

해 질 무렵, 주황빛 하늘 아래 코코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섬을 알고 있었던 생명처럼
경쾌하게 바람을 가르며 걸었다.
파도 소리가 멀리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펼쳐졌다.
아들과 딸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코코를 더 잘 보겠다며 앞질러가는 것이다.

“코코, 발 조심해. 이 돌 멸치처럼 미끄러워.”
“아니야, 코코는 원래 이런 데 잘 걸어. 산책은 내가 해봐서 알아.”

누가 더 코코를 안전하게 인도하는지
마치 두 아이가 조용한 승부라도 벌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돌봄의 감각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 작은 섬과 작은 강아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걸.

그날 밤,
딸은 코코의 발을 닦으면서 말했다.
“엄마, 코코는 우리가 해주는 거 다 아는 것 같아.
기다려주는 거, 좋아해 주는 거.”

아들은 옆에서 중얼거렸다.
“코코 때문에 우리가 싸우는 시간도 줄었어.”

나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제주로의 이주가 옳은 선택이었는지 확신이 없던 마음에 비로소 바람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요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코코는 결국 우리보다 먼저
이 섬과 우리 가족의 속도를 맞춰주고 있는 건 아닐까.

제주는 조용하고 바다는 변함없고
산책길은 늘 새로운 냄새로 아이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 속에
코코가 있다.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예전의 나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내가 있다.

이 섬에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제주로 내려온 이유가
집값도, 풍경도, 휴식도 아닌
서로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속도를 찾기

위해서였다는 것.

그리고 그 속도를 제일 먼저 알려준 건
겨우 몇 킬로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생명, 코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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