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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Jul 18. 2018

씨엠립 톤레삽 총크니어 맹그로브숲과 수상가옥


우리는 톤레삽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까? 선착장에 도착한 뒤 배를 타고 맹그로브 쪽배 탐험하는 곳으로 또 다시 이동했다. 보통 쪽배 체험을 하러 깜뽕블럭에 많이 간다고 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물이 말라 체험하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는 물이 남아있는 총크니어로 향했다.



2인씩 짝을 지어서 쪽배에 올라탔다. 가이드는 배에서 내릴 때 뱃사공에게 팁으로 1달러 정도 주라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뱃사공의 노질로 쪽배는 맹그로브 숲을 깊은 곳으로 향했다.



들어서기 시작한 순간부터 입이 쩌억 벌어지는 광경들이 펼쳐진다. 나무 군락들이 어마어마해서 약간은 무섭기도 했다. 자연의 웅장함에 절로 엄숙해지던 순간이다. 이 지구상에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참 많았구나,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톤레삽은 아주 고요했다. 데칼코마니를 한 듯 수면 위로 나무들이 떠있었다. 쪽배가 움직이며 수면 위 고요한 반영들이 일렁였다. 반짝반짝 내리쬐는 햇살은 호수 위로 부서졌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보는 내내 탄성을 멈출 수가 없었다. 모두가 넋을 놓고 맹그로브 숲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갔던 시기는 캄보디아의 건기였다. 우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나뭇잎들이 무성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물이 말라 이마저도 볼 수 없을 뻔 했으니 말이다.



맹그로브 숲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어느 청년을 만났다. 그는 우리를 향해 눈인사를 하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웃음이 순박했다. 그리고 새카맣게 그을린 몸은 무척 건강해 보였다.



가이드가 톤레삽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톤레삽은 건기 때 여의도 정도의 크기였다가 우기 때 전라도 만큼 커진다고 했다. 톤레삽은 엄청난 크기의 호수여서 마치 바다처럼 보이기도 했다.



톤레삽의 흙은 황토가 대부분이라 흙탕물 같이 누렇게 보였다. 하지만 보기에만 뿌옇게 보일 뿐 1급수의 깨끗한 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톤레삽 주변에는 공장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호수 속에 중금속이 없다고 했다. 톤레삽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들이 여러 오물들을 호수에 버리지만 우기가 되면 톤레삽에 부레옥잠들이 잔뜩 나타나 호수를 정화시킨다고 하더라.



쪽배는 맹그로브 숲을 지나서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상 가옥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 위에 떠있는 집이라니! 총크니어(chong kneas)라고 불리는 이곳은 캄보디아인들과 전쟁을 피해 캄보디아로 넘어온 베트남인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물 위의 생활은 우리네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빨래를 하거나 밥을 짓는 사람,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는 사람 등등 물 위에서도 모든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고 있었다.



쪽배를 타고 다니며 마음이 아렸던 순간이 있었다. 몇몇 아이들이 작은 스티로폼 상자나 플라스틱 상자에 올라타 조그만 손으로 노를 저어 쪽배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아이들은 쪽배를 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원달러를 외쳤다.



가이드는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외쳐도 절대 주지 말라고 했다. 만약 돈을 주게 되면 이곳의 어른들은 자꾸만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낸다고. 학교 갈 시간에 아이들은 노를 저어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니 큰 문제라고 하더라.



마음이 참 아팠다. 뱃사공에게 건냈던 1달러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1달러. 이 나라에서 1달러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 것일까?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뭐라도 좀 챙겨올 걸 그랬다. 인형이나 장난감, 색연필, 크레파스 같은 아이다운 것들을 말이다. 아이들에게 돈 말고 다른 것들을 쥐어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가이드는 캄보디아가 굶어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아주 풍요로운 땅이라고 말했다. 지천에 과일이 넘치고 똔레삽에 그물을 내리기만 하면 생선들이 가득 잡힌다고 했다. 어느 기관에서 세계 행복 지수를 조사했더니 부탄이 1위, 캄보디아가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두 국가 모두 우리의 기준으로는 최빈국에 속하지만 행복 지수는 다른 나라들 보다 높았다.



잘 살고있는 캄보디아에 제국주의자들과 우리 같은 관광객들, 자본가들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점차 변한 것이 아닐까? 돈 맛을 들이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 눈을 뜨면서 남들과 비교하고 만족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 스스로 이들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찌든 나의 편협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이제 쪽배는 수상가옥을 벗어나 맹그로브 숲으로 길을 틀었다. 뱃사공의 노질은 힘이 넘쳤다. 처음 쪽배를 탔었던 곳으로 돌아왔다. 쪽배에서 내리면서 뱃사공에게 팁을 건내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 큰 배를 타고 일몰을 보기 위해 망망대해 같은 톤레삽 어딘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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