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이 도덕에 어긋나고 음란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인간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이케다 키요히코
‘불륜도 사랑이다’ 라는 주장에 합리적인 근거를 대기 위해서는 두 얼굴의 남자가 되기를 포기해야 함이 마땅하다. 가정을 깨고 싶지 않으면서 밖으로 눈을 돌리는 남자들은 아내에게도 그리고 만나고 있는 내연녀에게도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이 책에서는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두 얼굴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한다. 아내의 입장에서 역지사지 하며 남편을 헤아릴 만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자의 불륜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현재의 결혼생활이 대단히 행복하고 뭐 하나 부족한데가 없으며 따라서 지금의 행복을 깨고 나올 생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눈을 돌리는 남자, 가정생활의 불행함을 외도로 푸는 남자, 이 두 가지의 경우는 그래도 가정을 져버릴 생각은 없는 경우이고 마지막 한 가지 경우는 내연녀에게 인생을 거는 경우이다. 가장 위험하면서도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래도 마냥 비난보다는 ‘그래도 사랑이었다’ ‘진짜 사랑하긴 하나부다’ 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불륜의 형태이기도 하다.
법으로 묶여있는 관계, 즉 서로에 대한 책과의무 및 권리 행사를 법으로 보장받는 관계가 바로 부부이다. 부부사이에서도 권력구도가 돈과 섹스, 배우자의 직업 유무 및 배우자 집안의 사회적 위치 등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부부관계 사이의 권력구도의 모양이 잡힌다는 것은 부윈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자가 불륜을 하는 많은 이유들을 많은 심리학자 들이 앞 다투어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한국 남성들이 독특하게 겪는 ‘중년의 위기’라는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주 드물지만 모든 걸 다 가진 남자 A가 있다. 잘 나가는 직장에 아내로써 엄마로써 흠잡을 것 없이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다 하고 있다. A는 아내를 사랑한다. 달아 오르는 욕정과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결혼한 지 20년 차에 배우자에게 사랑을 갈구 한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저 함께 아내와 은혼식을 하고 아이들 결혼식장에서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고 함께 요양원에 들어갈 거라는 걸 잘 안다. 둘을 반씩 닮은 아이들이 커 나가는 것도 A의 큰 기쁨이자 성취감이다. 그러나 A는 가끔 성매매를 하기도 하고 해외 출장지에서 만난 여인과 원나잇 스탠드를 즐긴다. 휴대폰 관리만 철저히 잘 하고 아내가 모르는 비밀 카드만 관리 잘한다면 문제 될 것 없다. 아니 벌써 십 수년째 그렇게 관계를 잘 유지해 오고 있다.
사실 남자A의 케이스는 대한민국의 기혼남들이 한번 쯤은 꿈꾸는 시나리오 이다. 가정과 일에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짜릿한 외도의 스릴까지 만족시킬 수 있다. 다만 이는 언제까지나 아내에게 들키지 않는 다는 조건이며 먼 훗날 아내에게 들키게 되면 부부관계에 위기에 빠진다. 바로 파멸이나 파탄이 난다고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A는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아내가 배우자로써, 아이의 엄마로써 역할에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가정이 깨지도록 가만히 두지 않는다. 사정을 하며 매달리든 아내의 경제력에 대한 회유책을 쓰든 심리상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부부관계 회복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주위에서 제일 흔하게 보이는 불륜의 케이스는 바로 애초에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이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리처드 테일러 (Richard Taylor, 1919 ~2003) 에 따르면 불륜이 결혼을 망치는 게 아니라 ‘끝난 결혼’이 불륜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즉, 외도는 표면적으로나마 유지하고 있었던 결혼을 단박에 부셔 버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며 이미 남편과 아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얄팍한 관계를 인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아내가 남편에게 찾아오는 중년의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 남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아이를 향해서만 쏟는 경우 미성숙한 남자들은 ‘외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대개가 파멸로 끝나며 관계의 파국, 그리고 남자의 인생이 무너지는 치명타를 겪는 것이다.
내가 아는 B가 나에게 아내와 이혼소송 중이라는 얘기를 털어놓았을 때 나는 몹시 놀랐다. 아내와 자식밖에 모르는 팔불출 소리를 들음직한 남자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카톡 프사에 단란한 가족사진의 모습을 올려두곤 했기 때문이다. B는 사실 아내와 각방을 쓰며 지낸지 꽤 됐으며 필요한 말 외에는 서로 주고받지 않는다고 했다. 길게는 몇 달 씩, 혹은 1회성의 만남을 가졌다. 유부남이라고 밝힌 경우도 있었고 속인 경우도 있었다. 아내에게 발각되었고 분노한 아내는 양가에 알리며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아내와 특히 아이들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깨달았다. 불륜이 발각된 후 아내가 상대 여자를 향해서도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말을 내뱉었을 때 B는 그저 상황을 회피하며 무기력하게 있었다. 결국 아내와 불륜녀 모두에게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모든 재산을 아내 앞으로 들린다는 각서에 공증까지 받은 후에야 이혼소송을 취하했고 그 이후로 B는 집 안의 공기처럼 지냈다. 반 년 쯤 지났을 때 이번에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 왔다. 아내는 남편의 외도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고 아이들도 엄마의 결정에 지지한다고 했다.
현재 B는 고시원 원룸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에 아내에게 재산분할을 해주고 양육비를 제하고 나자 중소기업 신입사원이 받는 월급을 겨우 손에 쥘 수 있었다.
B의 이야기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외도 이혼 케이스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 결혼 십년 차 쯤 지나가고 더 이상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남자, 돈버는 기계로 나머지 여생을 살까봐 우울한 남자, 아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밖으로 눈을 돌린다. 기분 좋은 새로운 자극, 낯섬, 죽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연애 감정이 샘솟으며 더 젊어진 것 같고 엔돌핀이 온 몸을 감싼다. 수많은 외도 전문가들이 외도를 두고 미성숙한 성인의 무책임한 일탈이라고 입을 모으는 주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때문이다. 불안하고 냉랭한 부부관계에 대한 해결책을 아무런 대책 없이 외부에서 찾았듯이, 이로 인해 상처받은 아내와 불륜녀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처럼 움츠러든다. 불행한 결혼생활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 이런 회피와 남 탓을 일삼았던 남자의 책임이다. 성숙한 남자라면 결혼생활이 불행한 이유에 ‘무심한 아내탓, 게으른 아내탓, 성격도 외모도 변해버린 아내탓’을 하면서 집 밖에서 행복의 파랑새를 좇지 않는다. 그토록 좇아다니던 파랑새가 바로 우리 집에 있다는 걸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의 인생인 것이다. 불륜의 세 번째 유형은 바로 모두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과 고통을 오롯이 받아 들이는 경우이다.
종민은 이혼 한지 벌써 10년째에 접어드는 사십대 후반의 남성이다. 이혼하기 전 종민은 쇼윈도 부부로, 그리고 아이를 위해 이번생은 희생하기로 체념하고 아이 아빠로서만 삶을 살고 있었다. 많이 억울했지만 아이를 위해서, 또 이혼은 패가망신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가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속 얘기를 털어놓을 때는 결혼이 후회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거기까지 였다. 그러다가 대학교 후배를 모임에서 거의 20년 만에 재회하게 됐다. 걷잡을 수 없이 그녀에게 빠져 들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야 종민은 살고 남은 약 반백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여자라도 생겼냐는 아내의 질문에는 순순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재산과 면접교섭에 관해서도 순순히 아내의 뜻을 따랐다.
종민은 아내와 아이들의 뜻에 따라 아이가 클 때까지 아이와의 면접교섭을 포기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지만 이미 어느정도 예견한 일이었다. 대신 이 생에 다시 없을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혼 이후 재혼을 염두에 두고 사랑의 완성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대학교 후배와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자 다툼이 잦아졌다. 예비 장인 장모의 반대가 극심했다. 결국 울고 불고 세상 없을 로맨스 영화를 연출하다가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혼도 하고 다시 없을 사랑도 잃었다. 괜히 여자 하나 잘못 만났다가 인생이 쪽박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 아니냐고 친구과 가족으로부터 질책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종민은 진심으로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처음부터 종민도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건 아니었지만. 이혼의 결심하게 된 모든 선택의 단계에서 그는 충분히 고심하고 선택을 내렸다. 만약에 감정이나 기분에 휩쓸린 결정이었으면 아내, 대학교 후배, 등등 타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민은 자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홀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매우 드문 경우기는 하지만 종민은 이혼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오롯이 맞서고 있는 나의 지인이다.
담담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그를 향해 어떤 비난을 할 수 없었다. 가족의 탄생과 해체 라는 개념이 결혼과 이혼, 재혼 이라는 관계에서 확장되어 졸혼과 비혼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듯이 법률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관계에 대한 개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다. 내가 원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형태의 불륜의 양상에 대해서는 훗날 가족의 개념과 해체, 사랑의 개념이 조금 더 유연해질 가까운 미래에 재평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