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동호회에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 보면 테니스는 어릴 때야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 동호인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어디 테니스 뿐이랴. 뭐든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좋다. 골프도, 수영도, 요가도,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어릴수록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배우기도 쉽고, 잘못된 ‘습’이 들지 않아서 훨씬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 아오~ 왜 이렇게 안되냐. 난 진짜 멍청이야.
나는 스스로에 대한 짜증으로 라켓으로 머리를 통통 튕겼다.
서브&발리, 발리&스매시 레슨을 받으면서 내 한계가 느껴졌다. 코치님이 요구하는 포인트를 머리로는 알아 듣겠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계속 설명을 들어도 도통 모르겠는 경우도 허다했다. 포핸드와 백핸드 그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스트로크를 바른 스윙폼으로 성공 시키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 소위 ‘볼빨’ 이라고 하는 공의 힘도 세지고 라켓의 스윗 스폿에 맞추는 비율도 점점 늘어났다.
문제는 발리였다. 포핸드 그립이 아닌, 발리그립은 계속 손목에 부담이 가거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 상태로 바운드 없이 공을 맞추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불편하다는 말은 발리 그립으로는 도저히 손목에 힘이 안들어 간다는 뜻. 자꾸만 그립이 돌아가는 (내가 절대 돌리려고 돌린게 아님) 나를 향해 선생님이 소리 질렀다.
- 그립, 그립 또 돌아간다.
- 선생님, 저는 그냥 운동신경이 없나봐요.
나는 계속되는 스트로크와 발리 레슨으로 가뿐 숨을 몰아쉬다가 나는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나는 운동신경이 없으니까, 어릴 때부터 시작하지 않아서 몸에 나쁜 습관이 들었으니까, 등등 이유와 핑계거리는 다양했다. 테니스는 잘 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지금 노력으로도 충분하니까. 난 그저 운동 쪽으로 소질이 없는 사람일 뿐이니까.
- 그걸 변명으로 할 순 없을 것 같은데요.
- 네? 저는 진짜 운동 신경 없는데.
코치는 옆 코트에서 열심히 슬라이스, 하이 발리, 로우 발리를 연습중인 40대 여성 회원들을 가르쳤다.
- 저 분들... 얼마나 연습하실 것 같아요? 매일 같이 아침저녁으로 와서 볼 치는 분들이에요. 1년을 꼬박하세요. 2년, 3년 째 매일 같이 테니스장에 나오시는 분들이죠. 제가 좋은 얘기만 했겠어요? 그렇게 서브 넣을 거면 때려 치워라. 왜 말을 못알아 듣냐. 소리 지르고 면박도 주고... 묵묵히 견디시는 분들이에요. 또 그렇게 견디고 인내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윙이 좋아지고, 볼 컨트롤이 좋아지고, 볼의 힘이 세지죠. 그래서 계속 하다 보면 또 정체되었던 스킬이 좋아지고... 테니스는 그렇게 인내력을 끊임없이 시험하게 하는 스포츠에요.
코치님은 뭐라도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얼이 빠져 있는 나에게 결정적 한방을 날렸다.
- 그런데, 운동신경을 있다 없다 얘기하기에는 지금 아직 시작도 안한 느낌인데요.
어쩌면 나는 운동 신경이 없다는 핑계로, 내가 테니스를 못 치는걸 합리화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 반, 이대로 안주하고 싶은 마음 반 그러면서 그냥 누구라도 붙잡고 투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몇 년째 하다 말다를 반복하며 만년 테린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으로 웃음기가 가신 채로 라켓을 꼭 쥐었다. 온갖 핑계를 대며 연습과 레슨을 등한시 하고 입으로 ‘나는 운동신경이 없어서...’라고 대꾸하던 지난 날들이 떠오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불평도 열심히 해보고 난 이후에 할 자격이 있는법...나는 그 날 이후로 테니스에 ‘찐마음’을 보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