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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뢰렉신 Nov 22. 2017

우리는 인연일까?

좋아한다 말해주면 시작할게요.


운명, 인연
우리는 어디까지 그것을 신뢰하고
 어디까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까?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성큼 다가왔다.
그동안 들키지 않았던 마음에 놀랐고,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그 의도 어린 말과 행동의
산하 된 조각들이 모두 이어 붙어지면서

그 마음의 큰 그림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1. (起)

: 세렌디피티(2001)

운명은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 쉽게 결정하지 말자.

A를 위한 무언가를 찾고 뒤지고 헤매다가 우연히 B를 위한 C를 발견해낼 때가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연히 발견한 C를 통해 B라는 것을 얻어 내는 상황.


뜻밖의 행운(Serendipity) 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신처럼 내게 붙어 있는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원할 수록 얻어지지 않는’


이런 트라우마 때문인지, 무언가를 갈구하는 행위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은 일부러 머리 속에 두지않고 멀찌감치 거리를 둬야 우연히 얻어낼 수 있다라는 신념을 갖기 시작했다.


운명이라면 꼭 우연히 얻어낼 것이라는 신념.

사실 우연도 과정이 있다. 그래서 필연 일지도.

소년에서 청년으로 나이를 먹어가고, 사람 관계의 대역폭이 넓어지고, 누군가와 깊은 관계로 발전해나가는 사회적 성숙함이 시작되면서 주변에 의식하지 않았던 사람 중 한 명이 사소한 계기 하나로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역사를 경험하였다.


그 짜릿함 때문에 세렌디피티 같은 상황에 닥치면  뭔가 이건 굉장한 인연이야, 운명일꺼야 라는 자기 뇌에 빠져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는 초반부터 무작정 좋아해 버렸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늘 오래가지 않고 시시하게 끝이나 버렸다. 우연의 판타지는 설레발스러운 만남까지만 유효하고 그 뒤부터는 수십, 수백 가지의 현실의 벽이 나를 좌절시켰다.


그럼,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고 숙성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2. (承)

: 너의 이름은(2016)

정말 운명같은 사람을 만나면 방울 소리가 들릴까?

무스비(結び) ; 맺음, 매듭


사람을 잇는 인연이란 실의 매듭은 뒤틀리고 엉키고, 때로는 돌아오고 멈춰 서며 그러다 또 결국 이어지기도 한다.


절대 만날 수 없고, 만나면 안 되지만, 반드시 만나야 하는 운명적 사람에 대한 동경심은 오래 전부터 늘 내 무의식 속에 박혀있었다. 그리고 한 번쯤은 그런 인연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번지르르한 생색일 뿐이지 현실은 비루한 인연들만 수두룩 주변에 버티고 있고, 뒤통수 때리는 사람과 인연으로 엮기지 않아도 감사할 뿐이었다.

만날 사람은 만나러 가야 만나진다.

인연은 한가닥의 실처럼 금방 끊어질 수도 있는 가느다라함의 위태로움을 가지고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신뢰와 긍정적 이야기들이 상호 교차하며 매듭으로 굳게 묶이면서 더 이상 끊어질 수 없는 관계로 탄탄하게 만들어져 간다.


또한 그 매듭의 엮기에 있어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계속 이어지는 관계는 서로를 통해 뭔가 더 확장이 되거나 성장하고 있다는 욕구가 충족될 때가 아닌가 싶다.

 

즉,


새로운 경험을 함께 나누고
서로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



여기서 ‘함께’, ‘서로’라는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

불평등한 관계는 어차피 한쪽의 피로감 때문에 쉽게 금이 가기 쉽다. 그렇다고 A와 B의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5대5로 딱 떨어지는 공평한 등식적 관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A의 확장되고 성장하는 삶에 B가 함께 해주고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면, 그걸로 모든 평등의 등식은 성립하는 것이다.      

너의 이름, 아니 존재를 기억할 수 있을까?

결국 서로의 경계가 확장되고 그 부분을 늘 함께 나누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나간다면 둘 사이의 교집합이 그만큼 커져 서로 더욱 만족스러운 관계의 매듭으로 엮겨 나간다.


그러나 진전되는 인연이 매듭으로 엮기는 과정은 논리로 분석하고 이성의 잣대로 규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태 고유의 유전자가 다르고 오랜 시간 다른 환경에서 형성된 2차적 성격과 성향이 다른 상식을 만들어 놓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언젠가 드러나는 이런 서로에게 반전되는 부분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3. (轉)

: 이터널 선샤인(2004)

생각해보면 아픈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더 많다.

인연을 통한 매듭이 아무리 탄탄하게 엮여 이어진다 해도 언젠가 서로의 다름에 대한 권태감으로 매듭이 꼬여버려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서로의 다름에 불안해하고 서로의 낯선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그동안 느꼈던 서로의 동일성만에 기억을 의존하게 되면서 편협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인정되지 않는 서로의 다른 모습들은 언젠가 잠재해 있다가 크게 터지고 만다.

생각해봐.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꿈같이.

그 시점에 오면 아무리 서로 사랑했다고 해도, 좋았던 기억들보다는 좋지 않았던 서로의 모습이 더 크게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각자 같은 결론을 내버리고 만다.  


‘우리는 성격이 맞지 않아’


연인들이 가장 흔하게 이별의 정당한 이유로 내세우는 그놈의 ‘성격차이’

사실 상대와 나의 다름과 낯선 것들은 처음 만날 때부터 알고 있던 것이다. 아니 그런 다름과 낯섬의 아우라를 통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 다름에 서로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만나왔음을 유실해버리고 이제 와서 다름을 내세워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그것이 헤어져야 하는 당연한 이유로 생각하는 어패를 저지르고 있다.


그럼 다시 한번 사랑을 믿고 인연을 숙성시키는 과정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4. (結)

: 만추(2010)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생은 무르익는다.

어쨌거나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사람은 결국 소진되어 가생을 채워내야 하는 여러 가지 중, 스스로 혼자 채워 낼 수 없는 부분이 ‘외로움’이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건 그 무엇보다도 오직 ‘사람’ 뿐이다.


따라서 사랑이라 함은 외로움에 절박한 사람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사람으로부터의 외로움. 그건 분명 모든 인연, 모든 감정의 시작이다.



한 남자가 자신의 부인을 농락한 훈(현빈)에게 어떻게 그 사람(부인)의 마음을 얻어냈냐고 물었다.

훈(현빈)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냥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만이 채워 줄 수 있는 외로움.

단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인연은 이어지고 사랑이 깊어질 수 있다.


대화를 하다 보면 들숨과 날숨이 딱딱 들어맞으면서 내가 예측하는 생각을 내 입으로 말하기 전에 미리 말해줘서 자연스럽게 "그렇지요! 맞아요 맞아!"라는 말을 내뱉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아! 이 사람하고는 밤새 대화해도 끊기질 않겠어!

아니 평생 대화 해도 끊기지 않을 거 같아!

이렇게 대화가 끊이지 않고 생성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 매일 얘기해도 새롭고 재미있는 대화가 생겨날까? 침묵의 순간이 올 법도 한데 서로 더 말하고 싶어 안달이다.


얼마 전 종영된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그랬다. 상순 오빠와 얘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데, 더 얘기하고 싶어서 상순 오빠랑 결혼한 거 같다고.


인연의 시작과 숙성의 과정을 보면 각자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렇게 이야기로 겹겹이 쌓인 서로의 신뢰와 호기심은 그 무엇보다도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 붙여준다. 이렇게 발전된 관계는 신기하다 못해 판타지스러움을 대입해도 모자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늘 보아오던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사람이,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조차 전혀 몰랐던 사람이 어느 날 자석처럼 내 옆에 딱 붙어 버렸다. 극성을 바꾸어 떨어뜨리려 시도해봤자 헛수고였다. 내가 N극으로 바꾸면 상대는 S극으로 변했고 상대가 N극으로 밀어내면 나도 모르게 S극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만큼 멀어져 있어도 곧 딱 붙을꺼야. 2초 뒤.

몇십 년간 가꾸어온 본래 성향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사람에 맞게 변해가고 있었고 그 사람은 나에게 맞게 변해가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아! 이 사람 나에게 맞게 변하고 있어!’ 하며 잔잔한 벅차오름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 맞는 극성으로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유기적 모습에 놀라웠다. 이러니 뭘 해도, 뭘 바꾸려 해도 관계의 조절이 될 수가 없었다. 의식적으로 밀어내도 잠시뿐이었다. 상황에 맞게 환경에 맞게 우리는 서로의 극성을 자유자재로 변환시키며 그렇게 딱 붙어 버렸다.


드디어 숙성된 관계가 된 것이다.

 

이렇게 숙성된 관계가 되기 까지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에피소드들을 갖게 된다. 이젠 말하지 않아도 서로 떨어져 있어도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곁이 있는 듯, 그 사람의 공기가 내 주변에 가득하다.


이젠 그 무엇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당신을 원해요. 그러니 좋아한다 말해주세요.





사람들은 그런다.

'인연이면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그러나

인연의 기회는 다시 오겠지만,

그 사람이 다시 오는 건 절대 아니다.


따라서,


그 사람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간은


오직. 지금 뿐이다.


그러니 놓치지 않기를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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