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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뢰렉신 Dec 24. 2017

'흔들림'에 대하여

영화 '달콤한 인생'을 통한 해석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영화는 '흔들림'을 형상화 한 장면과 나레이션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사람에게 있어 '흔들림'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시작부터 질문을 던진다.


사람에게는 오랜 시간 각자사고와 정신을 통제한 마음의 틀 ‘스키마’견고히 가지고 살아간다. 태어나면서 자신에게 펼쳐진 삶의 환경 속에서 겪어가는 경험과 습득을 통한 축적된 기억.


저장된 기억의 지식 구조인 ‘스키마’는 어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가치관을 통한 말과 행동 양식을 결정 지어주는 정체성의 기반이다.




선우(이병헌)는 완벽하고 냉철한, 그야말로 빈틈이 없는 사람 아니 조폭이다. 주변 사람에 대한 정 따위도 없다. 그렇게 살아왔고 확고한 자신만의 정체성이 있다.


조직에 헌신하고 Boss(김영철)에 충성하며, 조폭에 대한 자신만 다른 가치관과 기준이 있다.

그런 면모가 Boss의 신뢰를 얻었고, 그래서 Boss는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선우에게 맡긴다.


'Boss 애인(신민아)'의 감시자.


Boss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잠시 맡은 선우는 평소 성격과 가치관대로 한치의 오차 없이 냉철하게 그 임무를 수행한다.


"아저씨 해결사죠?" / "저 그런 사람 아니예요"


그러나 그렇게 견고하게 짜여 선우의 정체성.

 ‘마음’이 흔들린다.


아니 흔들렸다.


아니..

스스로 흔들린 지 조차 모를 정도로 ‘마음’은 고요했고 '정신'은 평정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관된 신념으로 하루하루 임무가 이루어진다.


이 장면에서 그의 앞모습이 궁금했다.


‘흔들림’


그 자체가 시작되었던 이 장면.

음대 학생인 Boss의 애인 희주(신민아)가 학교 연습실에서 첼로를 켠다. 유키구라모토의 'Romance' 연주가 울려 퍼지며 감상 중인 선우의 뒷모습이 서서히 카메라 줌인된다.


그러나 선우의 앞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뒷모습만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유추해 낼 수 없었고, 우리는 선우의 감정을 절대 알 수 없었다.


이 장면 하나가 그의 흔들림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영화 후반에 드러나게 되지만, 이 장면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에 대한 정이란 없었을 그 견고했던 선우의 ‘마음’을 작은 미동으로 비틀어놓았던 시작점이 되었다.


그 작은 흔들림이 미세한 마음의 틈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나 철저하고 완벽했던 그의 ‘마음’ 속 견고함을 서서히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흔들림이었지만, 완벽했던 그에게는 이 작은 흔들림이 치명적인 마음의 틈이 되어버리고 만다.


말해봐요. 저 진짜로 죽이려고 했습니까?


영화 마지막에 다다라서도 ‘선우’는 이해하지 못한다. 왜 Boss가 자신을 그렇게 죽이려 했는지.



말해봐요.
우리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된 거죠?
말해봐요. 저 진짜로 죽이려고 했습니까?
나 진짜로 죽이려고 했어요?



'내가 7년 동안 개처럼 충성을 다했던 Boss가 왜 나를 죽이려 했을까? 


이유를 모르겠다. Boss 애인의 부정을 눈감아 준 그 사건 하나가 그렇게 잘못한 일일까?


모두가 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Boss에게 설명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런 생각과 달리 선우가 인정하지 않았던 '흔들림'을 Boss는 발견해냈고, 그에 대한 질투와 무너진 신뢰로 그에게 그렇게 가혹하고 잔인하게 린치를 가했다.


마지막이 다가오는 그 순간, 흔들리는 나뭇잎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Boss의 피비린내 나는 학대에 총부리를 들이대고 절규하지만 스스로의 삶의 마지막 끝에 선 그 순간.


유일하게 자신을 웃게 했던 그 장소, 그 음악, 그녀 미소가 떠오른다. 인정과 자각을 절대 못하고 있었지만 그제야 깨달아 버린다.


아..그녀에게 흔들렸구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감정이 들었었구나..



그제서야 모든 걸 이해한다.

자신을 향한 Boss의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자각하지 못했던 그녀를 향한 감정.


결국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차라리 솔직했다면, 받아들였다면.. 이 상황까지 안왔을 텐데.


이 미소와 눈빛에 흔들렸다.


그리고 그 미소 하나에 이렇게 웃어 버렸다.


이 장면 하나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벌써 세 번째 보는 것이었지만, 마치 오래 전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 한 장면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서랍을 정리하다가 발견된 그녀와 다정히 찍었던 사진 한 장을 발견한 느낌.


갑자기 튀어나온 이 장면 하나에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탄식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고, 안타깝고 안타까움에 가슴먹먹해졌다.


피칠갑의 누아르를 뒤집어썼지만, 영화 ‘달콤한 인생’은 철저한 로맨스 영화이다. 이토록 마음을 흔드는 로맨스 영화를 발견한다는 것은 흔하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intro의 나레이션처럼

이병헌의 그 매혹적인 목소리로 outro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꿈을 꾸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연속일 수도 있다.

달콤한 것은 내가 꾸는 꿈인지, 나비가 꾸는 꿈인지 물아일체의 몽환적 신기루 같은 이야기가 많다.

결국 변하는 것은 '나'도 아니고 '상대'도 아니고

그저 만물의 변화 일 뿐.


왜 그렇게 갖고 싶은 것은

내 마음 같이

내 손에 안잡히는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다다르고 싶은 것은

내 마음과 같이

내 발걸음이 도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어쨋든 나름대로는 잘 살고 있다라는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우울증의 신호는 감지되지 않았다.


나는 특별히 외로움도 없고,

매사에 긍정적이고,

주변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심심할 틈도 없었다.


정상이라는 소견에 나는 꽤 자신있게 다른 내 이야기들을 의사에게 말해줬다. 한참 내 얘기를 듣던 의사가 한마디 했다.


"너무 오랫동안 타인을 위한 것들만 선택하셨어요.

주변도 중요하지만 본인을 위한 선택도 좀 하세요"


그 말에 적잖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란건 알겠는데 그 책임감에 본인의 삶도 포함 시키라는 말이었던 거 같다.


나는 종종 삶의 흔들림에 도전을 받았다.

그러나 이루어 질 수 없는 것, 얻을 수 없는 것은 애초부터 꿈도 꾸지 않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내 정신에 허망함이 드는 것을 원천부터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선우'처럼 행동과 표현에 빈틈과 여지를 주지않았다.


선택은 항상 내 생각 내 감정보다는,

상대방과 그에 제반하는 주변 여건의 변화를 고려한 판단을 내려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항상 '거봐 이렇게 하니까 모두가 편하잖아' 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선우'는 흔들렸지만 그를 감추고 모두가 아무 일도 없었듯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선우'의 사례를 통해 나를 반추해보니

나역시 매번 모두를 나이스하게 만드는 선택을 추구했지만, 결국 나에게는 나이스하지 못한 선택을 주로 해 왔던 거 같다.


이제 나도 나를 위한 선택을 우선하며 살아야겠

'흔들림'에 솔직히 반응하며 살아야겠다.


나중에 인생을 돌아볼 때,

"해보기라도 할껄" 보다

"맙소사. 내가 그런 것까지 해봤어?"
라는 편이 낫다.


                                Lucille B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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