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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뢰렉신 Apr 05. 2019

그녀라는 마력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엇일까?
나를 그토록 잡아당기고
애달게 만들었던

그녀의 마력






처음 만났을 때, 아니 같은 연구실에 있었던 지난 1년여 동안은 그저 내 주변에 있는, 별로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은 투명인간과도 같은 그녀였다.


연구실 직원들끼리의 점심 식사나 회식 자리, 또는 단합 MT를 갔을 때도 나는 그녀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단 둘만이 처리를 해야 할 연구 과제를 맡게 되었는데, 짧은 일정에  중요한 연구 과제라 같이 아침 일찍 출근해 회의를 해야 했고, 같이 늦은 점심을 먹으며 또 논쟁해야 했고, 같이 퇴근하면서 주어진 미션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한 달여가 흐르자 나는 미친놈처럼 그녀에게 완전 흡입되어 그녀라는 대롱 한가운데 압착되어 끼이고 말았다. 절대 못 빠져나올 것 같은 형태로.





아... 뭐지?

내가 왜 이 정도의 여자에게 이렇게 애달아할까? 평범하고 기억하기 힘든 외모와 인상인데, 특징이라곤 남자같이 짧은 숏커트 머리와 홑꺼풀 눈. 그리고 미간이 살짝 다는 게 전부이다.


거기에 비해 난 천하의 둘도 없는 잘난(?) 놈이다. 좋은 스펙에 훤칠한 외모, 스마트한 성격과 탁월한 업무 성과까지. 괜히 회사 내에서 ‘백대일(연애 경쟁률)’이란 별명이 붙었겠어? 내가 훨씬 더 아까운데, 왜 그렇지?


이건 사랑이 아니야, 호감도 아니야, 그냥 같이 주어진 미션을 처리하다가 생긴 협동심 같은걸 꺼야. 그저 동료애나 정 같은 거겠지. 그렇게 까칠하게 마인드 콘트롤을 하며 그녀를 향해 치밀어 오르는 내 감정을 밀어내고 밀어냈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런 마음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며 내 감정을 거부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햇살을 받아 투명해진 얼굴로 생글이 웃는 그녀를 본 순간. 아..이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거 같다는 환상에 빠졌다. 그러곤 격렬하게 그녀를 향한 존경이 쏟아져 버리고 말았다.


‘아.. 이토록 예쁜 여자를 놓칠 수 없어’


그렇게 그녀에게 홀려버려 마음이 조금씩 열리더니 같이 진행하던 연구과제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매일 같이 붙어다니게 되었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있으면 있을 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그녀에게 녹아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와 항상 만나는 아침 구내식당의 테이블,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는 꿀 떨어지는 그 눈빛. 그녀의 사랑이 훤히 보인다. 깊이 있고 맹목적인 그녀의 눈빛. 그 눈빛이 그녀를 강하게 믿게 만든다. 그 진정성이 나를 점점 더 그녀에게 빠지게 만든다. 그럼에도 절대 ‘을’이 되지 않는 그녀.


그녀는 남녀가 흔히들 하는 연락으로 밀땅을 다거나 질투심 유발을 위해 일부러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저 24시간 내 생각만 하고 나만 바라보는 거 같은 태도. 그리고 헌신적인 챙겨주기와 자연스레 애정 표현을 하는 습관.


때론 엄마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이 느껴진다. 여자가 남자에게 렇게 헌신적이고 애정 표현을 잘해주면 사실 쉽게 질리기도 하고 텐션이 떨어져 실증이 날 수 도 있다.


그러나 웬걸, 그런 그녀의 모습에 더욱더 신뢰감이 쌓이고 더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녀의 간단한 부탁 하나에 내 정신과 행동력 모두를 모아 더 잘 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고, 그녀가 무심코 흘린 말 한마디에 몇십 년간 단단히 해온 내 취향과 내 성향이 바뀌고 있다.


나는 점점 그녀의 취향과 그녀의 일상에 딱 맞는 사람이 되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생활태도에 빠져 그녀처럼 말하고 그녀처럼 행동하고 있다. 어쩜 예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와 전에 사귀었던 남자들은 어땠을까? 나처럼 이렇게 깊게 빠져들어갔을까?


그 궁금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그녀가 졸업한 학교의 같은 과를 나온 동기가 옆 연구실에 인턴으로 들어오면서 그녀 과거의 전모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학 4년 내내 과에서 인기톱이었다고 한다. 그녀를 잠깐이라도 만난 남자들은 절대 그녀를 잊지 못했고, 그녀의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지겨워 떠났던 남자들도 그녀만큼 자신을 채워줄 사람은 없다며 후회하고 잊지못해 다시 돌아온 남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왜 그녀에게 이토록 빠지게 되었는지, 이제야 그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외모지만 상대방을 위한 헌신적인 행동과 표현에 인색하지 않았고 신뢰성 있는 대화와 진정성 있는 행동 하나하나가 내 정신을 지배하고 마음을 흠뻑 뺏어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완벽한 믿음과 사랑으로 나를 가득 채워주니 그녀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면 외롭고 즐겁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그녀라는 깊은 마력.


그 마력에

오늘도 나는 행복하게 무너져가고 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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