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빼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다. “힘 좀 빼. 그래야 잘 돼.”
말은 참 쉬운데, 막상 힘을 빼려 하면 이상하게 더 힘이 들어간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이다. 나는 이 역설적인 진리를 운동을 하면서 더 확실히 깨달았다.
수영을 할 때, 초반엔 물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고 팔과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분명 나는 힘을 뺀다고 생각하는데, 코치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힘 좀 빼세요. 지금 너무 힘 들어갔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든다. 나는 힘을 뺀다고 생각하는데, 왜 계속 힘을 빼라고 할까?
그런데 수영을 한 시간, 두 시간 지나고 몸이 완전히 지칠 때쯤, 진짜로 ‘힘이 빠지는 순간’이 온다. 내 의지가 아니라, 몸이 스스로 힘을 내려놓는 순간. 그때부터 몸이 달라진다. 팔이 가벼워지고, 물에 몸이 실리며, 자세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골프도 그렇다. 연습장에서는 분명 힘을 안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는 늘 말한다. “힘 좀 빼세요, 너무 힘 들어갔어요.” 나는 힘을 뺀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이미 긴장으로 꽉 조여 있다. 그걸 내가 모를 뿐이다. 하지만 라운드를 가서 한 바퀴를 돌고 몸이 슬슬 지칠 때쯤, 신기하게도 힘이 ‘툭’ 빠진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공이 곧고 멀리 나간다.
몸이 갑자기 좋아진 게 아니다. 폼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힘을 쓸 만큼 쓰고, 몸이 긴장을 내려놓을 만큼 지치고 나니까 더 이상 불필요한 힘을 남겨두지 않게 된 것뿐이다.
이 경험을 일상에도 대입해 보면, 우리가 왜 ‘힘을 빼라’는 말을 듣고도 정작 힘을 빼지 못하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운동에서처럼 일상에서도 우리는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 불안, 책임감, 조급함 같은 보이지 않는 긴장이 꽉 들어차 있다. 스스로는 힘을 안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상태인 거다.
그래서 누군가는 “불안해하지 마,” “편하게 해,”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이 우리를 더 편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을 쓰게 만든다.
왜냐면 우리는 아직 충분히 부딪히고, 충분히 버티고, 충분히 노력해본 뒤에야 찾아오는 '툭' 하고 힘 빠지는 순간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힘을 억지로 빼는 게 아니라, 몸이 스스로 긴장을 놓아버릴 만큼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떤 날은 정말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힘이 스르륵 빠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억지로 힘 빼보겠다고 애쓴 날이 아니라, 부딪히고, 해보고, 어떻게든 하루를 버티고 살아낸 날들이 차곡차곡 쌓인 뒤에야 찾아오는 순간이다.
그래서 알게 된다. 힘은 억지로 빼는 게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고, 몸과 마음이 부딪힐 만큼 부딪힌 뒤에야 힘은 저절로 빠지는 것이라는 걸.
그러니 지금 몸도 마음도 힘이 잔뜩 들어간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잘못된 상태가 아니다. 그저 아직 ‘힘이 빠지기 전인 시기’를 지나고 있을 뿐이다.
조금 더 해보고, 조금 더 부딪히고, 조금 더 살아내다 보면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힘이 스르륵 빠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신기하게도 일도, 사람도, 관계도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아도 훨씬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니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힘을 빼려 하지 말고, 지금은 필요한 만큼 힘을 쓸 때다.
힘은 억지로 빼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빠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