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공부 이야기만 안 하면 자녀와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비슷하지만 조금 더 과격한 말로는 애 공부만 포기하면 집 안에 큰소리 날 일이 없다는 말도 있다. 공부 잔소리 때문에 자녀와 사이가 나빠지는 집이 많다는 걸 방증하는 말이다. 도대체 공부가 뭐길래 많은 집에서 이렇게 불화를 일으키는 것일까.
나는 올해로 교사 생활 23년 차에 접어드는 중학교 교사이다. 중학생들과 함께 해온 나의 직장 생활은 내 아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육아의 목표 지점에 '중학생'이 있다는 게 우습지만, 출근과 동시에 만나는 수많은 중학생들을 보며 어느 순간 내 육아의 목표는 '마음이 건강한 중학생으로 키우자'가 되어 버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아이는 비교적 여유 시간이 많은 생활을 했다. '마음이 건강한 중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놀 시간이 많은 초등 시절'을 보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의 놀이 시간이 부족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단, 여기서 논다는 건 디지털 디바이스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닌 신체 활동을 겸한 바깥 놀이를 말한다). 아이도 보는 눈이 있으니 학원 다니느라 바쁜 주변 친구들에 비해 자기는 놀 시간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고, 엄마가 다른 친구들 엄마처럼 그렇게 학원을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도 했었다.
그렇게 여유 있는 초등 시절을 보내고 중학생까지 키워놓으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춘기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이니 사고의 수준도 어린이 시절과는 다르다. 마음이 건강한 중학생이라면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대비해 나갈 거라고 믿었다. 미래에 대한 대비가 꼭 성적을 잘 받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밖에서 열심히 놀던 초등학생과 성적표를 받기 시작한 중학생의 시선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어느덧 성적표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잘하고는 싶지만 안 하던 공부를 오래 앉아 하는 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던 어느 날, 애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초딩 때 놀이터에서 엄청 놀았잖아? 그때 놀이터 옆으로 지나가던 교복 입은 중, 고등학생들 보면 표정이 완전 어두웠거든. 나는 안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지금 나도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아."
공부한다고 표정이 어두워져야 하는 건 아닌데. 노는 게 선이고 공부가 악은 아닌데. 공부 입장에서는 어쩌다 자기가 그렇게 여겨지게 됐는지 억울할 것 같았다. 공부에는 힘이 든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공부가 학생들의 표정을 어둡게 하거나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는 씨앗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공부가 기쁨이고 희망이며, 심지어 자기 삶의 동아줄인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나는 공부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아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는 한국전쟁 시절에 많은 책이 흘러들어왔고, 전쟁통에도 식지 않은 교육열은 헌책 수요를 높였다고 한다. 그 시절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다가 기둥 하나 없는 흙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의 사진도 보았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959년 초등학교 취학률은 96.4%를 달성, 완전취학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전쟁 이후 최빈국으로 전락했던 나라의 취학률이 저렇게나 높다니, 이는 일부 저소득 국가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보다 일터로 보내는 것을 선택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아니, 설마 지금 우리나라 초고속 성장의 밑바탕에는 이런 교육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애한테 했단 말인가. 그렇다. 원래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인쇄물이 귀하던 시절, 책 한 권 한 권이 얼마나 소중했을까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방 골목에서 나는 아버지(아이 입장에서는 할아버지) 세대를 떠올렸다. 우리 아버지가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했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여겼던 내가 나도 겪어보지 못한 그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곳이 책방골목이었다.
배고픔에 시달리던 시절, 많은 이들은 현재의 배고픔을 연료 삼아 미래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공부했을 것이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배가 무척 고팠다는 기억 밖에는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의 딸인 나는 가난으로 배고팠던 경험은 없다. 우리 세대의 대부분은 전후 세대보다는 잘 산다. 전쟁 이후 초고속 성장을 하며 자녀 세대는 항상 부모 세대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 하지만 MZ세대부터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부모보다 가난한 첫 번째 세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Z세대에 해당하는 내 아이 역시 고도성장기의 달콤한 과실을 먹지 못하는 세대이다.
나도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가 나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며 살길 바란다. 그런데 어두운 표정으로 공부를 하는 (척 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풍요로운 삶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 기껏 마음이 건강한 중학생으로 키워놨더니 누군가에겐 희망이고 동아줄인 공부의 명예를 훼손시키며 마음 건강만 해치고 있는 것 같다. 살아가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니 다른 길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해 봐도 자기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말로만) 외치고 있으니 참 난감하다.
전쟁통에도 식지 않은 교육열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혼자 피란 보내는 아들에게 생필품 대신 어렵게 구한 수학책 한 권을 들려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었다. 아이가 말하길, 나라면 수학책보단 건빵이나 물을 줄 것 같다고, 열 장짜리 편지도 써줬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피란 떠나는 애한테 열 장짜리 편지를 써줄 것 같은 사람처럼 보였다니, 얘는 아직 나의 글 쓰기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 잘 모르나 보다. 그래도 말이 나온 김에 상상을 해본다. 피란 떠나는 아이에게 편지를 쓴다면 나는 어떤 내용을 쓰게 될까. 아마도 이런 내용을 포함하지 않을까.
"지금은 내가 건빵과 물을 줬지만, 미래의 건빵과 물은 네 힘으로 구할 수 있어야 해. 그 힘을 기르도록 하렴! 우리 꼭 살아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