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깡통시장에서
부산에 왔으니 돼지 국밥을 먹어봐야 했다. 하지만 부평깡통시장 입구에 선 중2와 그의 엄마는 자신들이 돼지 국밥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엄마: 너 돼지 국밥 좋아해?
딸: 엄마가 나한테 돼지 국밥 해준 적 있어?
엄마: 아니, 나는 돼지 국밥 할 줄 모르는데?
딸: 그럼 나한테 돼지 국밥 사준 적은?
엄마: 없지.
딸: 그럼 먹어보지도 않은 돼지 국밥을 내가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냐고!!!
중2는 아직 엄마가 해주거나 사주지 않는 이상, 밖에서 돼지 국밥을 사 먹고 다니는 나이가 아니란 걸 내가 잠시 잊은 걸까. 돼지 국밥이 무슨 떡볶이나 마라탕도 아니고, 중2가 하굣길에 친구들과 함께 사 먹을 법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메뉴도 아닌데 그걸 왜 물어봤을까. 먹어본 적이 없긴 나도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돼지 국밥 선호도에 대한 축적된 데이터가 없음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 이번이 우리의 돼지 국밥 선호도를 알 수 있는 위대한 첫 번째 시도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돼지 국밥 신출내기는 미디어에 의존해 보자는 얄팍한 속셈으로 방송에 나왔던 돼지 국밥집으로 향했지만, 식당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건 휴무일을 확인하지 않은 나를 꾸짖기라도 하듯 굳게 닫힌 문이었다.
엄마: 무슨 목욕탕도 아니고, 하필 화요일 휴무라니!
딸: 다른 데 가자.
엄마: 근데, 너 '매주 화요일 휴무합니다' 밑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봤어?
딸: 응. English speaking staff available.
엄마: 영어 할 수 있는 직원이 있다고 간판에 적어놓다니, 여기 외국인 손님도 많이 오나보네. 영어 잘하는 사람은 돼지국밥집 취직에도 유리하겠다.
딸: 왜? 영어 공부해서 돼지국밥집 취직하게?
내가 영어공부를 하는 이유가 돼지국밥집 취직을 위한 건 아니지만, 영어를 잘하면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린다는 건 깡통시장의 어느 돼지국밥집에서도 확인이 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영어 공부의 중요성을 돼지국밥집 간판을 보며 다시 한번 되새겨볼...... 마음이 전혀 없는 아이는 내 팔을 끌며 저 앞에 보이는 또 다른 간판을 가리켰다.
아이가 입을 틀어막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딸: 엄마! 엄마! 저것 좀 봐! 이재용 회장님 서계시던 자리래! ㅋㅋㅋㅋㅋㅋ
엄마: 뭐가 그렇게 웃겨?
딸: 그냥 웃겨. 아, 나도 회장님 돼서 어묵 먹고 다니면 좋겠다.
엄마: 어묵은 회장님 아니라도 먹을 수 있어. 그리고 저 사람들이 어묵 먹고 싶어서 여기 온 거겠냐?
아이에게 관련 기사를 보여주며, 이재용 회장이 왜 깡통시장에 왔었는지 그 이유도 설명해 주었다. 작년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후 민심 달래기를 위한 방문에 동원된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이 기사 사진에 재벌 총수들이 증명사진이라도 찍듯 떡볶이가 담긴 일회용 접시를 가지런히 들고 있는 거라고.
딸: 가자면 꼭 가야 되는 거야? 회장이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엄마: 원래 지킬 게 많은 사람일수록 신경 쓸 게 많은 법이야. 회장이라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건 아니지.
딸: 지킬 게 없는 나도 신경 쓸 건 많아.
엄마: 그래그래. 알지. 매일 뭐 먹을지도 신경 써야 하고...
지킬 게 없다고 말하는 중학생과 그 중학생을 지켜야 하는 나는 우리의 위장을 지키기 위해 돼지 국밥집을 찾아 눈길을 돌렸다. 오늘 점심으로 돼지 국밥 외 다른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두 명은 생애 첫 돼지 국밥을 설레는 마음으로 먹기 시작했고, 우리는 돼지 국밥을 별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우리의 돼지국밥 선호도를 알아볼 수 있는 첫 번째 데이터가 입력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