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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다람쥐 Aug 10. 2024

너에게 금전운을 선물해 줄게

골드바 케이크를 먹으며

기말고사를 앞두고 설레는 이유 

 우리집에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설렘을 느끼는 중학생이 있다. 생략된 부분으로 인해 이 문장이 비현실적이거나 재수 없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얼른 생략된 부분을 채워본다. 우리집에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험 마지막 날 친구들과 놀 생각에) 설렘을 느끼는 중학생이 있다. 얼마나 설레는지 시험공부 계획은 세우지 않아도 시험 마지막 날 놀 계획은 분 단위로 세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주는지라 이 중학생의 놀 계획은 대체로 잘 현실화된다.


 이번 기말고사를 앞두고도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었다.

 "아, 마지막 날 애들이랑 놀 생각하니까 너무 기대돼! 어디 어디 갈지는 다 생각해 놨어. 나 그날 몇 시까지 들어오면 돼? 카드에는 얼마 넣어줄 거야?"


 이 중학생의 엄마는 아이의 설렘 앞에서 대부분의 경우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의 입장을 취하는 편이나, "카드에는 얼마 넣어줄 거야?"에서 흠칫했다. 


 엄마: 뭘 얼마나 쓰고 오려고 그래? 네 용돈 안에서 쓰면 되잖아.

 딸: 애들이랑 뭐 사 먹고 하다 보면 돈 더 필요하단 말이야. 5만 원만 더 넣어주면 안 돼?

 엄마: 안 돼. 있는 돈 안에서 써. 

 딸: 애들 사는 거 나만 못 사면 어떡해?

 엄마: 남들 사는 거 다 따라 살 수는 없어. 각자 형편에 맞게 쓰는 거지.


 용돈을 넣어주고 있는 체크카드용 계좌에는 5만 원 남짓한 돈이 남아 있었다. 그날 아이는 친구들과 분식집, 아이스크림 가게, 소품샵, 코인 노래방 등을 다니며 3만 원 정도를 쓰고 왔다.



노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초등학생 시기의 용돈은 주급으로 학년 곱하기 천 원이 적당하다는 말을 듣고 초등학교 2학년부터 일주일에 2천 원씩을 주었다. 당시 매번 천 원짜리 지폐를 준비해 두는 게 나에겐 아주 큰 업무였다. 3학년 땐 일주일에 3천 원, 4학년 땐 4천 원... 그렇게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일주일에 천 원씩 더 올려서 주다가 중학생이 되면서는 일주일이 아닌 한 달에 3만 원을 주고 있다. 필요한 학용품과 준비물은 다 사주고 있으니, 주로 군것질거리를 사는 용도라서 더 올려주지는 않고 있다. 아이 친구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긴 하다.


 나이가 들수록 놀 때 쓰는 돈의 액수가 커진다. 초등학생일 때는 친구와 반나절을 보낸다고 해도 놀이터에서 같이 놀다가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는 정도가 다였다. 그 초등학생은 중학생이 되더니 버스를 타고 번화가로 나가서 3만 원어치의 소비를 하며 논다. 그 중학생과 그의 엄마가 2박 3일 부산 여행에서 쓰는 돈은 몇 십만 원에 이른다. 노는 데도 돈이 필요하다. 마침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돈 이야기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에 도착했다. 옛 한국은행 건물에 만들어진 디저트 카페, 까사부사노였다.


번쩍번쩍한 골드바가 눈길을 사로잡는 까사부사노 부산근현대역사관점


너에게 금전운을 선물해 줄게 

 이곳은 예전 한국은행 건물이었다. 음료를 파는 곳은 은행 창구 업무를 보던 공간이었고, 골드바 케이크 선물세트를 파는 곳은 금고였다. 두꺼운 금고문은 물론이고 '통제구역, 제1호 금고'라는 표시가 한때는 진짜로 금고 역할을 하던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금고문 위에 붙어있는 '통제구역, 제1호 금고'


 (현)한국은행이었으면 통제구역에 들어갈 수 없었겠지만 (구)한국은행이라서 '아무나'에 해당하는 나 같은 사람도 들어갈 수 있었다. 금고문의 두께는 우리집 방문 두께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구)한국은행 금고 안에는 (현)골드바케이크가 '한 해의 금전운을 선물하세요'라는 문구 옆에 세트 포장으로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이 골드바 케이크를 사서 금전운을 선물한다면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금전운이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에게 선물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선택인 것 같았다. 조금 더 인심 쓴다면 옆에서 무슨 맛을 고를지 고민하고 있는 중학생에게도.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먹을 골드바 케이크를 사서 자리에 앉았다. 


 딸: 이게 진짜 금괴였으면 좋겠어.

 엄마: 응. 나도.

 딸: 이거 진짜 금괴면 얼마 정도 해?

 엄마: 금괴 사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근데 너 금값 계속 변하는 거 알아?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해. 금값이 내렸을 때 사놨다가 올랐을 때 팔고, 그렇게 투자 목적으로 금을 사는 사람들도 있어. 

 딸: (갑자기 생각난 듯) 나 돌반지 몇 개나 있어?

 엄마: 글쎄, 몇 개나 있는지 집에 가서 찾아보자. 돌반지는 작지만 정도 크기의 금괴는 진짜 비쌀 거야. 이게 진짜 금이면 얼마나 묵직하겠어. 종이돈을 쓰기 전, 이런 귀금속으로 거래하던 때는 정말 불편했겠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읽고 내가 얼마나 돈에 대해 잘 몰랐는지, 나의 무지에 한탄한 적이 있다. 아이도 나와 같이 무지한 상태로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살다가 내 나이 언저리가 되어 나와 똑같은 한탄을 하게 되면 어쩌지 싶었다. 내가 읽었던 책을 아이에게 권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권한다고 책 한 권을 뚝딱 읽어내는 중학생은 대개 다른 집에 살고 있다. 그래서 아이에겐 유튜브에서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의 짧은 영상 두어 개를 찾아 보여줬더랬다. 그중 하나가 17세기 영국 사람들이 안전을 위해 금세공업자에게 금을 보관하던 이야기를 다룬 5분짜리 영상이었다. 


 지금처럼 화폐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 금 자체가 돈이었던 시대에 사람들은 금을 보관하기 위해 금세공업자의 튼튼한 금고를 빌렸다. 거기에 맡기면 금세공업자는 보관증을 써주었고 그 보관증은 이걸 가져오면 언제든지 다시 금을 내주겠다는 약속의 의미였다. 금은 무겁고 금보관증은 가볍다. 사람들은 금을 교환하지 않고 금보관증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금세공업자는 금고에 들어있지도 않는 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없는 금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본격적인 은행이 설립되기 전의 이야기이다. 아이가 이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금괴를 보면 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엄마: 골드바케이크 옆에 '금전운을 선물하세요'라고 쓰여있었지? 우리가 이걸 나눠 먹었으니 우리한테 금전운을 선물한 거야.

 딸: 그럼 엄마 월급 오르는 거야?

 엄마: 그럴 리가. 그런데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금전운에 기대기보다는 돈에 대해 알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나는 돈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게 후회되거든. 이렇게 놀러 다니는 데도 돈이 필요한데...

 

 최근 자본주의나 돈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은 터라 조금 더 해줄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쩐지 아이의 정신은 딴 데 팔려있는 것 같았다. 아이는 뭔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이내 내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귓속말을 시작했다. 


- 계속 -

 

골드바 케이크 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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