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품샵에서 빈손으로 나오며
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 가장 좋았던 건 '초등 엄마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OOO', '초등 시기에 놓쳐서는 안 되는 OOO'와 같은 말에 덤덤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시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들으면 놓치고 있었던 걸 얼른 챙겨야겠다는 조바심이 날 법한 문구들이지만 내 아이는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뭐 어쩔 건가. 이미 다 놓치고 지나가 버렸다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뒤이어 '중학생 엄마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OOO', '중학교 시기에 놓쳐서는 안 되는 OOO'와 같은 말이 나오지 않냐고, 그렇다면 똑같은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제목의 책이나 영상은 초등 엄마를 대상으로 하는 책이나 영상의 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중학생은 엄마가 빚어내는 대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초등 시절 빚어준 것이 있더라도 자기 눈에 별로라면 그걸 깨부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학생이다. 그러니 중학생 엄마를 대상으로는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주라는 내용의 책이나 영상이 별로 없다. 수많은 '엄마표 OOO'도 유초등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면에서라면 중학생 엄마가 초등학생 엄마보다 수월한 것 같기도 하다.
따라나서주기만 한다면 중학생은 초등학생보다 같이 다니기도 좋다. 안고 업을 일도 없다. 역시 집 밖을 나오니 좋은 점이 제법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뒤를 돌며 말했다.
"엄마! 이것 좀 들어봐. 보통 이런 노래들은 멜로디가 딱히 좋진 않잖아? 근데 이 노래는 은근히 괜찮다?"
주야장천 음악감상을 하는 감성충만 중학생에겐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듣는 독립운동에 관한 노래도 괜찮게 들리나 보다. 세븐틴 활동명과 본명을 빨리 다 외우라는 숙제를 내주는 아이 앞에서 한숨을 쉬곤 했었는데, 귀찮은 게 많은 중학생이 이런 데서 헤드셋을 들어 귀에 대어 보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게 만든 건 세븐틴의 공이 크지 않을까. 이름 외우기 어렵게 세븐틴 멤버가 열셋이나 된다고 투덜댔던 걸 반성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에는 웹툰을 즐겨보는 중학생의 눈을 사로잡는 스크린도 있었다. 아이는 평소 갈고닦은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스크린을 터치하더니 금세 끝까지 다 봤다. 뚜렷한 기승전결이 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 시절 학생들의 일상을 단편적으로 나열해 보여주는 게 전부라 마지막 컷에선 "이게 끝이라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마지막 컷이 나오기까지 스크린 앞에 서서 작품을 감상한 시간 덕분에 교복을 입고 8시 20분에 등교하는 학생이 그 시절에도 있었다는 걸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종류를 불문하고 학생이 나오는 작품을 접하면 이 학생들은 어떤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는 걸까 생각해 본다. 웹툰을 볼 수 있는 스크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부산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수를 비교해 놓은 설명이 있었다. 1926년 기준, 부산에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었지만 학생 수는 일본인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한국인은 1,000명당 학생이 70명이었으나, 일본인은 1,000명당 학생이 193명. 일제강점기의 일본인들은 우리 땅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기들이 우선으로 차지했을 것이다. 일본인 학생수가 많다는 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란 일본인들 입장에서 우리에게 주기에 아까운 지위라는 의미일 것이다. 1,000명당 70명이었다는 그 시절의 우리나라 학생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등교했을까. 그들도 숙제가 많으면 불평을 했을까.
방학식을 서운해할 정도로 학교 가는 걸 좋아했던 초등학생 딸아이는 개학을 싫어하는 정상적인(?) 중학생이 되었다. 놀기 위해 학교에 가던 시절에는 학교를 좋아하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할 생각을 하니 학교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것이다. 안타깝지만 산더미 같은 업무가 기다리는 시즌이 되면 출근하기 싫은 내 마음과 다를 바가 없기에 아이의 변화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고 싶은 업무만 할 수 없는 내 처지와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없는 아이의 처지가 비슷하리라. 이제 볼 거 다 봤으니 기념품샵으로 내려가자는 아이와 함께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까불까불 장난을 치는 아이의 모습에서 초등학교 시절, 유치원 시절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온 1층에는 기념품샵이 있었다. 모든 박물관의 마지막 코스는 기념품샵이다. 박물관 입장에서 보면 수익을 안겨주는 장소일 테고, 방문객 입장에서 보면 이곳에 다녀왔다는 기억을 조금 더 오래 지속시킬 기념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장소일 테다. 다른 말로 하면,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 말이다. 나에게 기념품샵이란 나의 궁색함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물건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행위 자체가 당당히 여행 코스로 인정받기도 하는 세상이니, 우리가 시간을 보낸 곳을 기억할 수 있는 기념품을 기분 좋게 살 수도 있으련만 어쩐지 나는 그 방면의 능력이 부족하다. 좀 더 정확히는 내 지갑의 능력이 부족하다.
어딜 가서 나를 위한 기념품을 사본 적은 거의 없다. 아이에겐 차마 매번 안 된다고 할 순 없기에 몇 번 사준 적이 있지만 이런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거랑 비슷한 인형 집에 있잖아." (엄마 눈엔 비슷하지만 애 눈에는 다르다)
"이건 사서 어디에 쓰려고?" (기념품은 어디에 쓰기 위한 목적으로 사는 게 아니다)
"이거 다 지구에 쓰레기 보태는 건데..." (이럴 때만 갑자기 지구 사랑이 넘쳐난다)
그래서 아이는 관심 가는 물건을 보다가도 다시 내려놓기를 잘한다. 이걸 잘하는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이번에도 한 바퀴 구경을 마친 아이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왜? 살 게 없어?"
"응. 별로 예쁜 게 없어."
내가 봐도 중학생 눈에 예뻐 보일 만한 기념품이 별로 없긴 했다. 하지만 기념품샵을 나오며 마음 한편에 있던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점점 더 커지는 게 느껴졌다.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엄마와 그에 잘 단련이 된 아이. 이렇게 크면 아이도 나처럼 목걸이나 반지, 이름 있는 가방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되겠지. 나는 그런 내 모습에 큰 불만이 없고 그런 소비를 하지 않는 게 내 선택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소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에 익숙해진 결과는 아닐까.
공부-좋은 대학-좋은 직장-높은 수입으로 이어지는 공식은 옛말이라며 애 공부에 너무 목매지 말라고들 한다. 하지만 '초등 엄마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OOO'에 솔깃하는 엄마들은 이 공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긴 어렵다. 공부라는 학생의 일이 미래의 보상과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면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학생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테다. 좋은 건 일본이 다 가져가던 시기에 일본인 학생 비율이 높았다 것만 봐도 공부든 공부가 가져다줄 과실이든 적어도 둘 중 하나 이상은 좋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억지로 시킨 공부에는 부작용이 많다는 생각에 여유 있는 초등 시절을 보내게 했는데 학습적으로 조금 더 챙겨줄 걸 그랬나 후회되는 마음이 있다. 동시에, 그거 다 챙기려고 발버둥 쳤다면 중학생이 된 지금 이렇게 같이 다닐 수 있는 사이가 안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하는 생각도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 지식은 가치중립적이라고 한다. 어디에 돈을 쓰느냐는 개인 선호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소 궁색한 나의 영향을 받고 자란 아이의 선호가 나의 선호에 영향을 받을까 봐 염려된다. 성인이 된 아이가 여행지의 기념품샵에 들른 장면을 상상해 본다. 아이는 어떤 소비를 하게 될까. 쓸데없는 소비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듯 나처럼 모든 물건의 쓸모를 따지고 있지는 않을까. 가끔은 자기에게 기쁨을 준다는 이유만으로도 지갑을 열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그 지갑에 여유가 있어야 할 텐데.
기념품샵을 마지막으로 부산근현대역사관을 나온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싸고 좋은 건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그곳, 별 개수와 가격이 비례하는 그곳, 호텔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