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내오는 신호 (2)

중년 아빠와 초딩 자매의 좌충우돌 육아일기 (12)

by 다시

아이가 보내오는 신호 (1)

위 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아내가 출근을 했다가 점심에 오겠다고 했다. 아내 회사에서 집까지 차로 빨라도 30분 거리. 그 시간 안에 병원을 갔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 아내는 1시까지 회사에 들어가긴 힘들다. 회사에 사정을 말한다고 해도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황에서 눈치가 보일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딸을 데리고 병원을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갔다 오겠다는 말은 안 했다. 그럼 걱정할까 봐...





아내가 출근하고 작은 딸의 상태를 살폈다. 열이 조금 내리자 뛰어다니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잘 놀았다.

아침에 죽을 줬는데 그것도 잘 먹었다.


"아빠랑 같이 병원 갈까? 걸어서 갈 수 있겠어?"

"응~ 그런데 아빠는 다리 괜찮아?"


아이가 오히려 나를 걱정해 줬다. 미안했다.


밖의 날씨가 폭염인데 아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은지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해열제를 먹고 열이 떨어진 지금이 병원을 갔다 오기 좋을 것 같았다. 밖의 기온도 시간이 지날수록 오를 테니 일찍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목발을 하고 걸어야 하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횡단보도 하나 건너서 조금만 가면 되니 쉬엄쉬엄 가면 금방 갔다 올 수 있겠지 싶었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힘들어하면 먹이려고 물과 물수건을 챙겼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해는 뜨거운데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선선할 때 빨리 다녀오자 싶었다. 그런데 목발을 하고 집에서 거실과 화장실 정도만 다니던 것과 밖에서 걷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열 발 정도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났다. 딸은 나보다 훨씬 앞서서 걸었다. 그러다가 내가 너무 늦는다 싶은지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나를 기다렸다.


"우리 놀이 하나 할까? 규칙은 그늘로만 가는 거야~ 햇볕이 보이면 후다닥 뛰어서 그늘에 숨는 거야. 그리고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아빠 기다리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이를 악물며 걸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물론이고 인도가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나는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더구나 목발을 쥐는 손도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고 계속 허공에 떠 있는 수술한 다리는 퉁퉁 부어 피부색이 검게 변해 있었다. 한쪽 다리를 계속 들고 한 발로만 걸으니 골반도 허리도 무릎도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온몸이 절규를 하는 느낌이었다.


조금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겨우 겨우 병원에 도착했다. 아침에 새로 꺼내 입은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나의 얼굴과 온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극기 훈련이 따로 없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나는 절망하고 말았다.



고장 수리 중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무슨 시트콤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이가 다니던 병원은 6층이었다. 6층까지 올라갈까 생각했지만 목발로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딸은 나를 말없이 쳐다봤다.


나는 일단 1층 약국으로 딸을 데리고 들어갔다. 사정을 말하고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며 딸과 나는 한 참을 앉아 있었다.


"아빠~ 다른 병원 없어?"


나는 숨을 고른 뒤 목발을 짚고 다시 일어섰다. 바로 옆 건물에 또 다른 병원이 있었다. 병원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힘이 나는 것 같더니 다른 병원으로 가야 되는 상황에서는 다시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옆 건물 병원에 무사히 도착하고 아이의 진료를 마쳤다. 의사는 가벼운 감기라며 열이 더 이상 크게 오를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목발을 하고 있는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진료를 마치고 약을 타서 나오자 온몸에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무사히 진료를 마쳤고 아이가 크게 아픈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해서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었지만 처음에 병원에 올 때보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겨우겨우 집에 와서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서 잠이 들어버렸다. 녹초가 됐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점심에 약을 먹이고 1시간마다 체온을 쟀다. 정말로 열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아이도 잘 놀았다. 큰 딸이 학원까지 마치고 집에 오자 나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큰 딸은 동생의 안부를 살피고 동생에게 물도 떠다 주고 내 얼음팩도 갈아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와 동생을 보살폈다. 고작 10살짜리 딸이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작은 딸은 밤사이에 더 이상 열이 오르지 않고 푹 자더니, 다음 날 아침에 건강한 모습으로 등교를 했다.

등교하던 그 뒷모습에서 나는 죄를 사면 받는 기분이 들었다.


별 일 없이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나도, 작은 딸도...

앞으로는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아이들의 건강한 미소를 지키려면 말이다.


*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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