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다 글을 남겨놓으면 나중에라도 같은 아픔을 겪게 된 누군가가 인터넷에 허겁지겁 검색했을 때 재수 좋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 나만 이런 거 아니었구나. 이런 일들을 겪어가야 하는구나 정도의 작은 휴식.
사실 그렇잖아요. 남 이혼하는 얘기 뭐가 그리 재밌겠어요. 당장 이혼하고 있는 나도 남 이혼하는 얘기 들으면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요즘 이혼하는 그거 별거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진짜 이혼해 본 사람 본 적도 없어요. 해본 사람들이나 심심한 위로 짧게 해 주고 서로 한숨 쉬다 돌아서지.
어디 가서 하고 돌아다닐 얘기도 아니고 평생 조용히 삭히겠구나 싶었는데 우연히 브런치 공모전 광고가 뜨더라고요. 예전에 몇 번 해봤었는데. 할 말도 없는데 선정은 돼보고 싶어서 쥐어짜 내느라 고생했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래 뭐. 임금님 귀 당나귀귀 한번 해보자.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얘기해보겠나 싶더라고요.
그런 거 다 감안하니 뭐 알아달라고 구걸할 필요도 없고 어차피 익명으로 걸었겠다. 편하게 써보자. 반말로 글을 써본지가 거의 20년 만이었습니다. 이래도 되나 싶더라고요. 평생의 반을 외국에서 살았었는데 어느샌가 유교맨이 돼있었나 봐요.
평생 좀 딱딱한 글을 쓰던 사람이었는데 막상 편하게 쓰려니 그것도 어렵더라고요.
처음에 두세 개 정도 썼을 때는 조졌다. 그냥 접자. 그래 싯팔 이혼이 뭔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정성껏 쓰고 앉아있나 싶었는데 되려 그냥 아무 얘기나 쓰자 싶으니까 그 뒤로는 그냥 그럭저럭 써진 덕에 여태 썼습니다.
대충 썼다는 얘긴 아닌데 생각보다 쭉 써지더라고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쓰는 입장에서는 편했습니다. 읽기 힘들었다면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나름의 최선이었어요.
공감버튼을 눌러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걸 보며 지금까지도 이거 혹시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자동 프로그램 같은 건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사람 기죽지 말라고 응원해 주는 자동 프로그램 같은 거요. 스트리트 댄스배틀에서 댄서들 기운 내라고 하이핑이라는 응원을 하는데 말 그대로 둘러싸고 환호성 왁왁 질러주는 거거든요. 그게 배틀나간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힘이 됩니다. 능력이상을 발휘하게 돼요. 해봤다니까요.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의심 속에서도 그래도 읽어주는 분들이 계시나 보다 하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천성 탓에 나름 낙천적으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 상처들을 마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심지어 현재진행형이잖아요. 편하게 글 한번 써보겠다고 하나씩 꺼내다가 케케묵은 기억 하나 잘못 꺼내서 3일 내내 우울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썼지만 마냥 편하진 않았다. 그런 느낌일까요.
모쪼록 시간 들여 읽으셨던 보람이 쥐톨만큼이라도 있으셨길 바라며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진짜 프로그램이 아니시면요.
이제 마지막 글 하나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원래 어디까지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내일이 최종판결 나는 날이기도 하고 그냥 이쯤에서 마무리짓자는 생각이 30분 전쯤에 들더라고요. 그게 맞겠다. 이혼하고 나서 쓸만한 얘기들 생기면 그때 다시 모아서 쓰던지 하고 지금은 더 쓸 얘기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이상 가면 쥐어짜 내는 글 밖에 안 나오겠구나.
그런 글 정말 평생 써왔습니다. 돈은 받기로 해놨지, 마감은 코앞이지, 읽는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명확하니 거기 맞춰서 써야 하지. 내가 써놓고도 다시는 안 돌아볼 그런 글들. 이미 차고 넘쳐요. 더 보탤 필요 없다 싶어요. 많이 읽으셨을 거잖아요 그런 거. 저도 쓰기 싫어요.
그래도 이번에 글 쓰는 동안 이전이랑은 조금 다르다, 어릴 때부터 내가 이래서 글 쓰는 걸 좋아했지, 그런 느낌을 조금은 다시 찾았습니다. 아마 제가 이전에 쓰던 글들 읽으시던 분들한테 이번에 쓴 글들 보여주면 제가 쓴 줄 모를 거예요. 보여줄 생각도 없다만. 그럴 거면 못썼을 걸요.
마지막으로 쓸 글은 이미 생각해 뒀습니다. 아까 글 쓰는 동안 뭘 쓸지 정해졌었어요. 오히려 지금 쓰는 이 편지 같은 글이 오히려 즉흥적으로 그냥 써보는 글입니다. 어차피 조금 날 것 같은 느낌으로 쓸거라 잠깐 워밍업 비슷한 차원에서 감사 인사도 드릴 겸 작별 인사 차원에서 쓰는 중입니다.
최근 제가 자꾸 홀가분한 말투로 얘기하니까 아는 형이 그거 떠나는 사람 징후 아니냐고 게거품을 물던데 그런 거 아니고요. 그런 생각은 이미 작년에 한번 해봤죠. 힘들어요 이혼. 자식 있는 사람이면 더더욱 그럴 거고요. 저는 그냥 나사가 두어 개 빠져서 돌아버린 거나 어설프게 해탈한 케이스예요.
마지막 글의 내용은 정해놨지만 최대한 내 진짜 말투에 가깝길.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를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 진짜 목소리가 나오길 바라며 써보려 합니다. 안되면 그뿐이고. 어차피 이번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똥밭에서 나오는 얘긴데요 뭐.
비록 이혼 이야기였지만 단지 이혼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감정이 말라있던 사람이고 항상 강하고 씩씩한 모습만 보여왔었는데 작은 감정들을 돌보지 않고 살다 보니 결국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돼있었구나. 이제야 좀 머리가 깨졌구나. 미리 겪었다면 여기까지 오진 않아도 됐을 텐데 결국 이혼이라는 형태로 겪는구나. 홀가분한 후회만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