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혼을 만드나
결과적으로 잘못이 없어도 애써 원하면 이혼은 가능하다. 쉽진 않지만 이걸로 밥 먹고 사는 이혼전문 변호사들에겐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판결이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포인트 중 하나가 또 여기에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이혼을 해야 할 정도로 내가 잘못했냐 하는 도돌이표 같은 물음.
지금도 생각할수록 내 정신을 갉아먹는 쳇바퀴다.
이혼은 잘못된 걸까. 난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한다. 이 답에 대해서는 이혼을 겪지 않은 이들보다 이혼을 겪은 이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흔히 듣는 말이 '이혼은 죄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네 아니죠. 앞서 계속 말했듯 성격차이 이혼의 경우 꼭 누가 잘못해서 이혼하는 건 아니다.
근데 그러면 잘해서 이혼하나. 정말 서로 다 잘해서 이혼하나. 아무리 상대방이 대화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소장을 보냈다 할지라도 그게 정말 절대적으로 상대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나. 누군가의 편을 들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위장이혼이 아닌 이상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갔을 때, 그 결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택지 중 하나가 이혼이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말 그 사람이 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 그런 사람을 만난 것조차 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비난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이혼이라는 그 큰 덩어리 안에서 자신의 잘못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을 자신의 실수였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이혼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대에게 이혼을 생각하게 할 빌미를 주었고 내 기준에서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로 선택했었던 것도 나였다. 상대가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으며 아내가 어떤 고민을 안고 살고 있는지 제대로 얘기조차 들어본 적 없이 딸에게 이혼가정에서 자라게 하는 오점을 남겼다.
정확히 짚자면 이혼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비율이던 내가 그동안 서툴게 쌓아 올린 행동과 선택들의 결과로 나온 게 이혼이었고 나는 내가 그것보다는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게 내 결혼이었고 이제까지의 나였다. 그런 내가 만든 결과가 이혼이다.
아이러니할 수 있겠지만 그게 내가 만든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자 뭔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잘못도 내가 만들었으니 그 반대도 내가 만들 수 있겠지. 상대방이 얼마나 잘했건 못했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티끌만큼이라도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비로소 앞으로 한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까지 일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