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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Sep 05. 2023

이혼이 잘못된 걸까

무엇이 이혼을 만드나

어릴 때 학원 수학숙제를 하다 보면 문제집 뒤에 있는 답안지를 펴보고 싶은 욕구가 확 올라올 때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답안지를 열어 답을 빠르게 적어 내린 뒤에 놀러 나가곤 했었는데 사실은 답보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한들 시간 들여 수학문제를 풀고 싶었을까. 사실 틀리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설명해 줘도 당시에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누군가에겐 그 당시에 풀 수 있는 문제기에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풀 수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 정답을 알 필요는 없었다. 결국 알게 되는 거니까.


이번 이야기는 그 수학 문제집의 답안지 정도다. 답이라는 말은 좀 웃기고 그냥 어느 결론 정도. 그게 정말 맞는지 틀렸는지도 상관없는 어느 생각 끝에 잠시 도달한 장소 정도.


수학문제집의 답안지가 결과적으로는 학생에겐 당장 숙제를 빨리 끝내게 해주는 것 외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이 이야기 역시 딱 그 정도밖에 안되리라.  


"선생님은 딱히 잘못한 거 없으세요."


내 변호사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이었다. 같은 말을 신경정신과 의사, 심리상담사, 법원 조사관, 법원 심리상담사를 거쳐 재판장에서까지 들었다. 이 위로 같은 말은 나를 두 번째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 왜 이혼인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럼 그냥 상대방이 이상한 거냐. 예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낫다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혼란스러웠던 가운데 법원 조사관은 찬물을 한 컵 부었다.


"그렇다고 아내 분이 뭔가를 엄청 잘못한 건 아니에요."


꼭 그 말 하나 때문은 아니지만 지금도 당시 조사관을 그렇게 좋게 기억하고 있진 않다. 전반적으로 상대방을 썩 배려하지 않는 말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본인도 매일 겪는 상황이다 보니 귀찮았나 보지. 아니면 원래 그 사람 성격이던가. 덕분에 조금 냉정한 대답을 들었다 생각한다.


성격차이로 결론 나는 이혼의 경우 결과적으로 그저 일방, 또는 쌍방의 선택이다.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말 어떤 잘못이 있다면 성격차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다. 형사법과 관련된 용어들이 붙었겠지.


 서로 법에 저촉될 만큼 뚜렷한 잘못은 없지만 일방, 또는 쌍방이 이혼을 원하기 때문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을 최대한 끄집어내어 혼인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걸 피력해야 성격차이라는 단어가 붙고 이혼이 성립된다. 국가 입장에서는 딱히 명분 없는 이혼을 반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잘못이 없어도 애써 원하면 이혼은 가능하다. 쉽진 않지만 이걸로 밥 먹고 사는 이혼전문 변호사들에겐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는 판결이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포인트 중 하나가 또 여기에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이혼을 해야 할 정도로 내가 잘못했냐 하는 도돌이표 같은 물음. 


"선생님은 딱히 잘못한 거 없으세요."

"그렇다고 아내 분이 뭔가를 엄청 잘못한 건 아니에요."


지금도 생각할수록 내 정신을 갉아먹는 쳇바퀴다. 


이혼으로 오는 스트레스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뭔가 잘못된 걸 겪게 된다는 막연함 죄책감. 다른 하나는 내가 애써 만든 가정이 사라진다는 상실감. 


이혼은 잘못된 걸까. 난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한다. 이 답에 대해서는 이혼을 겪지 않은 이들보다 이혼을 겪은 이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흔히 듣는 말이 '이혼은 죄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네 아니죠. 앞서 계속 말했듯 성격차이 이혼의 경우 꼭 누가 잘못해서 이혼하는 건 아니다. 


근데 그러면 잘해서 이혼하나. 정말 서로 다 잘해서 이혼하나. 아무리 상대방이 대화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소장을 보냈다 할지라도 그게 정말 절대적으로 상대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나. 누군가의 편을 들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위장이혼이 아닌 이상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갔을 때, 그 결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택지 중 하나가 이혼이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말 그 사람이 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 그런 사람을 만난 것조차 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비난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이혼이라는 그 큰 덩어리 안에서 자신의 잘못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을 자신의 실수였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걸 바꿀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이혼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대에게 이혼을 생각하게 할 빌미를 주었고 내 기준에서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로 선택했었던 것도 나였다. 상대가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으며 아내가 어떤 고민을 안고 살고 있는지 제대로 얘기조차 들어본 적 없이 딸에게 이혼가정에서 자라게 하는 오점을 남겼다. 


정확히 짚자면 이혼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비율이던 내가 그동안 서툴게 쌓아 올린 행동과 선택들의 결과로 나온 게 이혼이었고 나는 내가 그것보다는 행복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게 내 결혼이었고 이제까지의 나였다. 그런 내가 만든 결과가 이혼이다. 


아이러니할 수 있겠지만 그게 내가 만든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자 뭔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잘못도 내가 만들었으니 그 반대도 내가 만들 수 있겠지. 상대방이 얼마나 잘했건 못했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티끌만큼이라도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비로소 앞으로 한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까지 일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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