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온 건 아니지만, 전체 스케줄은 15일가량 되는 일정이다. 긴 듯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 일정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카트만두를 둘러보는 일정이 어쩌면 도착한 날 오후 몇 시간이 전부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간단히나마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거리는 세련되진 않았지만 매우 정돈된 느낌이다. 적어도 차가 다녀야 할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의 구분이 확실하니까. 차선이 딱히 나눠져 있지 않았지만 나뉘어도 의미가 없을 것 같긴 하다. 차보다는 모토바이크가 비중이 많았고, 바퀴가 달린 모든 동체가 뒤섞여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알아보고 온 정보가 없으니 JH가 어렵게 전달해 준 여행책자를 보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타멜 더르바르 광장'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광장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긴 했지만, 별도의 울타리가 없는 데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냥 들어가도 알 수 없을 듯했다. 유적지와 사람들의 삶이 하나로 어우러진 그곳은 비단 오래된 유적지를 만나는 것 이상이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여러 곳을 둘러봤어도 오래된 유적지와 현대인의 삶이 이렇게 어우러져 있는 곳은 처음 보는 풍경이다. 유물처럼 대물림하는 그들의 삶이 같이 전시된 느낌이랄까? 불교와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의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기도 하지만 사원 앞에 너무나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쉬고 있는 소의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더르바르 광장' 남쪽 끝에 있는 붉은색 목조 건물은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다. '쿠마리'는 네팔 안에서 32가지의 까다로운 조건에 맞는 3~4세의 여아를 선발하여, 초경을 맞이할 때까지 '쿠마리' 역할을 하게 된다. 네팔 사람들은 '쿠마리'가 국가는 물론 개인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예언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쿠마리'가 머물고 있는 사원의 양식은 인도의 핑크시티라 불리는 '자이푸르'에서 봤던 '하와 마할(바람의 궁전)'의 양식과 비슷한 면이 있다. 외부 출입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여성들이 창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하던 방식 말이다. 하루에 한 번, 오후 4시가 되면 살아 있는 처녀신 '쿠마리'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데, 사람들은 살아 있는 신을 만나기 위해 광장에 몰려들지만, '쿠마리' 입장에선 그녀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유일하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광장에는 온갖 골동품들을 들고 나와 팔고 있는데, 그들의 질서 정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딜 가나 인도와 비교가 된다. 우리 기준으로 아직 발전이 덜 된 나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의 살아가는 정서의 수준은 매우 훌륭하다.
이 더운 나라에서 왠지 변변한 냉장고도 없이 고기를 저대로 두고 팔아도 상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푸줏간. 소는 식용하지 않으니 아마도 돼지고기 이거나 버펄로로 추측을 해 본다. 우려한 것보다 그 앞에 냄새가 심하지도 않았고, 저런 곳에서의 매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참 어렵겠구나 생각이 될 정도다. 나름 정리된 이발소, 형형색색의 과일과 채소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파는 채소상인들, 사람들이 많아 번잡한 시장 골목 구석구석도 그 나름의 룰을 가지고 정리정돈이 되어 있다. 과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끌어들이는 호객꾼도 없고, 서로 먼저 가려고 밀치거나 하는 경우도 없다. 사람이든 소든 모두 서로를 배려하며 공존하는 세상이랄까.
저녁 무렵 드디어 Sanjay를 만났다. 그는 네팔에 있는 한국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광고회사를 한다는 친구 Manash도 함께 나왔다. 내가 광고회사에 다녔다는 얘길 듣고 같이 동행을 한 터다. 소개하여준 동생 H가 친구라고 하는 바람에 큰 부담 없이 도움을 받았는데, 만나고 보니 왠지 큰 실례를 한 것 같은 느낌. 일면식도 없는 나를 위해 숙소 예약에 공항 픽업까지 도움을 줬으니 근사한 저녁을 대접해야 생각하고 있었는데, 초행길이니 아는 집도 없고, Sanjay가 동네 맛집이라며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국사람들과 일을 했던 친구라 로컬 음식에 큰 부담이 없을 거라며 추천해 준 음식 '모모'.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찐만두와 같다. 무슨 모모를 좋아할지 모르니 모둠으로 시켰다는데 이렇게 다 섞여 있으면 뭐가 뭔 줄 알 수가 있나. 안에 있는 고기는 '버펄로'라고 하는데 지금은 음식을 가릴 때가 아니니 일단 먹어 보기로 한다. 맛은 거의 '소고기'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인상적인 'EVEREST' 맥주로 건배를 하며 얘길 하다 보니 이 두 분, 나와 동갑일세. 일을 그만두고 사람을 만나니 바로 친구가 되어 버린다. 마흔 넘어 새로운 친구 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거든. 그동안 형식에 메여 살던 삶에서 해방이 된 느낌이랄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이국땅에서 이렇게 환영을 받고, 내 앞으로의 여정을 자기 일처럼 격려해 주는 친구들이 큰 힘이 된다. 정말 내가 히말라야에 가는구나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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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오르고 내리는 히말라야 같은 것이다 by 바람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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