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이 되찾아준 건강
먹거리의 중요성은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들어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세상엔 위험하고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다.
나는 집밥보다 편의점 음식을 먹을 때 더 행복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건강은 빠르게 망가져 항상 잔병치레를 해야만 했고, 불편한 몸 상태를 디폴트로 여기며 살면서도 식습관이 문제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나는 콜라를 정말 좋아했다. (사실 햄버거도, 감자튀김도, 떡볶이도 피자도 디저트도 좋아하지만 전부 말하는 건 불가능하니 여기까지만 하자.) 밥을 먹을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콜라를 마셨다. 하루에 두 캔 이상 마시지 않으면 속이 답답할 정도였다.
자취를 하면서 혼자 밥을 차려먹기 귀찮으면 음료로 끼니를 때우고, 간편하게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하루에 3번 이상 배달을 시킨 적도 있다. 그나마 건강을 챙겨보겠다고 다짐했을 땐 현미 즉석밥을 먹고,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다 먹었다.
그렇게 간편식으로 연명하던 자취를 그만두고 본가에 돌아왔다. 음식점도 배달 음식도 많던 화려한 도시와는 다르게 이 동네에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마트와 편의점뿐이었다. 처음엔 배달도 안 되는 깡시골이라며 투덜댔지만, 사실 이건 건강해질 절호의 기회였다. 난 도시생활에 너무나도 중독되어 있었다.
그즈음에 나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었다. 내 인생에 소중한 것만 남기려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식생활에 영향을 줬다. 인스턴트식품을 주식으로 먹던 생활이 물릴 때쯤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천천히 식습관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금은 냉장고에 있는 콜라를 봐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수가 질리면 보리차를 마신다. 보리차가 이렇게 맛있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화학적 자극에 길들여져 자연스러운 맛에서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입맛이 둔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요즘엔 주로 파스타를 해 먹는다. 즐겨 먹던 로제나 크림 파스타는 아니지만 올리브유를 넣은 알리오올리오나 간장 파스타도 충분히 맛있다. 채소의 풍부한 맛만으로 고기 없이도 만족스럽게 식사할 수 있다. (유제품과 고기가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채소와 함께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간단히 완성되는 오트밀도 즐겨 먹는다.
천성이 게으른 나 같은 사람은 이렇게 최대한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게 좋은데, 이것마저 귀찮으면 채소나 과일을 그대로 먹는 방법도 있다. 건강한 식단도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이 많지만 나에겐 맛보다도 귀찮지 않은 준비 과정이 1순위다. 어떻게든 맛있게 먹으려고 변주를 주다 보면 집밥을 먹는 게 힘들고 귀찮아진다.
여전히 가끔씩 맛있고 해로운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지난번에도 야식으로 피자를 시켜 먹으려다가 건강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간신히 참았지만, 건강식이 내게 가져다준 효과를 명확히 알기에 이제는 전처럼 입속에 해로운 음식을 마구 집어넣지 않는다. (다음날 오후에 시켜 먹기는 했다.)
식단을 바꾼 후 나타난 신체적 변화들 덕분에 건강해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딱 배부를 만큼만 음식을 먹고, 과하게 욕심내지도 않는다. 건강한 음식에는 중독되게 만드는 맛이 없다. 딱 적당하게 기분 좋은 맛만 날뿐이다.
배달음식도, 편의점도 필요 없어진 지금 나는 인생의 제약이 크게 줄어든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디서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저 마트 하나만 있으면 된다. 어느 마트에나 있는 야채나 과일, 곡물만으로도 행복하고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에 맞는 음식을 찾아가는 건 재미있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스스로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삶을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