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Tai, My Thai!

칵테일의 마법

by 돌아온 돌보

허리케인 글라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마이타이를 내가 처음으로 맛 본 곳은 태국, 방콕이었다. 6년 전이었을까, 16년 여름 평범한 나날 중 하루,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이번 휴가 방콕 어때?"

"돈이 되는 거야?"

"이번 달에 상여금 나오잖아, 그걸로 가자!"


나이스! 마침 남편의 상여금이 들어오는 달이었다.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았다. 나는 망설였고, 주저했다. 남편은 강행했다. 그 때였을까, 우리는 급작스럽게 떠났고, 4박 5일이란 짧지만 짧지않은 여정을 시작하였다.


방콕은 휘황찬란한 곳이었다. 밤이면 가로등이 어둠을 수놓고,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바쁜 곳이었다. 우리는 방콕의 반얀트리 호텔에 묵게 되었다. 내 기억속의 반얀트리는 레몬그라스 향기가 로비를 가득 채우고 보랏빛 웰컴드링크가 새초롬한 맛을 뽐내는 곳이었다. 체크인을 하였고, 술을 애정하는 우리부부는 바로 루프탑 바로 직행하였다. 메뉴판을 들고 쉽게 정하지 못하던 중, 추천받은 방콕에서의 첫 칵테일 '마이 타이'. 파인애플과 오렌지의 콜라보레이션이 기가 막히는 목넘김으로 무더위 속 한 잔의 기분 좋은 열대 주스를 들이킨 느낌을 받았다. 달콤한 한 모금을 마시자 우리의 신혼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삼 년을 연애했고, 이십 대에 결혼을 하였다. 삼 년이면 우리가 서로를 알아내기 충분한 시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신혼 2년의 시간을 격렬하게 싸워댔다. 남편은 치약 뚜껑을 닫는 법이 없었다. 늘 이를 닦고 나오면 치약 뚜껑이 덩그렇게 굴러다니는 것이었다. 그런 뚜껑을 제대로 닫는 일은 늘 내가 해야만했다. 나는 돈을 관리하는 법을 몰랐다. 용돈 생활을 안해 본 것이 이유이기도 했지만 남편이 가져다 준 돈에서 대출 원금 68만원을 갚고 나면 남은 돈을 마치 용돈처럼 자유롭게 지출했다. 남편은 매일 같이 늦었다. 신입 사원이자 영업부문에 있었던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거래처 회식과 부서회식으로 새벽 2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오곤했다. 나는 너무 외로웠다. 저녁이면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캔맥주를 사다가 자취생처럼 식사했다. 우리는 신혼이었지만, 연애 때보다도 서로에게 무심한 부부였다.


나에게 그는 어떤 존재였을까. 또한 그에게 나는 얼마만큼 중요했을까. 알 수 없었다.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미지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게 그는.

서로를 몰랐기에 부딪혀야했던 지난날들. 알아낼 노력조차 거두고 앞만 보고 걷는 발걸음은 우리를 더욱 멀어지게만 만들었다. 겪으면 겪을 수록 서로를 알아냈다라는 오만함에 서로를 예단하기 일쑤였고, 넘겨짚음은 결국 싸움으로 돌아왔다.


그 해, 엄마는 전신경화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진단 받았다. 자가면역질환이었다. 치료받지 않는 다는 전제 하에 남은 시간은 6개월, 시한부 선고였다. 치료는 불가능했고 현 상태의 유지만 가능했다. 나는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매일 같이 울부짖었고, 무교였던 내가 하나님께 애절하게 매달렸다. 그 때 내곁에 있었던 단 하나의 사람, 남편이었다. 원하지 않았다, 그의 위로를. 우리는 서로를 보듬어주기에 너무 멀리 서있었다. 사소함으로 시작했지만 우리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기에 그 때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랬던 우리에게 4박 5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분명히 우리는 여행에 진지했고, 이 시간을 우리 관계 회복에 귀중하게 쓸 수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할 말이 있는데, 화 안 내줄 수 있어?"

"시작 부터 각을 잡아, 무섭게. 무슨 얘긴데?"


분위기가 한껏 업되었을 때,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이길래 목소리가 차분해졌을까.


"올 겨울에 말야, 어머님하고 여행 한번 다녀오는 거 어떨까해서. 내가 티켓을 끊어놨거든."

"무슨 여행이야 갑자기? 어디로 말인데?"

"음, 이탈리아"

"아니 그렇게 멀리 엄마 아픈데 어딜가. 그리고 자기 나한테 말도 없이 그렇게 돈을 써대면 어떡해. 그리고 웬 여행이야 여행은."


나는 남편에게 그간 쌓인게 많은 사람처럼 퍼붓었다. 왜 그랬을까, 그의 진심을 그렇게까지 왜곡시켜가며 우리의 멀디 먼 사이를 지켜내고 싶었을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미친듯이 내뱉었다. 방콕은 우리에게 어떤 여행이었을까.


치약 뚜껑은 내가 닫아도 괜찮을 정도의 단순한 일이었다. 회식이 잦은건 그의 탓이 아니었고, 거래처가 아니면 매일같이 붙잡는 손을 뿌리치며 집으로 달려오던 그였다. 내게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퇴근 길 내가 좋아하는 모란디 화집을 사와 내게 불쑥 꺼내던 그. 술을 마시지 못하던 내가 마실 수 있게 지거를 구입해 직접 칵테일을 말아주고, 회식이 끝나면 내 생각에 갖고 들어오던 쇼핑 백 속 초밥 한접시가 떠올랐다.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나의 문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없는 신혼집 17평 작은 거실에 초라하게 놓여진 내 모습이 마치 버려진 느낌이 들어 원망스러웠다. 자꾸만 밀쳐낸 이유는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내게 그가 건네는 화해의 손짓, 그리고 그것에 소스라친 듯 놀라며 들었던 미안함의 감정.




나는 알게 되었다. 사실은 로마행 티켓은 우리의 소원해진 사이를 위한 것임을, 수년 간 그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오해한 '네'가 내게 보여준 의외의 배려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그것만으로 우리의 틈을 메울 순 없겠지만 우리감정의 가뭄을 해소할 장맛비가 될 것임을. 슬픔에 잠겨있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엄마와의 여행을 기획했을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함이 눈앞을 가렸다.


실은 여행을 통해 치유하고자 했던 바는 단순히 멀어진 사이가 아니라, 우리의 '이해'였다. 내 방식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강요된 설득이 아닌 상대방에 대한 리져너블한 이해가 필요했을 뿐인데. 수 년동안 스스로를 상대방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불만을 쌓아왔던 지난날의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방식 대로 저울질 해왔던 것이다.


칵테일은 매력적인 술임에 분명하다. 알콜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세상이어서 아니라, 다른 술은 흉내낼 수 없는 엄연한 매력이 존재하지 않는가. 마시는 순간 과일주스 같은 달콤함일 수도 있고, 진한 초콜렛 음료 같기도 하며, 40도가 넘는 독한 술도 부드러운 목넘김을 가능케 하는 마법의 묘약. 우리의 태국 여행이 그러했다. 잔뜩 덧이 난 상처같은 우리 사이도 스위트 베르무트 한방울로 부드럽게 치유되는 듯한 칵테일의 마법 같은 여행. 한낮 더위의 잔열이 우리의 발바닥을 감싸 안을 때, 들이켰던 한 잔의 칵테일과 우리의 짧은 눈 마주침. 마이타이는 그 뜻 자체만으로도 '최고'이지만서도, My Thai는 3년의 연애를 떠올릴만큼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 나의 타이, 우리의 태국이 되시겠다.



태국어로 '최고'라는 뜻의 Mai-Tai는 화이트럼과 쿠앵트로라는 리큐르가 들어가는 트로피컬 칵테일이다. 주스 종류만도 두 가지(오렌지와 파인애플)가 들어가며 석류시럽으로 마무리 짓는 열대과일의 대향연이라고 할 수 있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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