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회식하는 날은

나의 회식 날

by 돌아온 돌보


어김없이 찾아온 그날, 남편의 회식 날.


그리고 나의 회식 날.


다음 주 화요일, 나 회식이야


또 회식이라니.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신혼 때부터 매일 늦었던 것 같다, 아니 늦었다.

우리는 20대 끝자락 웨딩마치를 올렸고, 그때 우리 남편은 한창 회사 신입으로 여기저기 끌려다니던 시절이었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그나마 금요일은 사수해줬으면 하는 나의 애절한 부탁 때문인지 불금은 함께 보냈었던 것 같다. 영업부서에 있었던 지라, 거래처와의 약속이 잦았다. 한번 시작한 술자리는 새벽이 돼야 끝을 보고 새벽 두 시경에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우리 아버지는 매일같이 늦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와의 추억이 드물다. 항상 내 곁엔 엄마와 동생뿐이었다. 아침에 면도한 자리가 어느새 자라 까슬까슬해진 턱끝을 볼에 부비며 아빠가 연어덮밥을 사 왔다며, 한입 뜨고 자라는 그 말이 그리도 싫었다. 술이 떡이 되어 들어온 날엔 엄마와 함께 아빠의 양말을 벗기기에 바빴다. 취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해 천근만근보다 무거웠던 아버지를 엄마와 함께 질질 끌고 방에 눕힐 때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너무도 싫었다. 온몸에서는 술냄새가 진동을 하고 묻는 말에는 대답도 잘하질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왜 엄마처럼 우리 곁을 지켜주지 못하냐며 원망에 원망을 거듭했다. 난 괜찮다며 한사코 아버지를 언제나 이해하려 노력했던 엄마가 답답했다. 나는 어렸지만, 엄마의 눈동자에 담긴 말 못 할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외로웠다. 우리 모두는 사무치게 외로웠다. 아버지의 부재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문제였다.




그래서였을까. 술자리 많은 직종은 딱 질색이었다. 당연히 배우자감도 그런 사람을 원치 않았다. 내가 허용하는 술자리의 범위에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술자리는 도무지 내 기준에선 이해불가였다. 회식이 잦은 영업직, 전문직은 사절이었다. 사업가도 당연히 싫었다.


그러다 취업하게 되면서 회식문화에 대한 염증이 한층 더 심해지게 되었다. 주간 회식, 마감 회식, 그 사이사이를 장식한 사업부 회식, 그리고 잦은 번개로 일주일에 4일은 술자리였다. 끌려다닐 때마다 우리 곁에 있어주지 못한 아빠가 떠올라 더욱이 몸서리치게 싫어졌다.



아빠가 원한 자리는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혼자 있었을 엄마에게서 느껴졌던 가없는 슬픔을 그냥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은 꼭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과 하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과 하고 싶었다. 어릴 적 나는 외로웠고, 아버지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없었기에. 그래서 원했다 회식 없는 사람을.


그러다 사랑을 했다. 우리는 학생 때 만났고, 힘들다는 대학 졸업과 취업을 함께 했다. 그는 금융계열을 들어갔다. 괜찮을 줄 알았다. 우리는 버진로드를 함께 걸었고, 평생의 반려자가 되었다.




남편은 하필이면, 영업부서에 배치받았다. 직접적으로 영업을 뛰는 일은 아니었지만, 거래처 회식이 잦았다. 한술 더 떠, 술 좋아하는 사수까지 만났다. 덕분에 회식과는 아주 찰떡궁합이었다. 그래서 늘 늦었다. 그가 늦는 날이면,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과 캔맥주를 샀다. 설거지도 귀찮아 나무젓가락을 뜯어 외로운 식사를 했다. 16평짜리 소박한 집 안방 겸 거실 한켠 놓여진 2인용 식탁에 홀로 앉아, 어린 나를 회상하며 고적함에 눈물을 흘렸다. 힘겨운 외로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달빛이 하늘거리는 차가운 새벽의 발걸음이 느껴진다. 그제야 도착하는 택시. 계산도 버거울 정도로 몸을 가누질 못하는 남편을 대신하여 택시비를 결제한다. 축 쳐진 몸과 어깨동무를 하고 집에 데려다 놓으면 익숙한 솜씨로 양말을 벗긴다. 그럴 때면 눈물이 눈앞을 가리다 입술로 번지는 것이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벗기던 아빠의 양말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소스라치게 싫었던 그때의 내가 다시 재생된 것 같아, 흐느껴 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남편의 회식이 너무나 싫다.

단순히 술냄새를 그득 풍기고 들어오는 그의 풍채를 싫기하기도 해서지만, 그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오버랩되는 게 더 역겹다.




그러다 아이가 생겼다.

그는 여전히 늦었고, 덕분에 나 홀로 독박 육아 신세가 되어버렸다. 하루 여섯 개씩 나오는 젖병을 혼자 씻고, 세 번의 똥기저귀를 갈아주고 허리를 꽉 조이는 아기띠로 허리가 욱씬댈때까지 아이를 안아 재우고나서도 그는 오지 못했다. 창 밖의 황동색 가로등이 밤의 거리를 수놓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황량한 도로가 되어서야 돌아오는 것이었다.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난 충분치 않았다. 늦어서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고되었다. 일요일 밤만 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업 주부인 내가 월요병에 시달렸다니. 어쩌다 발견한 달력의 빨간 날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늦는 건 그의 뜻이 아니었고,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버티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큰 애를 낳고 어쩌다 취업을 하게 되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나는 직장일과 육아를 나 홀로 병행해야만 했다. 회식을 해야 될 때면 남편에게 몇 주 전부터 고지를 해야 했다. 이해했지만, 사실 정말로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체력이 바닥을 쳤고, 현기증에 몸이 휘청거렸다. 다시 도진 메니에르 병에 귀가 먹먹해져 갔다. 보석보다 더 예쁜 아이에게 형언할 수 없는 미안함으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드디어 그는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덕분에 예전처럼 일주일에 4일을 회식하는 일은 드물게 되었다. 대신 야근으로 밤 열 시가 돼야 퇴근을 할 수가 있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늦고, 하염없는 기다림을 뒤로 한채 이 자리에서 나는 아직도 그를 그리워한다.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인지 이해하기로 하였다.

매일같이 늦는 그와의 잦은 싸움으로 단련된 우리 틈에서 이해의 싹이 피어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어느 밤이었을까, 내게 힘들다고 울부짖었던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곤 나는 몇 날을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 쓸쓸한 나의 감옥에 갇혀, 그의 통탄스러운 아픔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갑자기 미안해졌다. 마음도 몰라주고 왜 맨날 늦냐며 채근했던 지난 나날들.


어느 날 아이들이 모두 일찍 잠에 든 날 밤, 그에게 나의 어린 시절의 아픔을 고백했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꺼내는 말이었다.

놀라운 얼굴을 한 그가 내게 말했다.

"미안해, 아픔을 몰라줘서. 단지 이유 없는 잔소리라고만 생각했었나 봐.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렸다. 내 눈물이 그의 어깨춤을 잔뜩 적시고 소매로 훔친 콧물 때문에 옷이 척척해질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알아가기로 했다. 연애와 결혼 합 10년이 되던 날,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기로 했던 것 같다.



알아주기로 결심하자, 회식 통보가 그리 나쁘지가 않았다.

"그래, 하고 싶어서 하는 회식도 아니고 얼마나 힘들겠어 술 대작하는 일이."

이왕 남편 술 마시는 날, 오랜만에 날 위한 회식을 가져보자 싶었다.


나만의 회식 중


남편이 회식하는 날, 나는 나만의 만찬을 가진다.

그런 날엔, 좀 더 식단에 신경 써본다. 나를 위한 소울푸드를 만들어보고, 어울리는 술을 준비한다. 내가 사랑하는 끼안티 클라시코가 좋겠구나, 최대한 우아한 본새를 유지하며 와인잔에 콸콸 따라본다. 함께 마시는 상대만 다를 뿐 너도 회식하고, 나도 회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나쁘지 않다. 아니, 꽤 괜찮다.

이왕 하는 회식, 나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보니 새삼 그의 고생이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가 함께이지 못했던 그 숱한 순간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그가 한동안 미웠다. 그러나 원했던 자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자리가 주는 고통.'


이제는 큰애가 제법 말을 할 줄 알아, "아빠 왜 이렇게 늦어"라며 앙탈 아닌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싫지만은 않다. 나긋한 소리로 아이에게 말해준다.


아빠도 늦고 싶어서 늦으시는 게 아니야.
너와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걸.


오늘은 남편의 회식 날이자, 나의 회식 날.


오늘 나는 날 위한 어떤 요리를 해볼까하는 새로운 설렘으로 가슴이 나댄다. 남편이 어쩔 수 없이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만큼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기로 결심했다.


늦는 아버지 대신, 내 가슴속 불어넣어 줬던 엄마의 그때 그 절절한 사랑을 소환해내며.

신혼 시절, 함께 한 여행 중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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