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속의 일기
찾아오셨군요, 당신을 기다린 건 아니었습니다. 요즘에는 더 늦게 잠 들려 뒤척이고 그랬습니다. 생각이 사나운데, 어쩔 도리가 없어 내일을 미뤘습니다. 어김없이 적막한 기운으로 나를 흔들고 깨우십니다.
저도 잘하고 싶었고, 이겨내고 싶었지만 항상 만만치 않았습니다. 못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발악도 힘이 있을 때 할 수 있었습니다. 힘이 안 나서 뻐금 뻐금 눈만 뜨고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일으켜 세워 준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 가득한데 내일이면 나를 향한 걱정의 눈빛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주신 기회도 많았고, 제 힘으로 얻은 기회도 있었지만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실패를 맛볼 때마다 비틀리고 메말라갔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도망칠 때마다 낙원에 닿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늘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남기는데, 온전한 정신으로 살았던 적이 있나 싶습니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지만 지난날을 후회한들 달라질 건 없습니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저에게는 약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기살인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누구나 가져야 할 것에 공포와 불안을 심고는 일부만 독점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면 그것을 잘 못 견딥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마다 최소한의 보호막이 있어야 하는데, 몇몇은 침략이 허용되고 때로는 불허되어 사방에서 찔리기 일쑤고, 내쉬는 숨마저 빼앗기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나요?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숨이 막히고 쓰러질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문제가 있어도, 문제란 것을 알아도, 그것은 굳건히 존재할 뿐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겁니다. 쌓이는 문제들은 저마다 일련의 불합리를 만들어 내고, 꽤 그럴듯한 질서와 체계로 굳어집니다. 자신을 은닉하고, 그 속에 편입되는 것만이 평화를 지키고 분쟁을 만들지 않는 방법이 됩니다. 서로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통하지 않는 세상을 살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재미와 의미에 대한 집착병입니다. 누구에게는 익숙하고 그냥 하면 될 일도, 나에게는 별 일이 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시작이 어렵고, 시작을 했더라도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면 금방 식어 버립니다. 정성과 열정이 담겨 있지 않은 것들을 내어 놓을 때마다 미칠 노릇입니다. 내가 이것을 만족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여기는데, 상대의 반응과 인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의 경지에 다다른 부류는 '그냥 해, 일이잖아.'와 같은 명언을 던집니다. 또 어떤 부류는 '일을 하는데 무슨 재미를 찾고 의미를 찾냐'며 느릿한 태도를 경계합니다. 그렇다면 재미나 의미는 필요 없고 시키면 그냥 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누가 봐도 생존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기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당신의 기척을 느낄 때면 오늘도 삶을 주셔서 감사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기척이 채찍 같습니다. 불안을 머금은 아침은 겁부터 나고, 맥없이 풀리는 오후에는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으며, 소진된 밤에는 재미와 의미를 찾아 늦은 여행을 떠납니다. 짧은 여정이라도 진실되게 원하는 삶을 만끽하고 싶어 만들어 낸 유치한 습관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발버둥 치지 않으면, 죽은 채 살아갈 것 같습니다.
차라리 꿈속을 헤매면 좋았을까요. 더 잘 살고, 행복하고 싶었던 젊은 날의 나는 무엇을 바랐기에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걸까요. 포기하는 법도, 나아가는 법도 모르면서 나이만 들었을까요. 떠밀리듯 살아오면서 왜 한 번쯤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요. 잘난 것 없이 분수대로 살자며 다짐했으면서 왜 이따금씩 무력함에 찔려 자꾸만 삐져 나보려 하는 걸까요.
계절 탓을 하며 덮어두려다 방 안에 숨어 목놓아 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