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휴가기간이라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많이 생겼다. 회사 다닐 때는 무언가 매일 쫓기는 기분이라 잠을 잘 못 잤었다. 요즘엔 저녁에 아이들 재우다가 10시경 잠들어서 아침 7시쯤 일어나는 생활이 게으르게 느껴지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큰 아이 학교를 보내고 작은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는 복작대는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아이에게 내는 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있다. 그동안 회사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풀고 있었던 거 같아서 마음이 뜨끔했다.
그러던 중 20년 지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풋풋한 10대, 열정 넘치는 20대, 백조 같이 물 밖으로는 고고하지만 물아래로는 치열한 30대의 나를 모두 알고 있는,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을 아는 친구다. 항상 나에게 뼈 있는 조언을 많이 해주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만하면 됐다. 10년이면 오래 다녔다. 이제 그만둬라."라고 했다. 그 친구의 말처럼 나도 직장생활이 내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회사 일 때문에 번뇌함으로써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함께 힘들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왜 나는 그만두지 못하는 것일까?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친구에게 나는 지금 생활의 유지를 말했다. 경제적으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한 달에 현재 내가 받는 월급을 계속 받아야 대출이자도 내고 아이 교육비도 쓰고 생활비를 낼 수 있었다. 내가 그만 두면 대출도 갚아야 하고 아이 교육도 줄여야 하고 생활도 팍팍해지는 게 나는 두려웠다. 남편이 느끼는 가장의 무게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만 나도 한 어깨에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다는 책임감이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퇴사하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고 시간적 여유도 있어서 아이들을 케어하기에도 훨씬 나았다. 사회적 시선 때문일까? 직장이라는 타이틀이 나를 대변해 주고 나의 사회적 위치를 알려주니 그런 면을 포기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엔 그 끝이 정해져 있고 부장, 임원이 될지언정 퇴사는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회사원보다는 내 회사의 대표가 되는 것이 훨씬 있어 보인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그 10년에 대한 미련과 오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할 만큼 했다고 나 스스로 납득할만해야 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같고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하냐고 해도 난 내가 경험하고 깨지고 그래야 정신을 차렸다. 참 그러고 보면 사람 안 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흔들어도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 것처럼 나이가 들어도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나라는 사람 참 안 변했구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 시작할 힘이 남아있다는 것이니까. 어디 가도 잘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난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회사에서 잘해보자'가 아니라 '경험할 만큼 하고 나오자'로. 내가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지긋지긋한 회사를 10년 동안 다녔기 때문이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것도 회사와 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니까. 내 친구가 들으면 "정말 징하다"할테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