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허하다. 허한 마음을 채우려는데 잘 안 채워진다. 어렸을 땐 허한 마음이 허기인 줄 알고 먹방에 심취하기도 하고 독한 술을 마시면 나아질까 부어라 마셔라 하기도 했다. 사람으로 채우면 채워질까 해서 친구나 애인을 열심히 만나도 봤는데 그 끝은 또 허무함이었다.
일이나 취미생활에 몰입하기도 했다. 열심히 해 나가는 내 모습이 멋져 보이기도 했지만 연극이 끝나면 무대에 어둠이 오 듯 일을 마치고 취미를 끝내고 집에 오면 또다시 허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자꾸 나를 몰아세웠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러 가지를 잘하면 채워질까? 매일매일 누가 하란 것도 아닌데 성취를 하기 위해 내달렸다.
그러다 문득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내 자신이 보였다. 열심히 물을 길어다가 독을 채워보려고 하지만 힘만 들뿐 독은 채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독 안에서 쏴아하며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며 나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고 잠시나마 독 안에서 출렁이는 물을 보며 내일은 다를 거라 위안을 했다.
무언가 열심히 하는 것 이전에 내가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의 독이 대접인지 호리병인지, 유리인지 도자기인지, 단단한지 깨졌는지 봐야 했다. 깨졌다면 무작정 마감질을 할 것이 아니라 깨진 부분을 활용해서 무엇을 담을지 정하면 되었다. 물 말고도 담을 것은 많고 담지 않아도 그 자체로 괜찮았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물론 지금도 가끔은 버거울 정도로 일을 벌리고 중간에 포기하거나 수습하거나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런 상태구나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전처럼 어렵지 않다. 여백의 미처럼 허한 마음을 허하게 두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행복한 상태를 기본 전제로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은 일상이 지옥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허한 상태를 디폴트라 생각하면 조그만 좋은 일이 생겨도 내가 채워진 듯 충만함이 생긴다. 시선의 차이, 시각의 차이가 똑같은 상황도 다르게 느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