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이 떠졌다. 어제 겁도 없이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때문이다. 카페인의 위력을 마실 때마다 체감해서 다음번엔 마시지 말아야지 하는 데 꼭 마실 때는 이번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후회한다. 오랜만에 강제 새벽 기상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응급상황이 발생한 것처럼 저절로 눈이 떠지던 시기가 있었다. 잠을 자도 자도 또 자고 싶어 해서 잠만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인 내가 그 달콤한 잠을 마다하다니. 그땐 정말 살려고 아등바등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다.
새벽글쓰기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였다. 더 이상 침대에서 안 오는 잠을 들려고 전전긍긍하지 않고 잠이 오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회사에 출근해 졸리고 고되었지만 나를 위해 새벽 시간을 보냈다는 그 충만함 하나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
지금은 새벽에 일어날 만큼 삶이 고되지도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는 평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새벽기상이라니. 카페인의 장난으로 인한 하루의 해프닝으로 끝나길 기대해 본다. 내일도 새벽에 일어난다면 열심히 글을 쓰라는 계시라고 생각해야 하나?
평소와 다른 이벤트가 있냐면, 오늘 여행을 가는 날이라는 거다. 생각해 보니 기차를 놓칠세라, 비행기를 못 탈까 봐 알람 시간이 되기 한참 전에 눈이 떠지던 나날이 생각난다. 카페인과 여행의 콜라보. 최근 여행 다운 여행을 간 지 오래돼서 까먹고 있었다.
어릴 적 소풍 가기 전 날에는 엄마의 김밥 싸는 소리를 오롯이 들으며 일어나 어쩐 일로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니? 하는 엄마의 말을 듣곤 했다. 여행이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구나. 그 사실에 안심이 된다. 카페인 혹은 걱정으로 인한 새벽 기상이 아니라는 것에 말이다.
내친김에 헬스장에 가서 걷다 올까까지 생각이 미친다. 그러다가 여행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절하는 건 아닐까? 차라리 자면 좋은 데 못 자서 좀비모드 되면 어쩌지. 새벽 시간은 뭐든 상상하기, 계획하기 좋은 시간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글을 모두 여기에 적고 나면 거짓말처럼 스르륵 잠이 오면 좋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여행 전 증후군도 모두 토닥토닥 워워하고 여행 가서 불사르길. 이제는 체력이 아쉬운 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