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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님 Sep 09. 2024

어쩌다 승마

ChuChu


아니 원래 말을 타고 싶었어?




주말에 승마를 하고 싶다고 하자 남편이 어이가 없다며 나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 왜 말을 타고 싶었을까? 굳이 이유를 찾아야 한다면 어렸을 적 봤던 TV만화 '작은 숙녀링'에 감명을 받아서 일거다. 말과 교감하며 승마하는 모습이 어린 내게 너무 멋지게 느껴졌다.


말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갖고 있던 내가 실제로 말을 만나고 탔던 건  딱 두 번이다. 10살 때 가족여행에서 그리고 18살 때 수학여행 가서다. 본의 아닌 게 둘 다 제주도였다. 10살 땐 민속촌에서 말 타고 사진 찍는 거였는데 말과 교감은 무슨 무서워서 잔뜩 얼어버린 사진만 남았다. 그리고 수학여행에서는 말 타고 걷고 달리기를 했는데 무사히 한 바퀴 돌았지만 손에 식은땀이 가득하고 정신까지 혼미했었다.


그런데 대체 왜 말이 타고 싶어 진 걸까. 마사회에서 하는 힐링승마 프로그램이 있어 호기롭게 신청을 했다. 보통 승마장은 경기도 부근에 있어서 차를 타고 1시간 남짓 가야 했다. 그것도 주말 아침 9시까지. '힘들면 안 해도 돼'라는 남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오기가 생겼다. 새벽 7시에 일어나서 모두가 잠을 자는데 조용히 집을 나섰다. 별이 총총 떠 있으면 더 설렜겠지만 밖은 너무나 밝았다. 그렇게 첫 고속도로도 타고 시속 100km도 달리고 승마장으로 갔다.






첫날엔 오리엔테이션으로 안전교육과 주의사항, 복장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말이 생각보다 겁이 많고 예민하다는 것, 승마는 눈으로 보이는 외적인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승마바지는 쓸데없이 비싸다며 청바지 입고 승마양말 대신에 축구양말이 가성비 좋다는 승마장 사장님의 말에 웃음이 나고 긴장이 풀렸다.


마장에 대한 소개를 듣고 마구간에 가서 말을 실제 보았는데 너무 커서 또 한 번 놀랐다. 당근을 한주먹씩 주며 말과 친해지라고 했다. 나는 '일등'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에게 당근을 주었다. 열심히 먹는 말을 보며 애써 겁먹은 걸 티 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사장님이 시범을 보인 손에 당근 넣고 말이 먹게 하기와 말 만지기는 끝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실제로 말을 타는 날이 왔다. 청바지 위에 축구양말을 신고 목장갑까지 꼈다. 승마장에 비치된 조끼를 입고 모자를 쓰니 그럴듯해 보였다. 그리고 '셋째'라는 말을 탔는데 그래도 한 번 봤다고 말이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중간중간 말이 근육을 떨고 머리를 흔드는데 그건 파리를 쫓거나 긴장을 푸는 거라고 했다. '츗'소리를 내면 말이 걸어가거나 달리고 '워워' 소리를 내면 말이 멈췄다. 발을 구르고 고삐를 당기고 작은 신호에 말이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30분의 승마가 끝나고 허벅지가 아파왔는데 아픔보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다음 날 승마 수업은 '비칸'이라는 말을 탔다. 어제 탄 말보다 더 커서 땅에서 더 높이 올라왔는데 이상하게 무섭지 않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이어진 사장님과의 수업은 스파르타라 힘들었다. 말 타고 걷는 건 그나마 익숙해졌는데 자꾸 달리게 했다. 말이 달리면 엉덩이가 통통 튀겨서 아팠다. 말의 반동을 이용해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자꾸 리듬이 엇나갔다. 너무 힘들어 힘이 빠지니 자연스레 리듬이 맞춰졌다. 내가 생각한 거와 딱 반대 리듬이었다. 내가 말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말의 움직임에 내가 맞추는 것, 그게 시작이었다.


말에서 내려오자마자 어제와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집에서 보니 여기저기 멍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뭔가를 새롭게 배우다는 것이 나를 신나게 하고 말이라는 생명체와의 교감으로 이뤄진다는 게 가슴이 떨리게 했다. 다음 주 승마수업도 기다려진다.





#승마

#말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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