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를 하고 집에 오면 저녁 7시 정도가 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보통 내가 요리를 했었다. 아내는 직장이 멀어 나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기에 내가 저녁을 준비하면 딱 맞았다. 가끔 내가 일찍 도착하거나 아내가 늦는 날이면 저녁을 준비한 후 나 먼저 먹었다. 아내를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내가 배고픈 것에 너무 약했다.
나는 배가 고프면 예민해진다. 평소에 그냥 기분 좋게 넘길 일도 밥때를 놓치면 날카롭게 반응한다. 연애할 때 내가 배고픈 상황에서 몇 번 싸운 적이 있다. 그 뒤로 아내는 내가 배고파하면 나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않는다. 지금 하면 싸울게 뻔하다고 말이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아이의 수면교육을 위해 퇴근하고 집에 가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7시 반쯤 아이를 목욕시키고 수유를 한 후 재우는 거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아이는 7시가 넘으면 졸리다고 칭얼대는 상황이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역시나 아이가 보챈다고 한다.
출산 후 아이의 목욕은 거의 다 내가 시키고 있던 상황이어서 고민이 됐다. 아내에게 목욕을 시키라고 하면 되지만 하루 종일 육아하느라 힘들었던 아내에게 그렇게 말하기 싫었다. 그럼 우선 목욕을 시킨 후에 정리가 되면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아내가 조금 놀란 눈치였다. 괜히 다른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저녁 챙겨 먹은 후에 목욕시키라고 말리기까지 했다.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그전에 얼마나 배고픔에 예민하게 굴었으면 아내가 이런 말을 할까. 아내에게 아기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수면교육이 힘들어지니 우선 저녁 먹기 전에 목욕시키겠다고 다시 얘기했다.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가 문 밖까지 들렸다. 얼른 집에 들어가 목욕시킬 준비를 했다. 수건, 기저귀, 갈아입을 옷, 로션, 등등.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따뜻한 물을 받아 얼른 목욕을 시켰다. 다행히 내가 많이 능숙해져서 아이가 울지 않았다.
아이는 금방 잠들었다. 아내는 내가 목욕을 시키는 사이에 준비했던 저녁을 차려줬다. 여유도 없었을 텐데 저녁 준비까지 했냐고 묻자 아내는 오늘 출산휴가 후 첫 출근인데 따뜻한 저녁을 먹이고 싶었다고 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는 저녁 먹기 전 하루 종일 바나나 한 개와 삶은 계란 세알만 먹었다고 했다. 다이어트 때문이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혼자 하는 육아여서 그런지 밥을 챙겨 먹을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아내는 나보다 더 힘들게 하루 종일 참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회사에서 점심은 든든하게 먹었으니 말이다.
이제 50일이 갓 넘었지만 지난 두 달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엄두도 안 나고 먹고 자는 시간마저 부족하다.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전에 쉽게 누리던 여유와 멀어졌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이 충만한 기분이 든다. 처음 안았을 때보다 아이는 많이 묵직해졌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엄마 아빠 얼굴도 알아보는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