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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석 Sep 26. 2021

'여기 삶이 있으니까' 산다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법

안나푸르나는 자신을 쉽게 허락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첫날은 반나절 산행이어서 그럭저럭 견딜 만 했는데 둘째 날, 셋째 날 지날수록 점점 말이 짧아진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일 뿐이니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고 했는데. 거짓말인가? 계단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설악 울산바위는 유치원 수준이다. 그래도 초반에는 먼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인식하고 나서 정말 이건 아니잖아 싶을 때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온다거나, 혹은 큼직큼직한 계단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욕이 나왔는데, 이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욕을 뱉고 있다. 그래, 말이 뇌세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나온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지. 이렇게 자연스러운 건 군 시절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 와중에 내려오는 사람들 표정 세상 행복...


쉽게 생각했다. 거진 일주일 동안 4,100m를 올랐다 내려가야 하는데 아무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다. 며칠에 걸쳐 아침부터 꼬박 8~9시간 동안 산을 오른다는 게 힘들지 않을 리가 없는데. 지리산 종주까지는 아니어도 설악산 대청봉 정도는 올라가봤어야 했는데. 아니면 남들처럼 하루이틀 더 시간을 내서 천천히 가든가. 안이했다. 나이를 먹으면 좀 배울 줄도 알아야지, 이놈의 철없는 객기란. 그렇다고 항상 이렇게 재지 않고 매사에 덤벼드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몸을 적당히 사려야 할 때는 겁없이 뛰어들고, 정작 과감하게 질러야 할 때는 간만 보고 머리 굴리며 한참 계산하다 흐지부지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이 글러먹은 녀석을 구제할 방법이 과연 있기는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침낭 밖은 위험하다. 진짜 레알 정말루. 이불 밖이 위험하다고 했던가? 침낭 밖에선 비바람이 몰아친다. 어떻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올 수 있을까. 환영인사치고는 지나치다. 하지만 비가 내린다 하여 더디갈 수는 없다. 해가 지기 전에 정해진 거리를 성실하게 나아가야만 하룻밤 쉬어갈 낡은 침대와 쪼그라든 위를 달래줄 저녁밥이 기다리는 산장에 도달할 수 있다. 산에는 제대로 된 비옷도 없어서 네팔 현지인들이 쓰는 로컬비옷에 의존해야만 한다. 말이 좋아 비옷이지 사실상 비닐쪼가리나 마찬가지다. 이미 현지인과 구별하기 어려운 무성한 수염과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런 비닐우비 하나 달랑 걸친 채 산을 오르고 있자니, 이건 뭐 영락없는 네팔리다. 이 정도 되면... 그래, 호연지기다, 히말라야의 호연지기 (사진은 궁금해 하지 마시라).


해발 3천미터를 넘어가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오른다. 저지대 8시간과 고지대 4~5시간 산행의 힘든 정도가 비슷하다. 트레킹을 시작한 지도 사나흘째, 이제 머릿속에서 생각이란 게 사라진다. 언제 정상까지 갔다가 언제 내려가나 싶은 예상조차 사치다. 완전군장으로 행군하다 보면 앞사람 전투화만 보면서 걷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공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숨이 차다고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형편도 못 된다. 앞서 가는 포터의 등산화 뒤축만 노려보며 몇 걸음 나아가다 숨 한 번 헐떡거리고 나면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따위 잊고 (평소 언어습관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바로 욕지거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C...


이렇게 몇 초에 한 번씩 입에 욕을 달고 한참을 걷다 보면, 무념무상의 끝에서 문득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존재론적 물음에 봉착하고야 만다. 나는 왜 히말라야에 왔는가? 나는 왜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있는가? 애초에 히말라야를 정복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대체 왜? 




왜 사는가?


살아오는 내내 묻고 또 물었다. 삶의 의미가 궁금했고, 답을 찾으려 애썼다. 내 생(生)의 목적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누구라도 그러하듯 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를 세우고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모니터 속 가상의 세상에서 퀘스트를 깨고 스킬을 마스터하며 레벨을 올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더 멋지고 더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만 찾아다니며 어렵게도 살았다. 정작 아무도 내게 그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 순간순간에 온 몸과 마음을 갈아넣었다 할 수 있을 만큼 치열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우습기도 하고, 약간은 슬프기도 하며, 어느 정도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그래, 고생 많았어.


몇 번인가는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한 번은 차량이 완벽하게 뒤집어지는 사고도 있었다. 정말 깜빡 졸았는데, 3초나 되었을까, 눈을 뜨는 순간 이미 중앙분리대를 들이박기 직전이었다.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이 또렷하다. 시야가 천천히 뒤집어지더니 180도로 돌아가면서 차가 지붕부터 바닥에 내다꽂히는 장면. 그 순간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고, 사고 현장으로 정신이 돌아오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실제로는 1~2초였겠으나 꽤나 길게 느껴졌던)이 걸렸다. 창문으로 엉금엉금 기어나와 보니 차는 박살이 나 있고 바퀴는 저 멀리 굴러가 있었다. 내 힘으로 차에서 빠져나온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마당이니만큼,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조금 더 허락된 이승에서의 시간에 감사하고 한국사회의 치열한 경쟁에도 겸허한 마음으로 임하며 살아갈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삶을 대하는 나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바꾸기에는 '부족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도 생각은 했다. 이건 두 번째 주어진 삶이나 마찬가지라고. 덤으로 얻은 삶일지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소소한 일상에 대한 감사 대신, 내가 살아남은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나아갔다. 내가 지금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사고에서 이렇게 멀쩡하게 (실제로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고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하루 입원 후 바로 퇴원했다) 생존할 수 있던 건 그만큼 내게 주어진 소임이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나는 그 빌어먹을 '의미'란 걸 찾아 오랫동안 헤매었다. 


그러나 이 넓은 세상에 그런 건 없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만약 중앙분리대가 철조망이 아니라 콘크리트여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크게 충돌했다면, 중앙분리대가 아예 없이 노란 중앙선만 그려져 있어서 마주 오는 차와 그대로 들이박았다면, 전복되어 있는 차량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바로 뒤에 쫓아오던 다른 차가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나와 부딪혔다면, 나는 지금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것이다.




"거기 산이 있으니까"


뉴질랜드의 등산가이자 탐험가로 1953년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 그저 거기 산이 있으니 오른다 했다. 누군가 나에게 왜 굳이 안나푸르나에 올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가보고 싶어서"라 답할 것이다. 히말라야에 한 번쯤은 가봐야지! 이게 전부였다. 정상에 꼭 올라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시작한 것도, 정상에 오르는 그 순간만을 고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뗀 것도 아니었다. 이왕 트레킹을 시작했으니 당연히 베이스캠프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단순히 정상을 '찍고' 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물론 최종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nnapurna Base Camp, 4,130m)에 오르게 되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감격에 젖는다. 그곳에 한두 시간 머문 것만으로도 며칠 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 하여 오르내리는 과정의 가치가 퇴색되는 건 아니다등산을 직선상에 놓인 레이스라고 생각한다면 몰아치는 비바람과 부스럭거리던 침낭과 욕을 뱉으며 나아갔던 그 모든 걸음이 모두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결과'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실제 히말라야의 설산을 바라보던 순간의 나에게 그건 어떤 '성취'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건 '성과'가 아니었고, '목표'를 달성한 것도 아니었다. 나도 히말라야도, 정확히 일대일로 마주 보고 서서, 그 시간과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 '현존'하고 있다는 쾌감과 희열. 그건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산은 거기 있었고, 나 역시 그러했다. 


운도 좋았다.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베이스캠프에서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서너 시간 정도를 머무르지만 눈 덮인 히말라야를 눈 앞에 두고 바라보는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날씨가 허락해줘야 한다. 흐리멍텅한 구름과 자욱한 안개만 보다가 내려와야 하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때로는 하루를 꼬박 묵어도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고 들었다. 만약 정상에 올라 설산을 보는 것만이 트레킹의 목적이자 전부였다면,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 때문에 차 한 잔 마시고 내려와야 했다면, 그 모든 시간은 개고생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산을 오르내리는 그 과정, 그저 자연을 벗삼아 걷는 시간에 의미가 있다. 히말라야는 꼭 정상이 아니더라도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했다. 봉우리마다 걸쳐 있는 구름 위에선 신선이 노닐 것만 같고,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골짜기는 음산함이 아닌 영험한 기운을 내뿜는다. 


그야말로 미친 풍경이라고밖에


어릴 때부터 성적과 결과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나는 오랫동안 목표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마음 한 켠에서는 그렇게 소리친다. 사회가 부여한 관성이 그리 쉽게 허물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편에서 차분하게 토닥이며 진정시키는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의미는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내가 내 삶에 부여할 때 진짜 '목적의식'이란 게 생긴다고


아직 나의 삶에 어떤 선물을 주어야 좋을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예상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계산하며, 있지도 않은 의미를 찾는 일은 그만두려 한다. 어렵고 잘 되지 않지만, 매일 의식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다하려 한다. 안나푸르나의 황홀경은 목표 달성에 따른 성과라기보다는 과정을 지나온 자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보상이었으니까.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 삶이 여기 있으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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