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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석 Apr 21. 2021

회색 공간에 색채를 입히는 것

삶의 시작과 끝에, 그리고 그 사이 모든 순간에 사람이 있다.

4시가 넘으면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던 그 겨울은 혹독했다. 습한 겨울 추위는 쉽게 익숙해질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에도 충분히 껴입기만 하면 그럭저럭 버틸 만 하던 한국과 달리 영상의 기온에도 뼈가 시렸다. '기분 나쁘게 추운' 느낌이라고, 혹시 아실는지 모르겠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패딩을 입어도 별 수 없는 그 불쾌함이란. 하루가 멀다 하고 몰아치는 비바람을 뚫고 학교와 집을 오가며 내 다시는 죽어도 영국에서 겨울을 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던 게 도대체 몇 번이었는지 셀 수 없다.


보통 '해외유학'이라 하면 바다 건너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넓은 세상을 배우고 그 안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뭐가 되었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많이 다르긴 하겠지만 일단 대학원이라면 대개 절반 정도만 맞을 것이고, 하필 '햇살이 비추는 날이면 웃통을 까고 잔디밭에 드러눕는 서양인들의 심정'을 단박에 이해하게 해주는 나라에 머무른다면 다시 그 중 절반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 도시에서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대개 어떻게든 빨리 학위를 마치고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야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 곳에 우리가 꿈꿨던 아름다운 동화는 없으니까.


오늘 날씨 너무 좋다! ... 네? ㅇㅅㅇ


맨체스터(그렇습니다, 바로 그 축구의 성지)는 그런 곳이었다. 대부분 한국 대학원생들은 이 도시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잠깐 거쳐가는' 혹은 '스쳐 지나가는' 장소 정도로 생각했다. 나에게도 학위를 마칠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 내면 다시는 오지 않을, 삶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다 잠시 들렀던 기착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느 날엔가부터 이 곳에서의 일상이 내 삶의 일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껏 그 멀리까지 가놓고서 주변 여행은 커녕 집과 학교를 오가는 생활만 반복했는데 말이다. 동네 마트에 장 보러 갈 마음의 여유조차 없던 생활 속에서 '진짜 맨체스터만 아니면 다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언제나 흐리고 우울한 이 도시가 내 집이자 내가 '사는' 곳이라고? 에이, 말도 안 돼! No way! 


몸은 영국에 마음은 한국에 있다가 비로소 이 곳에 적응하고 마음을 열었던 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해외를 떠도는 몇 년 간 향수병을 앓아본 적이 없으니까. 한국이 딱히 그립지 않았다. 그보다는 한국에서 영국으로 날아오는 동안 영혼을 어딘가에 '떨어뜨리고' 몸만 먼저 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이 도시가 내 삶의 공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건, 어쩌면 집 나간 영혼이 제 몸뚱아리를 찾아 헤맨 힘겨운 여정의 일단락을 알리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느낌이 대관절 무엇이었는지 알아내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위를 마치며 자연스레 잊어버렸던 감각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한 건 맨체스터를 떠나고도 몇 년쯤 더 흐르고 나서였다. 지나고 보니 영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이후에 거쳐간 다른 장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살던 나라와 도시에 대한 감정은 다소 복잡한데, (정확하지 않은 표현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해보자면 "집 같은데 집 같지 않은"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한편으로 그 모든 곳이 집 같았지만, 달리 보면 그 어디도 집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가는 곳은 곧 '삶'의 장소가 되고 단조롭던 일상의 풍경에 조금씩 색이 입혀졌지만, 동시에 이전에 머물렀던 곳의 색채는 천천히 바래져갔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곳에 의미를 불어넣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함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 나의 낯선 시간과 공간에 다양한 색을 칠해주었다. 그리고 그 색을 다시 앗아간 것 역시, 사람이었다. 하나 둘 떠날 때마다 공간은 생기를 잃고 급속히 시들어갔다. 내가 떠났을 때 그 어떤 누군가가 영위하던 일상의 채도 역시 조금은 낮아졌을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서야 알았다. 이 곳은 예전의 그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삶의 시작과 끝에, 그리고 그 사이 모든 순간에 사람이 있다. 사실 멀리 해외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는 늘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지만 그 추억을 함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들여다보면 아무 의미도 남지 않는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장소를 성인이 되어 다시 찾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뒤 동아리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보거나, 친구들과 밤새 떠들던 단골 술집에 홀로 앉아 빈 테이블을 쓸쓸하게 바라보며 혼자 맥주 한 모금 들이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 공간은 그 때 그대로이되 절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다들 어디 갔나요. 그립읍니다.


어찌 보면 내가 머물렀던 모든 곳을 '집'으로 여길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어디에도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영국을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한국에 정서적 안식처로서의 집이, 언제고 내가 꼭 돌아가야만 하는 집이라는 장소가 없었기에 가능했다. 친하게 지내던 형은 형수가 있는 한국을 늘 그리워하고 한시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나는 한국이라는 정상궤도를 벗어난 삶이 싫지 않았지만, 솔직히 형이 부러웠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더 명확하게는 그 공간을 지키고 앉아 그 곳에 색을 입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한국에 돌아온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가끔 여기가 내 집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어릴 적에 내 옆에 있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하나둘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뜸해지는 게 아무리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 해도, 그들의 부재가 불러오는 색채의 상실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밥 한 번이라도 더 같이 먹고, 차 한 잔 더 함께 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 주는 정도겠지. 그리고 다가올 인연을 위한 마음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내 삶의 팔레트를 다시 다채롭게 채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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