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행동, 그리고 책임
누구나 살면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어른' 대접을 받지만, 모두가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예나 지금이나 존경받는 '좋은 어른'을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세대 간 소통이 어려운 시절에는 어른이라는 단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좋은 어른이 갖는 품성은 '잘 들어주는' 게 아닌가 한다. 어린 사람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본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 라떼를 들먹이며 꼰대질을 하기보다는, 그 나이대를 통과하는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경청하며 소통하려 노력하는 어른.
이러한 '윗세대로서 어린 세대를 대하는' 관점에서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지 풀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시각에서 벗어나 '성숙한 개인으로서의' 어른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우선 '어른'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본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처럼, 매일매일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채우고 만들어간다. 나에게 어른이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기꺼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여기서 진정으로 중요한 건 후자인데, 벌어지는 모든 일의 결과와 기회비용을 감당하는 게 실상 우리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란, 먼저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고, 나아가 그 결정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좋은 선택이란 무엇일까? '100%를 추구하지 않는' 선택이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완벽주의를 버리자는 뜻이다. 갈수록 세상에는 많은 선택지가 생기는데 그 모든 옵션을 다 고려하다 보면 결국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게 된다.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어느 정도 생각하고 방향이 잡힌다면 바로 결정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이건 나 자신에게 늘 반복하여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잘 감당한다는 건 무엇인가?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것이 사람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한다. 피하고 싶고, 벗어 던지고 싶고, 가끔은 짓눌려 주저앉고 말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책임이 정말 무겁고 때로는 무서운 이유는 눈에 보이는 결과 자체를 감당하기 쉽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 결과에 내가 선택할 수도 있었던 (그랬다면 지금과는 무언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다른 길의 무게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이란, 가 보지 않은 길이란 그런 것이다. '기회비용'이라는 건조한 경제학 용어에는 하나의 선택을 위해 치러야만 했던 고뇌의 시간과 고민의 깊이가 녹아있지 않다. 이것이 '인생극장' 류의 TV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다. 가지 않았던 길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할 수도 있었으나 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선택을 늘 궁금해하기에.
그렇다고 도망칠 수는 없다. 자유를 원한다 해서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박차고 나설 수는 없다. 도망치는 '선택'에 대한 '책임'이 두렵기 때문이다. 선택을 피할 수 있는 비결이란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조차 엄연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받아들인다는 건 무엇일까? 단순히 현재 상황에 순응하여 이 악물고 버티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채로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여러 요건이 있겠으나 두 가지로 정리해보고 싶다. 첫째는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다 믿고 그 결정에 집중하는 것. 지나온 삶의 여러 변곡점을 떠올리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하는 것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미련을 완전히 떨치긴 어렵다. 사람이니까,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꾸 곱씹거나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면 그 때부터는 삶이 피곤해진다. 아직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현재 삶에 집중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이 선택이 좋은 선택이었음을, 앞으로도 어떤 결정을 하든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올 것임을 믿어야 한다.
두 번째는 선택의 무게를 다른 사람들과 나눠 지는 것. 필요할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고 의지할 줄도 알아야 한다. 부끄러운 게 아니며 독립적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세상의 짐이란 짐은 혼자서 다 떠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 중 일부라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삶은 조금이나마 수월해진다. 살면서 관계 때문에 애먹는 경우가 많다 해도, 막힌 숨을 다시 틔워 주는 것 역시 관계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연결성'이야말로 삶의 정수일지 모른다.
정리해보자. 좋은 어른은 성급하지 않되 질질 끌지도 않으면서 빠른 선택을 한 후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다. 더불어 본인의 결정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힘들 때는 다른 사람과의 유대를 통해 삶의 무게를 줄이면서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보면 나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선택을 잘 하지도 못하고 책임을 감당하는 데도 서툰 면이 많다.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두려워하며 우물쭈물하다 놓친 것들이, 살아오면서 참 많았다. 하여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행동'이라고. 행동하는 선택은 물론 행동하지 '않는' 선택의 결과마저도 내가 오롯이 감수해야만 한다면, 어차피 산다는 게 그런 거라면 저지르는 게 낫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계산하기 전에 바로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감당은 그 다음 순간의 내가 어떻게든 해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