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틀린' 선택이란 없다

인생의 목적지는 바로 '내가' 정하는 거니까

by 의석

문득 찾아온 추억에 한참 젖어 있었다. 직업 덕분에 여행이든 출장이든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가던 되감기 버튼은 유학 가기 전 혼자 훌쩍 떠났던 안동에 이르러서야 속도를 늦췄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지역버스 시간 맞춰 가면서 (무지무지 힘들었음 ㅠㅠ) 도산서원, 하회마을, 월영교 등 여기저기 다녔더랬다. 햇수를 대강 헤아려 보니 그게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사실 그 여행은 꽤나 충동적이었다. 즐겨 보던 잡지에서 안동에 걷기 좋은 길이 있다고 ('예던길'이라고 퇴계 이황이 걸었다 한다) 하는데 기사에 실린 글과 사진에 시쳇말로 완전 '꽂혔다'. 그렇게 떠난 여정이라 안동의 명소 방문이 주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그 길을 한 번 걸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아마도 그 당시 이래저래 머리 아픈 일이 많았어서 혼자 차분하게 걷다 보면 조금이나마 정리가 될까 싶어 그랬던 것 같다.


잘 조성된 산책로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그곳을 걷다 보면 정말 속세와 떨어져 호젓하게 자연과 하나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다만 소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인간의 손길이 너무 닿지 않아서 구간이 길지 않음에도 길을 찾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내가 그래도 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는 편인데도 반도 못 가서 헤매기 시작했다. 앞서 간 누군가가 남겨놓았을지 모를 흔적을 찾아 (당연히 사람도 없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샌가 선비의 마음으로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르고자 했던 호연지기와 점점 멀어지는 ('가까워지는'이 아니다)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긴 어디.jpg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갈대숲을 한창 헤치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자괴감에 빠질 무렵, 왼쪽으로 강가와 연결되는 열린 공간이 나타났다. 와 여기 좀 좋잖아? 뭔가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장소에 온 기분인데? 좀 쉬고 가야겠다 싶어 물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망연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다 무슨 마음이 동했는지 발을 담그고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물수제비를 뜨다 보니 어깨가 빠질 지경이었지만 괜찮았다. 아 여기 너무 좋다, 길이야 찾든 말든.


다녀온 이후에도 가끔 그 여행이 떠오르곤 했는데, 언젠가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물가에 내놓은 애마냥 눌러앉아 쉬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너 지금 빨리 길 찾아야 해, 여기서 대체 뭐 하는 거야?"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삶이라는 길 위에서 한참을 걷다 보면 이 길이 맞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잘못 온 것 같은데? 고민이 시작된다. 계속 갈까? 아니면 돌아갈까? 아까 저쪽으로 갔어야 하는 거 같은데? 음, 아니야, 지금까지 온 게 아깝잖아. 그냥 이리로 계속 가도 괜찮지 않을까? 아 어떻게 하지... 계속 가 말아?


운 좋게 맞는 길일 수도 있고, 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길로 연결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르러 되돌아오기도 하고,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겠지만 주저하다가 그냥 돌아서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모든 선택이 다 '괜찮다'는 것이다. 당연히 옳은 선택이었다면 완전 땡큐다. 다만 이것이 정말 나의 길이 맞는지 확인하기란 쉽지 않고 (그게 가능은 한 건가?), 그 때까지 마음 한 켠에 불안을 계속 간직해야 한다. 어쩌면 그 짓을 평생 해야 할지도 모르지. 반면에 틀리거나 막혔다면? 돌아가면 그만이다 (물론 아프긴 하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고 힘들 뿐이다 (좀 많이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정 힘들면 쉬었다 가면 되잖아.


길은 하나가 아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많고도 다양하다. 어떤 길로 가느냐는 자신의 자유이자 자신이 선택할 일이다. 다시 한 번, 중요한 점은 그 선택에 어떤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내가 어떤 길로 가고 싶느냐만 남는다. 물론 이 자유에는 엄청난 무게와 책임이 따른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자유로운 상태에 있다 한들 그게 꼭 자유롭다고 할 수도 없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자유는 속박"이라는 당의 핵심 강령처럼. 하지만 그 책임, 자기 자신에게 건 그 속박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는 그럴 수 있어야만 한다), 삶의 순간순간에는 옳고 그름이 있다고 느껴질지언정 넓고 길게 봤을 때는 그 어떤 선택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갈림길.jpg 어디로 가도 괜찮아


이것은 궁극적으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뿐 아니라 그 '목적지'를 정하는 것 역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를 가도 괜찮은 것 아닌가. 핵심은 내가 '어디를' 갈 것인가이지, '누구보다, 먼저,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대전을 가려고 고속도로에 들어선 누구도 부산 가는 차와 경쟁하지 않는다. 설령 옆 차가 대전에 간다 해도 그 차와 나의 속도를 비교하면서 달리지도 않고. 내가 대전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의미 있는 건 대전에 간다는 그 자체다. 물론 삶의 속도가 의미를 갖는 순간도 분명 있다. 목적지가 확실할 때. 갈 곳이 정해져 있다면 고속도로 두고 굳이 국도로 갈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도 국도의 정취를 느끼며 슬렁슬렁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가면 되는 거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가다가 중도에 멈춰도 된다는 거다. 길을 떠나고부터 단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도, 한참 가다 보니 문득 여기가 너무 좋을 수도 있다. '사실은 내가 갈 곳은 바로 여기였구나' 싶은 공간, 일, 그리고 사람. 내가 진정으로 이곳이 나의 목적지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지 않겠나. 그러다 또 마음 바뀌면 다시 가보는 거고. 목적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정하는 거니까.


그러니 때때로 물가에 앉아 놀고 싶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보내도 좋다. 그 때 그 곳에 있음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날 그 순간의 나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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