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혼
매년 4월이 되면 전국이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다.
평소 불필요한 외출이 귀찮거나, 매년 똑같은 레퍼토리에 매너리즘을 느낀 사람들도 막상 벚나무가 길게 늘어선 길가를 목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간적으로 마음가짐이 달라지곤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벚나무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포털사이트에 벚나무를 검색하면 원산지가 한국으로 표출되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벚꽃은 어떻게 알고 항상 이맘때쯤 개화하는 것일까?
키포인트는 바로 온도와 일사이다. 생장 상태에 따라 봄에 꽃을 피우기도, 피우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개체에 따른 조건이고, 모든 식물의 공통 조건은 온도와 일사인 것이다.
식물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낮이 길어야 꽃을 피우는 장일식물,
두 번째로 낮이 짧아야 꽃을 피우는 단일식물,
세 번째로 낮의 길이와는 상관없는 중일식물로 나뉜다.
벚꽃은 햇살을 좋아하는 장일 식물에 해당하므로, 어서 지구가 동지점을 지나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점차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잎을 필두로 개체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꽃을 피우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꾸준히 볕을 모아 3월 말~4월 초순 경 꽃망울을 터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평균적으로 앞당겨지고 있다.
개화의 최대 조건인 온도와 일사 중 일사는 지구 공전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이 그 무슨 난리를 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마는, 온도는 그렇지 않다.
서울 기준 벚꽃의 평년 개화일은 4월 8일.
그러나 2022년에는 4월 4일에 꽃이 피었고, 그전에는 3월에 피운 해도 있었다. 올해는 4월 2~3일 정도로 예상된다고 하니 확실히 빨라졌다.
민간기상업체 케이웨더에 따르면,
벚꽃 개화일은 표준목의 경우 벚나무 한 그루 중 세 송이 이상이 완전히 피었을 때, 군락지의 경우 군락지를 대표하는 1~7그루의 나무에서 한 가지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피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또한 벚꽃의 절정 시기는 개화 후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전후로 비 오는 날도 함께 잘 고려하여 한치의 아쉬움 없는 나들이가 될 수 있도록 스마트한 상춘객이 되도록 해보자.
개인적으로 벚꽃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벚나무의 씨앗인 버찌씨.
어렸을 때 수필 자료로 국어책에 실렸던 '이해의 선물'에서 주인공 어린아이가 사탕을 사기 위해 버찌씨를 주인에게 내미는 모습이 아직도 인상 깊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왜 잊히지 않는 것일까 문득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작가의 진심만큼은 그대로 전달되어서이지 않을까.
외적인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느낌과 교감이 중요한 거니까.
당신이 지금 벚꽃길을 걷고 있거나 창가에 앉아 벚꽃 잎이 흩날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을 밑그림으로 아래의 ‘이해의 선물'을 덧칠해 보는 건 어떨까.
분명 벚꽃의 꽃말인 아름다운 영혼의 발자취를 비로소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사탕을 먹고 싶어서 큰 마음을 먹고 엄마 몰래 혼자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찾아가기로 했다. 꽤 많은 물건을 고르고 난 뒤, 위그든 씨가 "너 이만한 양을 살 돈은 가지고 왔니?"라고 묻자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주먹을 내밀고 그 안에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은박지로 싼 버찌씨를 5개를 위그든 씨의 손에 떨어뜨렸다. 위그든 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돈이 조금 남는구나. 거슬러 주어야겠다" 라며 2센트를 주었다. (그날 나는 사탕가게에 혼자 간 것에 대해 어머니에게 매우 혼났지만, 이후로 어머니가 사탕 살 돈을 매번 주면서 돈의 개념을 확실히 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관상용 어류 가게를 개업한 '나'에게, 어떤 꼬마 남자애가 누이동생과 함께 찾아왔다. 30달러어치는 될 만큼 이것저것 물고기들을 고른 아이들이 자신의 앞에 소중하게 간직했던 5센트짜리 백동화 두 개와 10센트짜리 은화 하나를 떨어뜨렸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위그든 씨에게 어떤 어려움을 안겨 주었는지, 그리고 그가 얼마나 멋지게 그 어려움을 해결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옛날 위그든 씨가 그랬듯이 똑같이 아이들에게 2센트를 거슬러 주고, 가게를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가 "물고기를 얼마에 줬는지 알기나 해요? 무슨 일인지 설명해 보세요."라고 이해하지 못하자 "한... 30달러어치는 줬지.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대답하며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위그든 씨의 이야기를 해줬고 어느덧 아내의 눈시울은 젖어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날의 박하사탕 향기가 잊히지 않아."라고 대답하며 기억 속 위그든 씨의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 The Gift of Understanding by Paul Villi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