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꼭 해야 돼?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 (5)
월급 안 주는 인턴도 해봤다
올해 6월에 대기업 대외활동을 끝냈고,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여러 프레젠테이션 발표와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활동에 탄력이 붙은 상태였다. 방학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안돼서, 어느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방학 내 한 달 동안 하게 되었다.
학교를 통해 진행되는 인턴십이었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기업 또는 기관을 소개해주고, 채용을 주선해주면서, 관리감독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 인턴십을 수행하면 학점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교통비, 식비 정도 되는 금액의 지원금을 해당 기업이나 기관 또는 학교를 통해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나는 한 푼도 받지 못했었다. 인턴을 한 기관에서는 내부 사정 때문에 지원금을 줄 수 없다고 했고, 학교에서는 교칙에 따라서 줄 수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정말 없었다. 지원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나중에 물어보니까 채용 인원과 지원 인원이 같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경쟁률 1:1.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가릴 만한 처지는 아니었다. 이전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돈 쓸 일이 없어서 돈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대신 학점은 필요했다. 막 학기에 수업을 최대한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경험이나 경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회경험 또는 경력이었다.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취업 때문이기도 했었다. 게다가 따로 면접을 볼 필요가 없었다. 가진 게 없어 절실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지원했다. 동시에, 다른 공공기관에도 인턴과 알바를 지원했다. 원래 목표는 여러 군데에 지원해서, 최종 합격한 곳을 선택하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택은 무슨. 되면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인턴이나 알바는 다 떨어졌다. 경쟁률이 1:1이어서 어차피 붙을 수밖에 없었던 그 공공기관에서 결국 인턴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막내의 미덕
이전에 봉사활동을 여러 번 했었기에 그런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서 인턴을 하기 전에 다행히도, 제어할 수 없는 불안에 휩쓸리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팀 프로젝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기업 대외활동과 직장생활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직장에서는 상황과 상사의 기분에 따라 말과 행동을 눈치껏 잘해야 하고, 조직원 간 서열과 이해관계에 따라 흘러가는 역학관계를 예민하게 캐치하고 이에 적합하게 처신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적당히 내비치면서, 알게 모르게 퍼지는 본인에 대한 소문을 적당히 쌩(?) 깔 줄 아는 뻔뻔함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타인의 말과 행동, 심지어 표정에도 일희일비하는 나로서는 인턴생활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없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위축되었고, 걱정을 되게 많이 했었다.
공공기관은 보수적인 곳이라고 원래부터 외부에 알려진 만큼, 머릿속에서는 고리타분하고 부조리가 넘치는 보수적인 조직이 상상되었다. 강요하고 강제하는 것이 은근히 많은 조직.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이 서슴없이 오가는 공간. 그 안에서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참고 버티면서 지내는 직장인들. 그들 중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있었다. 인턴십하는 기관이 제발 상상 속 직장이 아니길 바랐다. 직장 내 인간관계와 조직문화에 문제없이 적응하며 인턴생활을 하고 싶었었다. 뒤에서 욕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석에서 나에 관해 직원들끼리 "걔? 괜찮은 애야."라고 말했으면 했다. 그렇게 무난하고 사회성 좋은 '회색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도 직장생활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사람들과 한 조직 내에서 잘 어울릴 수 있는 둥글둥글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인턴십이 시작되고 사무실에 앉아 있게 되면서,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행여나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매일 긴장했고, 그래서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러다 보니 행동도 조심스러워졌다. 사무실이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꺼려졌다. 게다가 대부분의 직원들이 조용히 앉아서 가만히 근무하였기에 나도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인턴이어서 그런지, 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할 게 없어서 눈치를 엄청 봤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뻘쭘하게 그냥 앉아있을 뿐이었다. 눈치를 너무 보다 보니 몸이 늘 경직되었고, 항상 속이 더부룩했던 것 같다. 조직 내에 속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여전히 다분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웠지만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했다. 타인의 시선과 생각에 대해 둔감해질 필요가 절실하게 있었다.
공공기관답게 조직문화가 보수적이기는 했다. 사무실은 전반적으로 경직된 분위기였다. 분명하고 굳센 성격의 부서장은 리더십이 있기는 했지만 부하직원들의 존중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혼내든, 지적을 하든 직설적으로 단호하게 말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직원들이 상처를 받고 있었다. 사무실 내에 울려 퍼지는 부서장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직원들은 몰래 귀를 닫곤 했다. 화법과 성격에 대해 불만이 많은지, 부하직원들은 사석에서 늘 부서장의 험담을 했다. 직원들끼리는 대체로 부드럽게 지내려고 하는 듯보였지만, 보이지 않게 권위주의가 잔존하고 있었다. 몇몇 선배들은 후배들이 눈치가 어느 정도 있기를 바라는 듯했다. 특히 튀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는 맞지 않는 말을 눈치 없게 한다든가, 개성 있는 성격이어서 활발하고 점잖치 않으면 혼내서라도 기를 죽이려고 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린놈이 나대는 꼴을 보기 싫어했다. 높은 직위의 간부들은 부하직원들이 눈치가 빠릿빠릿하면서 일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해내기를 바랐다. 연차가 좀 있는 평사원들은 후배들이 조용하고 예의 있으면서 순종적이기를 바라는 듯했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전형적으로 보수적이었다.
그래도, 최근에 젊은 직원들이 많이 채용되면서 조직문화가 점진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워라벨을 강조하면서 공정 사회를 지향하다 보니, 기관도 자연스럽게 그 추세를 따라가는 듯했다. 외부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시키는 사람이 있어서 억지로 바꾸는 느낌이 강했다. 비자발적인 야근보다는 자발적인 야근이 더 많았다. 물론 6시 땡 하면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30분~1시간은 더 앉아있다가 다들 퇴근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높으신 분들이 야근을 자주 강요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본인의 일이 좀 많을 경우, 다들 알아서 야근하거나 주말에 출근하는 것 같았다. 의외로 회식은 별로 안 했다. 정말 필요하고, 할 만하다 싶은 회식만 저녁에 가끔 하는 것 같았다.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싶은 회식은 점심때 하거나 아예 하지 않았다. 게다가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에는 술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가 정착되었다고 했다. 대신 음식 강요는 조금 남아있는 듯했다. 나도 한 번 배부른데도 억지로 먹어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직원이 했던 말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사회생활 미리 한다고 생각하고, 아까우니까 그냥 먹어"
이러한 다소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 인턴이 안정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막내'라는 위치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막내들이 하는 일'을 '눈치껏'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조직이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 가장 약자인 '막내'에게 어떻게 대하냐를 살펴보면 된다. 대개 보수적인 조직에서는 다른 직원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막내들이 눈치껏 하기를 원한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귀찮게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해주는 사람을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인턴십을 했던 곳도 막내들이 허드렛일을 하길 바라는 곳이었다. 눈치를 잘 보기 위해서는 공감능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막내들이 하는 일'이 뭔지 알기 위해서 내가 직원이라면 어떤 일들을 하기 싫어할까 분석해봤다. '인간은 가만히 있고 싶어 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니, 귀찮은 일, 몸 쓰는 일, 높으신 분을 쓸데없이 만나야 되는 일 등 하기 싫어할 만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 방문객들을 응대하고 커피나 차를 타서 드리는 일, 식사할 때 수저 놓고 물컵 놓는 일 등이 해당될 것이다. 이런 번거로운 일들을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항상 눈치를 보며, 때로는 나도 모르게, 소위 '막내들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다. 그래서 난 눈치 있는 인턴이 될 수 있었다. 직원들의 언짢은 표정을 볼 필요가 없었고, 듣기 싫은 말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기를 다들 원했다는 것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떤 직원이 나에게 "넌 이런 일(막내가 할 일)을 알아서 참 잘하는 것 같아. 예전에 인턴 했던 애들은 가만히 앉아있으라고 했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있더라."라고 말했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깨달았다. 역시 이 사람들도 눈치 있는 막내를 원하고 있었구나.
내가 우선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인턴십은 괜찮게 이루어졌다. 조직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결국 두루뭉술한 "회색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직원들과 그럭저럭 잘 지냈으며, 특별히 혼난 일 없이 조용히 인턴십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약 조직 내에서 적응하지 못했다면, 아마 직장생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계속 짊어지고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먹고살기 위해 취업을 해야 하는데, 직장생활 하나 적응 못해서 사람한테 상처 받고 금방 그만둬버리면 어떡하나' 등의 고민을 끝없이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직에 잘 적응해볼 수 있었고, 나중에 나도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조금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의 감옥에 나를 가둬놓을 필요 없이, 앞으로 직장 내에서 내가 생각하는 대로 타인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되겠다고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긴장할 필요가 없고, 너무 힘을 줄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섯 번째 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하지만, 직장생활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아닌가 반문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이 내가 온 힘을 다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회의감이 생겼다. 내 눈에는 직장인들의 인생에는 타인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든지 늘 사무실에선 눈치를 보기 바빴다. 상사에게 보고를 할 때마다 혼나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들으면 하루 종일 이를 갈기도 했다. 점심을 혼자 먹고 싶지만, 주변 동료들과 상사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애라고 욕할까 봐 욕구를 꿀꺽 삼켜버리고 만다. 후배들이 행여나 꼰대라는 소리를 할까 봐, 상급자는 점심을 혼자 먹고, 회식을 줄이고, 말수를 줄이면서, 접촉을 줄인다. 막내들은 막내들이 하는 일이 있지는 않은지 앉은자리에서 두리번거리기 바쁘다. 자칫 놓치기라도 하면 따로 불려 가서 쓴소리를 들어야 하니까.
모두가 타인만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직장 내에 있는 순간, 자신에 대한 생각은 접어둔다. 그리고는 타인을 위한 업무를 하고, 타인을 위해 눈치를 본다. 말과 행동은 항상 타인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다. 타인을 위한 일정 시간들을 보내면,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 월급만이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타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에게 다가갈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소수의 사람과 한 그룹으로 무리 지어 어울리는 연습을 했고, 조직의 일원이 되어 무난하게 적응하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이 모든 노력들은 타인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다.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타인에 초점을 두었고, 타인이 중심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 '나'는 없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벗어나면서 나 자신을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 대신, 타인이 어떤 말을 듣길 원할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타인이 좋아할까를 항상 고민하게 되었다.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난 후에 마주치게 될 삶이 직장생활이라면, 나는 언제 진정 나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타인과 함께하는 조화로운 삶을 바랐지, 타인에 몰두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장생활이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다른 길이 있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싶어 졌다. 직장생활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아직은 젊으니까, 아직은 기회가 많으니까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취업준비 말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다른 길을 한 번 갔다가 후회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충분한 시간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학 동안의 무난했던 인턴생활을 끝내고, 나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