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가 과연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계기 (2)

by 빨간모자

연애 단념자 내 친구

타인을 만나지 않는다고 해도, 가끔 몇 달에 한 번씩 친구를 만나긴 했었다. 학교 동창이었던 터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들은 만날 때 불안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각을 공유하곤 한다. 최근에도 한 친구와 만났었다.


늘 가던 영화관에서 보기로 했었다. 입구는 건물의 조금 안쪽에 있었고, 입구 앞으로는 천장만 있는 뻥 뚫린 넓은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몇몇 카페가 있고, 그 앞에 테이블과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다. 친구는 한 테이블에 커피를 놓고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덧 사람 구경할 나이가 된 건가 싶어서였다.


카페 앞 테이블에서는 건물 밖의 길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과 영화관 입구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말이라 유동인구가 참 많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동네라서 커플들이 많았다. 친구는 커플들을 특히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난 친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 : 뭐하냐.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면서?
친구 : 사람 구경하지. 의외로 재미있어
나 : 평소에도 여기 자주 다니잖아. 매번 사람 구경해?
친구 : 응. 돌아다니다가 요 앞에서 커피 한 잔 사 가지고 앉아서 구경해.
나 : 왜 구경하는 거야? 그냥?


친구는 예상외의 다른 말도 했었다. 내가 평소에 했던 생각과 참 비슷했다.


그냥 재미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 보면서 저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고. 또 커플들 보면서 '저런 사람도 여자 친구가 있는데 왜 나는 없나'하는 생각도 하고.


연애를 못해서 불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친구의 말에 살짝 당황했지만 공감이 됐다. 호기심이 갑자기 생겼다. 더 깊게 물어보고 싶었다.


나 : 아 진짜? 그런 생각도 해? 주변 친구들한테 소개 좀 시켜달라고 부탁해보지.
친구 : 소개해줄 사람이 누가 있냐. 친구가 10명 있다고 하면, 8명은 모태솔로고 2명은 여자 친구가 있어도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회계사 시험 준비해서 바쁜데?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어.
나 : 여자 친구 있는 애한테 부탁 한 번 해보지..
친구 : 예전에 한 번 소개해준다고 해서 만날 수 있나 했더니, 만나기도 전에 상대방한테 거절당했어. 그리고 모태솔로를 누가 만나주겠냐.


참 슬픈 대화였다. 취업 시장에 구직 단념자가 있다면, 연애 시장에는 연애 단념자가 있달까. 그 친구는 모태솔로이면서 연애 단념자였다. 단념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소개팅을 주선할 사람이 없어서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고, 모태솔로를 만나줄 사람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해서. 그 친구는 자신감이 많이 낮은 상태였다. 겉으로는 연애를 포기한 것처럼 말해도, 내 눈에는 강한 욕구를 애써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쟤도 연애하는데 나라고 못해?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할 때까지는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았다. 친구와 나는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다. 나도 모태솔로이고, 소개팅을 주선해 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 내 주변인들 대다수도 모태솔로이거나 솔로이다. 이성과는 담을 쌓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더해, 내 마음속 감정의 감옥 때문에 더더욱 연애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로는 소개팅 한 번 주선해주지 않는 친구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모태솔로라는 신분(?) 때문에 소개팅에 나가는 것조차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부탁하기가 더 어색했다.


그러다가 여자 친구가 갑자기 생긴 극소수의 주변인들을 보게 되었다.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매력적인 것도 아닌 평범한 쟤네들은 왜 연애를 하냐는 의문을 끝없이 머릿속에서 되풀이했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원래 알던 친구와 연인이 된 사람도 있었고, 대외활동을 하다가 만난 누군가와 연인이 된 사람도 있었다. 왜 나에겐 그런 인연이 찾아오지 않는지 늘 원망했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왜 연애를 할 수 있는지, 나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내가 뭐가 모자라기에 연애를 못하는지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외모가 부족한지, 성격이 모가 난 건지 등 부족한 점을 찾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애초에 찾을 수 없는 것을 계속 찾다 보니 지치기만 했다. 내가 못나 보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정확한 답을 하나 찾았다. 연애를 하는 주변인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바로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사소한 일이든 거창한 일이든, 알바든 대외활동이든 그들은 누군가와 어울렸다. 얼굴을 맞대고 프로젝트나 봉사 등 무언가를 함께 했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새로운 인연이 이어질 수 있는 법. 일단 누군가를 만나야 인연이 이어지든지 말든지 하는 건데.. 이 간단한 진리를 난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두려워했으니까. 이렇게 인간의 감정이 참 편파적이고 단순하다.


그렇게, 연애하고 싶어서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취업하기 위해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결심과는 다르게 이것은 긴 시간에 걸쳐 은근하게 다가왔다. 취업에 대한 불안감은 외부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이었다. 취업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선 해야만 했었다.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에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한 건 아니었다. 의무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 결심을 한 것이었다.


반대로, 연애는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연애하는 주변인들을 관찰하면서 내 진심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언젠간 연애를 해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희망과 이제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깊은 내면 속 희미한 바람이 존재했다. 무의식 속에서 자리 잡고 있던 순수한 마음을 마주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지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덩달아 나타났다. 새로운 인연을 찾고 싶어 졌다.


감정의 감옥을 열어젖힐 때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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