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발동되기는커녕, 얼떨결에 맞닥뜨린 해괴한 네이밍에 정수리마저 얼얼한 독자님들은 잠시만 흥분을 가라앉혀 주시길. 해명은 조금 이따 할 테니까요.
이 프로젝트는 보름 작가님의 글, ‘하루 20분, 같이 기록하실 분 있나요?’로부터 시작되었다. 요컨대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정해 하루에 20분씩 실천하고, 그 여정을 글로 남기는 과업을 시작하신단다. 그리고 이 멋진 여정에 동행하고 싶은 작가를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한 달간 매일 꾸준히 어떤 행위를 하고, 이를 기록하며, 함께 (서로 감시)하는 그런 작업.
스스로의 약속마저도 ‘나 몰라라’하는, 나같이 무책임한 이에게는 제법 구미가 당길만한 제안이었다. 특히나 존경하는 보름 작가님의 팔딱팔딱하고 신선한 아이디어였기에 자동반사로 무작정 손을 들어 버렸다. 무려 구독자 ‘9072’에 빛나는 보름 작가님의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어 보겠다는 발칙한 심산이 없진 않았지만.
시작하기에 앞서, 일단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그래, 나는 천성적으로 무책임하면서도, 요즘 들어서는 매사에 뜨거운 열정마저 사그라졌다. 그래서 대체 뭘 실천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덜떨어진 두뇌의 뉴런과 시냅스를 쥐어짜며 벽에다가 머리를 콩콩 찧고 있으니, 떠오르는 생각. 아이러니하게도 무책임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이미 자원해서 손을 든 마당이니,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삼천포를 헤매기로 했다. 다시 말해, 그냥 걷기로 한 것이다. 몸과 마음을 떠받치는 든든한 두 기둥인 다리에 의지해, 고요하고 아득하게 산책을 해 보려 한다. 하루에 20분이라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이동으로서의 걸음이 아닌, 발길 가는 대로의 자유로운 걸음. 그래 이걸 해 보자.
마침 스쳐가며 동네에 흔한 ‘족발’ 집 간판을 보게 되었는데, 문득 이'족발'이란 말의 어원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족’이라고 하면 발 족(足) 자를 쓸 테고, 그러면 대체 ‘발’은 뭐지. '역전앞'과 같은 단순히 동의미어의 반복일까, 아니면 어떤 심오하고도 난해한 뜻이 숨겨져 있을까.
황당하지만, 이런 연유로‘족발탐정기’라는 어처구니없는 타이틀이 탄생하게 됐다.
足 발 족
발 (그냥) 발
探 찾을 탐
靜 고요할 정
記 기록할 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여정의 기록'
그래서 하루에 20분 동안 걷고, 보고, 느끼고, 듣고, (냄새) 맡는 날것의 경험을 차근차근 기록해 나갈 계획이다. 장엄한 프로젝트를 위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노트 한 권까지 새로 장만했다. 이는 두 발로 걷는 물리적인 일을, 온전히 손으로 옮기는 육체적인 일로 치환하기 위함이다. 어찌 보면 가장 아날로그적인 걸음이란 행위를,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적인 연필과 노트로 남기고자 하는 의지라 보셔도 무방하다. 앞으로 3~4일간의 일기를 한 편의 글로 연재할 예정이다.
때로는 현실, 때로는 망상, 때로는 실제, 그리고 때로는 상상의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사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수한 삼천포를 헤맬 거라는 점이다. 산책이란 원래 얽매인 데 없이, 목적도 없이, 발이 닿는 대로 가는 거니까. 그런 무용의 미학을 실천하는 즉흥적인 산책과 같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즉, 방향성 상실 선언!).
벌써부터 삼천포를 헤맨 듯한 반쯤 넋 나간 헛소리를 늘어놓다 보니, 오늘 걸었던 산책 얘기는 영영 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시진 마시길. 그대도 이미 나와 함께 벌써 삼천포에 빠져버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