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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l 06. 2019

[산책 3~6일]
타인을 알아간다는 것

하루 20분 나는 한다.

   

   足 발 족

   발 (그냥) 발

   探 찾을 탐

   靜 고요할 정

   記 기록할 기.


   이름하여 ‘족발탐정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의 연재 글입니다.







2019. 7. 3.(수)



   산책을 하지 못한 날이 되었다.

   우려하던 일이 이렇게나 빨리 벌어져, 작심이일(二日) 되니 심히 애석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캠프의 일정이 예상외로 상당히 빡세다.



   내일은 반드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려 한다. 그래도 의지는 식지 않아, 다행이지 싶다.



   찔리는 구석이 많은, 세 번째 날이다.





2019. 7. 4.(목)



   나만큼이나 고독한 한 남자와 길을 걸었다.



   여기는 전라남도 나주. 석박사생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오해가 있을까 싶어 강조하지만 '캠핑'이 아니다).



   버거운 일정에, 대부분의 학생이 고단함을 느낀다. 특히 난해하고 심오한 조별 과제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지난밤에도 최종 발표를 준비하고자 늦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럼에도, 오늘마저 산책을 거르긴 싫었다. 보름 작가님의 목소리는 당분간 듣지 않기로 하자. AM 6:50. 알람에 눈을 떴다. 나주에서는 예상치 못한 ‘막내의 습격’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마음먹었던 대로 길을 나선다.



   K군과 동행했다. 같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동료다. 지금껏 어느 정도 교류는 있었지만, 아주 가깝다고까지 할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침 산책을 함께 하겠느냐 물어보니, 선뜻 그러겠다고 해서 긴급하게 남성 산책 듀오가 결성되었다. AM 7:00, 고독한 두 남자의 산책이 시작됐다.



   우리 앞에 쭉 뻗은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어가고 있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천천히 차분하게 걷는 것이 산책이라면, 타인을 진정으로 알아간다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의뭉스런 꿍꿍이로 그를 캐야 할 목적 없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고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낯선 분위기, 낯선 냄새, 낯선 풍경을 지고 낯선이와 걸었던 이 산책길이 잔잔하게 마음에 남을 것 같다. 타인과 발을 맞추며 걷는 공동의 기억을 가슴속에 새겼다. 그 와중에도 아주 정중히 내 브런치를 소개하고 구독자 한 명 늘렸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업에 성공했던 <족발탐정기>가장 의미 있고 성공적인 네 번째 날로 기억될 것이다.



   내일의 산책은 어찌 될지, 이직 확신할 수 없다.




2019. 7. 5.(금)



   PM 11:59. 하루가 꼴딱 넘어가려는 지금, 오늘은 10분밖에 산책을 하지 못했을 솔직히 고백한다.



   캠프의 일정이 오늘로서 모두 마무리됐다. 어제처럼 아침 일찍 나서 산책을 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굳이 이유를 말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대놓고 불성실한 사람이라 낙인찍히는 건 또 싫으니, 변명이라도 해보자. 2박 3일 일정의 결과물로 조별 과제 발표와 평가가 남았고, 우리 조 발표자는 어쩌다 보니 바로 나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발표 준비를 했기에 산책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결국 모든 조를 통틀어서 1등을 해, 상품으로 카카오 스피커를 받았다. 발표자의 역량은 대단히 부족했지만, 조원들의 노고가 응집된 콘텐츠가 훌륭했다는 겸손은 꼭 떨어야겠다).



   저녁이 되어 부산에 도착했다. 아내와 식사하고, 화제의 영화 ‘기생충’보고자 극장을 찾았다. 몇 주 전부터 ‘기생충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손에 별 저항 없이 이끌려 관람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이라 나도 매우 궁금했다. 집에 도착하니, PM 11:40. 짐을 정리하고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서니 PM 11:48.



   속이 메스껍고, 구역질이 나온다.

   ‘기생충’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은 훌륭한 영화였다. 섬뜩하고 냉정한 가공의 현실이, 칠흑 같은 밤 산책길에 계속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음이 동요되었던 짧은 산책이었다.



   다섯 번째 날이다.

 



2019. 7. 6.(토)

     


   부산은 나주보다 한결 시원하다. 바람 덕분이다.

   세찬 바람에 가녀린 몸이 날아갈 뻔한 아침 산책길이었다.



   AM 8:00. 매번 늦잠을 주무시는 여느 주말과 달리, 아내는 스스로 일어나 ‘기생충’ 해석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다. 나는 전날 밤의 거북함이 아직 가시지 않아, 침대에서 마냥 뒹굴거릴 수 없었다. 고독한 산책을 떠날 완벽한 타이밍이다. 고독한 산책러답게 뒤도 안 돌아보고, 바람과 같이 홀연히 집을 나섰다.



   바람을 느끼는 것은 산책의 묘미 중 하나다.



   오늘은 피부에 닿는 바람보다 그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유난히 바람이 거셌던 아침이라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주먹만 한 공기가 귀 옆에서 묵직하게 터지는 소리,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나무의 수많은 잎사귀를 건드리는 소리, 예리한 공기가 허공을 날카롭게 베는 소리.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걷다 보니 정신이 정갈해지고, 마음의 준비는 완벽히 끝났다.



   20분의 산책을 끝내고 귀소본능에 이끌려 포근한 침대로 다시 쏙 하고 들어갔다. 아내 옆에 새초롬하게 누워 그녀와 함께 ‘기생충’ 해석 영상을 봤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들은, 몇 번을 읽어도 이상한 일기임이 확실해 보인다.



   부디 내일은 이 정도로 이상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여섯 번째 날이다.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에는 몇몇의 작가님들께서 스스로에게 건 특별한 약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 )

Illustrated by 방울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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