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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무라면 Jul 02. 2019

[산책 2일]
작심일일은 너무 심하잖아

하루 20분 나는 한다.

  

   발 족

   (그냥)

   찾을 탐

   고요할 정

   기록할 기.


   이름하여 족발탐정기.


   두 발로 걸으며 고요함을 찾는 산책의 기록.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의 연재 글입니다.







   2019. 7. 2. (화)   



   하마터면 작심일일(一日)이 될 뻔했다.



   아침 5시 58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번뜩 잠에서 깼다. 새로 맞이하는 하루를 축복한다는 듯한 아름다운 지저귐이었고, 나는 상쾌한 마음으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아침 산책을 나가려는 찰나,



   우리 집 강아지 막내가 선전포고도 없이 내 침대를 습격했다(어젯밤은 강아지가 있는 서울 본가에서 묵었다).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지만 녀석이 느닷없이 내 잠자리를 덮쳐, 갑자기 쌔근쌔근 곯아떨어지니 가뜩이나 여린 마음이 솜이불처럼 보드라워졌다. 아시다시피, 고운 심성의 소유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잔인하게 내팽개치고 내 갈 길을 떠날 자신이 없었다.



   1차 산책의 진군 시도는 무력하게 실패.



   20여분 동안 침대에서 막내를 쓰다듬으며 세상 다 잊은 듯 잔뜩 뒹굴뒹굴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매일 침대에서 뒹굴기 20을 할 걸 그랬다는 막심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던 중, 갑자기 막내가 벌떡 일어나 부르르 몸을 털더니 어디론가 줄행랑을 쳤다. 이제야말로 마음을 다잡고 정말 산책을 준비하려는 찰나, 엄마가 깨셨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시는 당신께, 지금 당장 길을 나서야 합니다, 제 운명이 그렇게 정해졌는 걸요!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어처구니없지만, 그렇게 2차 산책의 진군 시도도 무참하게 실패.



   허무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아릇한 해무와 같이 몰려왔다. 동시에 귓가에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이 매거진의 수장, 보름 작가님이었다. 고무라면님~ 이제 겨우 이틀 차예요. 이렇게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하셔야죠~~~^^” 비록 그분의 음성을 직접 들은 적은 없으나, 참으로 다정다감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오후 6:30. 저녁을 먹고 기어이 산책의 진군에 성공했다. 일단 길을 나섰으니, 작심일일로 끝나지 않아 참말로 다행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고소한 커피 향이 코끝을 살짝 건드렸다, 이내 뿌옇게 사라진다. 내 유년의 추억이 눅눅히 배인 놀이터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아무런 근심 없이 행복하게 놀고 있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나조차 해맑아짐을 느끼며 경쾌하게 걷는다.



   그런데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이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뒷산 산책로에 진입하고자 닫힌 철문을 여는 순간,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안내문을 보게 된다. 들개, 멧돼지 조심. 그 시점부터 나는 티라노와 랩터가 우글거리는 쥬라기 공원 철장 안으로 들어가는 심정이었다. 혹시나 모르니 생존을 위해 비상벨 위치도 꼼꼼히 기억해야 한다. 수풀에서 사사삭 하는 소리만 들려도 움찔거렸으니, 애초에 목표했던 고요함과는 거리가 먼 산책길이 되어버렸다.



   잔뜩 긴장한 채로 홀로 산책을 즐긴다. 훗날 무책임한 산책 선언을 하게 될 고독한 사나이를 위해 누군가가 닦아 놓은 길은 쓸쓸했다. 맨발에 쓰레빠를 신고 내딛는 나의 두발을 내려다보니, 더 큰 쓸쓸함이 밀려온다. 꽃들도 나의 싸한 고독감을 외면하는 것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녁에도 새들은 지저귀고 있었고, 분명 아침과 같이 맑고 아름다웠으나 왠지 모르게 나의 고독함을 놀리는 것만 같아 더욱더 적적해졌다. 다행히 들개와 멧돼지를 마주치지는 않았다.



   막상 본격적으로 산책 일기를 쓰고 보니, 한심한 퀄리티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초등학교 이후 18년 만에 일기라는 걸 써본 결과, 하도 엉성해서 나마저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에세이와 일기는 너무나 다르구나. 이 연재는 이상한 글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농후해진다.



   그래도 산책은 계속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또다시 상상 속에서 보름 작가님의 격려를 들으면, 양심의 가책이 매우 심해질 것 같다.



   두 번째 날이다.


제가 좀 많이 악필입니다ㅜㅠㅋㅋㅋ






* 제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캠프에 참여하게 되어 7/3-7/5는 산책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동매거진] 하루 20분 나는 한다.'에는 몇몇의 작가님들께서 스스로에게 건 특별한 약속을 이행하고 계십니다. 매거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Illustrated by 방울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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