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때문에 여행을 다녔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든 짧은 회사 생활을 하든, 20대 때는 일단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그 즉시 비행기표부터 샀다. 그런 게 없을 때는 여행 후기 공모전(?)에 도전해서 소소한 상금이나 상품도 받아보면서 갖은 방법을 동원해 여행을 다녔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세상을 부유해 본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 좋은 나머지..그야말로 여행에 사로잡힌 20대였달까. 과거에 내가 뭘 하고 다녔는지는 여기 이 브런치 공간에도 꽤 많이 남아있다. 지금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글, 영화, 여행, 사진,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내가 어디로나 사라질까 봐? 어림도 없다.
사람 인생에 버릴 경험은 없다.
예의 그 돈만 쓸 줄 알았을 때의 밝았던 나는 무휴직 6년 차 공무원으로 성격은 풍파에 깎이고 깎여 이제는 회색빛 짙은 돌멩이 같은 것이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대한 후회는 일절 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숨 막히는 일상에서 지금도 나를 잃지 않게 붙잡아주는.. 이렇게 하나의 돌파구로 기능하고 있지 않나.
글에 담기지 않는 어떤 감정은 사진밖에는 그 방법이 없다. 돌이켜 보면 거리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누군가, 또는 가장 가까운 이에게 투영한 나의 그 찰나의 감정이, 그게 바로 사진으로 남아 영원으로 귀속된다.
사진 인스타를 운영하는 중이다.
시험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사진 계정을 하나 개설했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며 찍은 수많은 사진들을 하나둘씩 게시하기 시작했다.
박완서 선생님이 그러셨던가.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다고. 내게는 마침내 차오른 순간이 그때였다.
처음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사진을 봐준다는 게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그렇게 6년을 운영하다 보니 이제는 제법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요, 사실 하나의 직업에는 다 담기지 않는 이런 모습도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주장하고 싶어서 꿈틀꿈틀하는 듯한 사진들의 모음체.
오픈콜에 신청하기 위해 지난 사진들을 촤르르 넘겨봤다. 사진마다의 이야기가 그립다. 이건 정말이지 그 시간에 묶인 나의 마음들이야.
이 사진은 나와 엄마의 사진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손과 엄마의 손. 우리 두 사람의 손은 닿아있지만 닿아있지 않다. 평일 한낮, 집에서 엄마와 영화를 보다가 문득 찍었다. 햇살이 강하게 들어오는 창가에 내 손을 들어 한컷, 그리고 영문을 모르는 엄마 손도 당겨와서 한컷. 오픈콜에 지원할 때 이 사진은 꼭 포함시킨다. 뭐랄까, 이 사진을 보면 나답지 않게(?) 따뜻해진다. 그리고 지금 가장 그리운 순간이 담겨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