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후 이런저런 일을 겪었고 또 울고 싶어진 일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닳고 닳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대체로 울 것까지는 없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 머릿속에 고인 눈물은, 지금도 그런 처지가 된다면 또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괴롭고 분하고 불안한 눈물은 경험으로 지울 수 있다. 고마움에 흘리는 눈물은 흘리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전락한 자신이 여전히 예전의 자신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인식되었을 때 흘리는 기쁨의 눈물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 형편에 맞게 멋대로 생각하는 존재다.
-갱부, 나쓰메 소세키 150p
#1.
선택할 수 있다면 20대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단호하다. 아니오.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근무(물론 야근이 없는 날에만), 주말 중 하루는 가족 모임, 평일 저녁 약속 등등. 소금물에 젖은 솜처럼 내 삶이 무겁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생활의 연속. 나의 어른은 현실에 좌절하고 깎이면서 되어가는 그런 건가 보다.
출근길에 생각했다. 시간을 빨리 감고 싶다고.
오늘 아침만큼은 그랬다. 지금을 앞둔 지난 20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노력으로 낙관성을 유지하는 사람이라 여차하면 비관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게 나의 디폴트 값이다. 어쩌겠나. 이렇게 생겨 먹은 걸.
#2. 회식 아닌 회식을 했다. 남는 건 찝찝함뿐이다.
입은 다물고 귀만 열면 되었을 걸
세 명 모인 자리에서 삼각으로 날아다니는 온갖 썰에 추임새만 조금씩 넣겠다는 게 그만.
혀가 길어져버렸다.
그러니 오늘도 다짐한다.
남의 얘기 나르지 않고
나의 얘기 흘리지 않겠다고.
#3. 화장실에서 양치 중에 동료를 만났다.
그 잠깐의 공백을 못 견디다 얘기가 길어져 20분인가? 서서 대화를 해버렸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난 그 사이에 또 다른 동료의 건강상의 비밀을 알아 버렸다.
고단하다.
여기까지가 나의 빛과 그림자 중 '그림자'의 조각들이다. 나 자신부터 명암이 분명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하이콘트라스트 흑백을 선호하는 편이다. 역광이 주는 타인의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는 일이 퍽 즐겁고 그 즐거움에 따라 카메라의 셔터를 정신없이 누르는 게 재미있다. 경계가 명확한 특유의 그 느낌이 좋달까.
사진을 찍는 건 때로는 내 마음의 명암을 분명히 하는 행위 인지도 모르겠다. 노력이라는 에너지로 빛을 발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보니 본능적으로 그림자에 이끌리는 건지도 모른다. 어둠은 중력처럼 내겐 그냥 자연스러운 것. 아,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 빛을 더 분명하게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일 수도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