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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빚다

by 이마루

#1. 평소 멘탈이 그다지 강한 사람이 아닌지라 마음에 박힌 가시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된다 싶으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곧잘 하곤 했었다. 죽음을 쉽게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만큼 이 고통이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긴 살아야겠으니 노력을 해낼 수 있도록 힘을 달라는 기도를 드리기는 했으나 사실 그것도 내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간절함이 없는 기도를 꽤 자주 드렸다. 의지박약, 권태감, 무력감에 그만 무릎을 꿇어버린 거다.

강할 땐 강하더라도 약해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그것도 저세상 밑바닥까지 약해질 수 있는 사람, 그게 나였다. 어릴 땐 서른의 나, 마흔의 나, 쉰의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상상할 수 없었다. 궁금하지가 않았으니까.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걸 경험하면서 좀 생각이 달라진 걸 느꼈다. 전에는 이 고통이 지겨워 하루빨리 내려놓고만 싶었는데 요즘에는 마음에 어떤 가시가 박혀도 그냥 이 일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사람과의 관계도 시간에 따라 멀어진 사이가 있다면 그게 마음에 가시가 될 때가 있지 않나. 내가 뭐라도 해야 될 것 같고 그런.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전에는 영화 파수꾼의 기태처럼 제대로 된 소통보다는 조급함만 앞세웠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있는 그대로 두게 됐다. 흘러가는 걸 거역하지 않고 지켜보는 입장으로 태세 전환. 이 관계의 끝은 과연 어디로 갈까, 하는 그런 관조의 시선으로.


모든 것은 결국엔 변한다.

#2. 사진에 대한 글을 의뢰받았다.

매주 이렇게 사진, 그리고 그 사진을 찍는 ‘나’를 생각하며 토막글을 쓰고 있지만, 막상 제대로 한번 써볼래? 라며 누가 자리를 깔아주고 나면 그 앞에서 쭈뼛쭈뼛 머뭇머뭇 난리가 난다. 나란 사람은.


어디서부터 무슨 얘기를 써야 할까, 몇 주를 고민했다. 글이라는 건 주제와 제목이 반은 들고 들어간다. 일단 방향만 결정되면 그다음부터는 손이 알아서 글을 써준다랄까. 그런 느낌이 늘 있었다. 생각은 손가락에도 다 있다.


고민 끝에 카메라를 생각할 때 내가 떠올리는 최초의 기억, 사진을 찍게 된 과정 등을 써보기로 했다. 그 이야기를 구구절절 쓴 다음 마지막에는 주로 사용하는 카메라의 기종과 그 이유를 들며 마무리를 지어보자고 생각했다. 아무튼 큰 틀은 그랬다.


글은 다른 언어로 써야 했다. 당연히 언어적 한계가 있으니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 하나만큼은 명확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원안은 한글로 쓰고, 그리고 그것을 2차 번역을 해서 최종글로 검토했다. 이러니 꼭 두 편의 글을 쓴 느낌이다.

구름이었다.

사진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그런 무정형이었다. 사실 글을 의뢰받기 전까지는 내 안에 사진에 대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사진, 그것을 찍는 행위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글은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것을 열심히 써보기로 했다. 의뢰받은 매체는 분기별로 나오는 사진 관련 인디잡지인데 게재된 다른 사람들의 글과 사진이 퍽 마음에 들어서 수락했다. 에디터에게 연락을 받고 처음 몇 주는 다른 일로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그 누군가가 나의 사진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하여 궁금해한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부풀어올라 첫 시간들은 그렇게 곱씹기만 하다 훅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어제, 완성된 글을 에디터에게 넘겼다. 후.


계속해서 형태가 변하는 그런 구름과도 같은 생각들이 이런 소중한 기회 덕분에 하나의 글로써 마침내 세상에 빚어져 나오게 됐다.

그때 이 공간에도 소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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