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점점 내려가 드디어 0에 가까워졌을 때 돌연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바로 이어서 죽으면 큰일이다 하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눈을 딱 떴다.
-갱부 259p, 나쓰메 소세키
#1. 여름 감기를 앓았다. 참 지독하게도 아팠고, 또 아프다. 한 달쯤 그러고 나니 살도 빠졌다. 그렇게나 빠지지 않던 살이 이제야 빠진다. 썩 유쾌하진 않다.
몸이 먼저라는 말, 참말이다.
상태가 이러하니 그 좋아하는 여행길에서도 나는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는.. 오히려 연료가 바닥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일상에서는 점심을 먹다가도 갑자기, 또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문득. 삶이 지독하게도 권태로웠다. 도래하지 않은 내 앞날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지도를 펼쳐놓은 것처럼 빤했다. 처연한 감정. 이런 감정 잘 안다. 엎질러진 마음, 형태는 사라지고, 악취만 남았다.
마음이 고와야 말도 곱게 나가는 것을,
마음이 얼테기니 미운 말이 잘도 나간다.
#2. 눈은 마음의 창이라던가.
순도 백 퍼센트의 어느 맑은 여름날, 카메라를 들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 앞에 가까운 호텔을 잡고 하루 꼬박 사진만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 다짐으로 결연히(?) 집을 나섰다.
이런 마음가짐일 때의 나의 눈은 어떤 풍경에 사로잡힐까.
광화문 역에서 나오자마자 따릉이를 빌렸다.
목적지도 없었다. 그냥 끌리는 대로 가볼 요량이었다. 광장 분수 터널 아래로 아이들이 신이 나 뛰어다닌다. 사방으로 튀는 작고 큰 물방울이 캔버스 위로 떨어지는 가지각색의 흰 물감 같다.
경복궁으로 향했다.
흰 돌담을 배경 삼아 걷는 저 사람들. 이런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르겠죠. 앞으로도 알 리가 없지.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그들을 보는 건 즐거웠다. 마음이 안정을 찾아 서서히 방향을 트는 느낌이었달까.
한참을 자전거를 타며 주변을 돌았다. 경복궁 뒤로 산이 보였다. 트인 풍경과 길 위의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하나의 붓이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지금 같아, 라는 마음이 들 때 순간을 남긴다. 그게 마음이 내게 전하고 싶은 말이니까.
0으로 가까워지고만 있던 나는 그날의 경험과 기억으로 올라갈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심해의 어두운 마음은, 그러니까 수면을 보여줄 태양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