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탄 남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전목마의 데드히트에 수록된 단편 중 하나다.
'남자는 어딘가로 떠나려는 걸까? 남자는 어딘가로 돌아가려는 걸까?'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돌던 질문들과 그림 한 편. 에드워드 호퍼의 모닝 선morning sun이 떠올랐다. 앉아있는 여자에게서 보인 그 공허함과 회한, 그리고 행복하지 않음의 공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때의 내 감정이 그랬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육체가 흔들리고, 세계는 멈춰 있었다. 떠올릴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이 지나고 그녀 안의 흔들림이 가라앉았을 때, 그녀 안의 뭔가가 영원히 사라졌다. 그녀는 그것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뭔가가 끝났다.
-택시를 탄 남자 중에서
소설에서 묘사한 무언가가 끝났다는 마음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여행 중이었다. 기차에 앉아있는데 반대방향의 기차가 옆 선로를 타고 바로 옆에 정차했다. 맞은편 기차 안의 사람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창밖으로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비 사이로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무심코 지켜보면서 어떤 결심의 순간이었달까. 무언가가 끝이 난 느낌을 받았다. 감정의 퓨즈가 똑하고 끊어진 느낌. 난 아마도 이전의 나로는 돌아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 모종의 경계선을 막 통과한 듯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끊임없이 이동하다가 일시정지한 그때, 창밖의 다른 사람들을 보며 이 여행의 순간까지도 무겁게 짊어지고 온 과거에 대한 후회랄까. 외면하고 싶었던 짐을 톡하고 내려놓은 듯한 후련함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후회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대책 없이 첫 회사를 그만두고 진로에 대한 방황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하고 싶은 건 원 없이 하고 돌아다녔던 시간. 그나마 1년 반 정도 회사를 다니면서 모아놓은 천만 원이 좀 안 되는 돈마저 모두 여행과 커피에 쏟았더랬다. 그렇다고 이때가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원하는 대로 할 때의 자유로운 행복만큼이나 미래의 나에 대한 죄책감도 컸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과거의 실수들에 대한 후회들까지도. 이 모든 짐을 내려놓고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조금은 보이는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사진을 보면 그 순간의 마음이 여전히 떠오른다. 약간 초심을 기억하는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