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라는 취향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어디까지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 애호활동이랄까.
시간을 거슬러 본다.
아빠의 보물 중 하나는 캐논 DSLR이었(던 것 같)다. 가족여행 때 금고 같은 서랍장에서 그 카메라를 꺼내며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던 아빠가 어린 눈에도 꽤나 행복하게 보였는지, 지금도 눈을 감고 카메라를 떠올리면 그 장면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대학생 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찍사’라고 불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여행을 떠나면 언제나 카메라를 드는 사람,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중요한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던 거다. 인생에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잖아? 풉.
전공으로 의류학을 선택하면서 대학생활 내내 패션 잡지에 빠져있었다. 잡지를 종류별로 사서 모으고 또 모았다. 잡지 수집에 용돈을 털어 써서 내 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다. 그래서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국 유학 생활 중에는 그곳의 패션 잡지를 다달이 사모아 귀국길도 결국 장기 여행자마냥 넘치도록 푸짐했다. DHL로 몇 상자나 한국으로 실어 날랐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푹푹 내쉬던 그 한숨에도 나는 마냥 뿌듯했다. 더 모으지 못해 늘 아쉬웠다. 잡지를 향한 탐욕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지금 찍는 사진의 팔 할은 이 잡지들에 있다. 좋아하는 모델을 멋지게 담아낸 패션 화보를 찾아내거나, 눈여겨보던 포토그래퍼의 새로운 시도 또는 시그니처풍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 어떤 감정과도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잊지 못해 졸업 후에는 곧바로 국내 패션 잡지사의 어시스턴트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때는 패션계에 열정페이(?)가 아무렇지 않을 때라 종일 일하고도 한 달에 받는 돈은 교통비가 전부였으나.. 매달 깨끗한 종이에 따끈하게 인쇄되어 나오는 화보들, 내가 참여한 그 화보, 무엇보다 어시스턴트로라도 내 이름 석자가 들어가 있는 페이지를 보면 한없이 보람차고 자랑스러웠다. 회사에는 전 세계 잡지를 볼 수 있는 (그전에는 꿈에서나 본) 서고가 있었다. 값이 비싸 늘 사기는 힘든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패션잡지들을 꾸준히 빌려 읽으며 마음에 드는 화보는 따로 스크랩을 해두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는 인생에서 다시 만나기 힘든, 무언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했던 시절 같다.
Anyway, 그 좋아하던 패션을 나는 왜 떠났을까. 일은 사랑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까지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난 그 정도로까지 독하지는 못했다. 당시 사람에 얻은 상처가 패션 그 자체에 대한 마음을 더 더럽히지 못하도록.. 도망쳐 나왔다. 핑계일까? 물론 사회 초년생이었던 만큼 마음이 참 여린 탓도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퇴사 후 영화를 보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사춘기가 20대 때 왔다고 믿고 있다(엄마는 동의하지 않으실지 모르나). 내 인생에서 그때가 감성이 가장 충만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뭘 사랑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간이었다. 이때는 소소하게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는 족족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어디로 떠나든, 그 세계 안의 사람들에게 나의 당시의 감정, 그러니까 고독을 투영했다. 그 감정이 잘 드러나는 찰나는 놓치지 않고 사진에 담으려고 했다. 나는 쉬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방황을 참 오래도, 길게 했다. 그 와중에도 놓지 않은 건 카메라밖에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였달까. 돌이켜보면 잡지 화보들을 보며 내 안에 어떤 것이 차올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사진과 글로 풀어냈던 거지.
사진전을 준비하게 됐다. 완전한 개인전은 아니지만, 최근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주어졌다. 국제 사진전에 내 사진 12점을 내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준비과정을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나의 이야기들도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