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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Jul 23. 2022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그 일상에 대하여

빌어먹을 긍정의 힘으로


일상은 잔인하다. 때로 걷잡을 수 없는 권태와 무기력함을 가져다주고,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존재의 이유를 드러내 때문이다.


아침 7시, 바닥에 붙어 버리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이겨낸 채 몸을 일으킨다. 어디선가 봤던 어설픈 스트레칭을 따라한 후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는다. 애드 쉬런, 밥 딜런, 레드 스윙프, 존 레전드, 잔나비 등 좋아하는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낭만의 끝. 잔인함을 뒤로한 채 잠시 잠깐의 해방감을 맛본다. 약 15분을 달려 거대한 빌딩 숲으로 들어간다.


좀비 떼처럼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들. 긍정할 있을까. 숨 막히는 삶을. 그리고 속에 스며든 나를. 그렇게 잔인함은 다시 시작된다.


숨을 고른다. 길을 지나는 이들의 얼굴을 하나둘 바라보면 뜻밖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빼곡한 걸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토록 처절한 일상은 지켜야 할 존재들을 떠올릴 때 다시금 아름다운 면모를 드러낸다.


지친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과의 편안한 시간.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 한 권. 명절날 부모님께 건넨 용돈 봉투. 어느 날 문득 쓰고 싶은 편지 한 통.

거친 정사 후 연인에게 건넬 수 있는 달콤한 입맞춤. 풍만한 젖가슴을 보며 신의 경이로운 작품임을 느낄 수 있는 지성. 우연히 만난 걸인에게 줄 수 있는 지폐 몇 장. 학교 가는 아이들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잠깐의 여유. 지친 친구에게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는 마음.


... 그리고 괜찮다는 진심.

 

아니, 괜찮을 거라는 얄팍한 기대.






모순적이게도 일상의 잔인함으로부터 삶을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놈도 일상이다. 해방감도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얼마 전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내게 누가 그랬다.


"진짜 자유는 속박 속에서 느낄 수 있어요. 산속에 들어가고 싶다고요? 그럼 한 번 들어가 봐요. 그 속에 진짜 자유가 있는지. 일주일도 못 버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걸요? 모든 걸 내려놓을 정도라면 이미 삶을 포기했을 거예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어떤 가치는 그것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았을 때 더 의미가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일상을 떠날 용기가 없어서,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삶의 잔인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나의 믿음도 없는 세상 속에서 작은 신뢰를 발견한다. 그리고 사랑할 줄 몰랐던 것들에서 예쁜 부분을 찾아낸다. 그렇게 빌어먹을 긍정의 힘을 낸다.


훈련하듯, 인간을 조련하듯, 우린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 삶을 직면하고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때론 천편일률적인 삶의 파편 속에 아름다운 책갈피를 끼워 놓아야 한다. 가끔은 수많은 의무 속에 무례한 방종을 끼워 넣어야 한다. 고루한 율법 속에서 자한 음행을 상상해야 한다. 거룩한 거짓 속에서 가벼운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린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일상을 살아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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