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혁 Nov 08. 2023

초승달

03

물결이 찰랑거리며 얼굴에 닿았다. 눈을 뜬 수아가 주변을 보곤 놀란 표정을 보였다. 물과 억새로 가득한 습지였기 때문인데, 낮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밤도 아닌, 백야처럼 빛이 그늘져 보였고, 억새 위로 보이는 파란하늘에는 희미한 초승달이 떠 있었다.

수아는 홀린 듯이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지, 수아가 걸음을 멈추고 물속에 잠긴 자신의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지만, 역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적막을 뚫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떤 여자가 작은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머리에 새 가면을  아이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여자는 그런 아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친 아이가 넘어져 자리에 주저앉게 되자, 여자는 아이의 손을 떨구고, 무심하게 혼자 걸어가더니 천천히 억새 속으로 사라져 갔다. 시간이 현실보다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지켜보던 수아가 러져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마네킹처럼 몸이 굳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수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이가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겨내려고 하자, 아이가 수아의 손을 . 놀란 수아의 시선이 가면으로 향했고, 가면 뚫린 구멍을 통해 자신을 노려보는 눈동자를 보았다.


"헉!"


놀라 잠이 깬 수아가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진정해, 괜찮아?"

"네, 괜찮아요. 좀 놀랜 뿐이에요."


수아는 침대에서 내려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뭐 좀 알아낸 거 있어?"


수아 옆으로 다가온 서하가 말했다.


"특별했던 것은 없었어요. 머리에 새 가면을  쓴 아이가 있었는데, 습지에서 어떤 여자에게 끌려가고 있었어요.  상황을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여자는 아이의 엄마 같았고, 아이는 고통스러워했던 것 같아요. 가면을 벗겨내려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꿈에서 나오게 됐어요."

"가면을 쓴 아이가  기철인가?"

"잘 모르겠어요."

"되도록이면 꿈속 인물들과 접촉하지 말고,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기철의 꿈은 그가 만든 세상이야. 이질적 존재에 대한 배타심이 강할 수 있느니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엔딩사인으로 꿈에서 나오는 거 잊지 말고."

"그런데, 이번에는 엔딩 없이 꿈에서 나왔어요."

"너무 놀라면 그럴 수 있지만, 꿈주가 밀어낸 것일 수도 있어."

"......"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괜찮겠어?"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아가 들어간 방에는 숙면하기 좋은 시설이 되어 있었지만,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침대에서 뒤척이는 수아를 본 서하안 되겠는지 방으로 들어갔고, 그 사이 수아는 잠이 들었다.


차도 사람도 없는 황량한 아스팔트 위에 수아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아질 듯한 흐린 날씨였고, 아스팔트 위에 노란색 줄무늬가 끝없이 뻗어 있었다. 수아는 기철을 찾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기철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약하게나마 들리고 있었다.


[소리가 들린다]


나지막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아는 자력에 끌리 듯, 소리 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 안에서 한 남자가 화가 났는지, 새 가면을 쓴 아이에게 윽박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남자가 뭐라고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이는 몸을 움츠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가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손바닥으로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수아는 그 모습을 차마 수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수아가 다시 창고 안을 봤을 때는 남자도 아이도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수아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아이를 찾았으나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 당황하고 있는 수아의 머리에 누군가 자루 같은 걸 씌웠다.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진 수아가 너무 놀라 벗겨내려 했지만,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소리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옷장에 갇혀 버린 아이처럼 어둠의 공포가 극에 달할 무렵, 수아가 엔딩사인을 했다.


"끝"


타인의 무의식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었던 수아는 원하는 시점에 자신을 각성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엔딩사인을 만들었다. '끝'이라는 단어로 수아는 원하는 때에 타인의 꿈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04에서 계속

이전 02화 제보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